• 최종편집 2022-12-05(월)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소강석 칼럼] “간절한 마음을 가지면 반드시 열린다.”
    저는 지금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저 혼자 온 것이 아니고 12명의 일간지 기자들과 함께 이곳에 왔습니다. 특별히 저희 교회 의료목사님이신 이재훈 목사님과 또 대외 협력실장이신 박요셉 목사님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온 목적은 먼저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님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과 부활의 역사를 취재하기 위함이고 동시에 한국과 이스라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서 성지순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기자들과 함께 해외를 가도 끝까지 있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정상 하루나 이틀만 같이 하고 곧바로 돌아왔습니다. 그 먼 아프리카를 갈 때도 3일 동안만 함께 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끝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첫날부터 늘 긴장 속에 살았습니다. 아무래도 가이드를 하시는 분은 이스라엘의 지리와 문화에 정통을 하신 분이지만 일반적으로 통상적으로만 설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는 곳마다 그 장소를 성경과 연결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관계성을 언급하면서 어떻게든지 예수님의 스토리를 소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에 와서는 더 그랬습니다. 다른 곳도 다 중요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것을 기자들께 꼭 보여주고 설명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찾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일일이 다 보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번 SBS 다큐를 제작하고 또 CTS 다큐를 제작할 때는 미리 비용을 지불하고 특별예약을 해 놓아서 부족하지만 충분히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영상에 저의 설명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서 보니까 이번에는 그곳에 예약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노력을 다해서 특별예약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조마조마 할 수밖에요.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의 무덤교회를 찾아가니까 아니나 다를까 사람도 많고 무덤 안에서는 사진도 못 찍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애가 달았습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을 갖고 현장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물론 가이드께서도 수고를 해 주셨습니다. 아무튼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담당자에게 사정을 하고 설득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자들과 함께 무덤교회를 직접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은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서너 명밖에 안 되기 때문에 몇 팀으로 나눠서 제가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예수님이 어떻게 장사를 지냈고 그곳에서 부활하셨는가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그나마 마음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복받쳤습니다. 저는 기자들에게 이곳이 예수님의 탄생지와 함께 최고의 하이라이트 성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남아서 기자님들과 함께 한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보람되고 가치를 느낀다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가 성묘교회를 다녀오고 나서 호텔에 와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나는 천상 목사이구나.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그리고 죽음과 부활 승천을 전하고 싶어 안달하는 목사이구나. 그리고 간절한 마음을 가지면 어떤 장벽도 뚫고 열 수 있구나. 간절한 마음이 없으니까 늘 핑계만 대고 자기 스스로 위무를 할 수밖에 없겠구나. 나는 앞으로 더 간절한 마음으로 사역을 하고 사명에 임해야 되겠구나.” 저는 할 수만 있으면 절제를 하고 제 자신을 컨트롤 하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로서의 본성을 어찌 감출 수가 있겠습니까? 기자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믿는 분도 계시지만 믿지 않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으면 그분들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저 자신이 셀프컨트롤을 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목사의 본성과 정체성이 드러날 수밖에요. 방에 들어와서 생각해 보니 이러한 저의 마음과 정열을 이해를 해주시고 수용해 주신 기자들께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를 너그러이 용인해 준 가이드 목사님께도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면 얼마든지 장애를 극복하고 닫힌 문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너무 긴장을 했는데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고 나니 사랑하는 성도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어서 빨리 교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속히 달려가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을 사모하며 축복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2022-12-04
  • [사설] ‘예비 대통령’을 둬야 할지도
    언제부턴가 대학의 입학 사정에서 예비합격자 제도가 생긴 것 같다. 합격자가 등록을 포기하거나 어떤 사정이 있어 입학생에 결원이 생길 경우, 예비합격자들로 그 결원을 보충하는 것이다. 비단 대학 입학생들만이 아니다. 기업체의 신입사원 선발에 있어서도 그렇다. 최근 들어서는 아파트 청약에서도 예비자를 뽑아 만약의 경우 미계약자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 같다. 일면 좋은 점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최근의 우리나라 사회 일각에서 발견되는 ‘대통령 물러나라’는 구호를 보면서 생각나는 것은 이러다가 대통령까지도 예비 당선인을 여럿 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좀 괜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질문명이 발전한 나라일수록 대형 사고나 사건 또한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현실일진대 그때마다 대통령이 물러나야 할 것 같으면 대통령도 예비 당선인을 많이 두거나 아니면 아예 한번 선거할 때 여러 사람을 뽑아서 번호를 부여해놓고 순서대로 한 사람이 물러나면 다른 한 사람이 뒤를 이어 취임을 하는 순번제가 비용도 줄이는 등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다.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은 지금도 많은 것 같다
    • 오피니언
    • 사설
    2022-12-01
  • [사설] 창조주의 권리인가, 인간의 권리인가?
    그냥 듣기에도 대단히 민망한 말이지만 이 말이 사실일는지도 모른다. 곧 우리 사회에서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근자에 열린 한 학술세미나에서 발제된 ‘생명윤리와 기독교’에 올려진 주제를 잘 음미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별히 이번 세미나에서 발표자들이 강하게 주장한 ‘낙태’와 ‘존엄사’ 문제가 관심을 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을 단지 세상에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害)할 수 있는 권리가 인간에게 있느냐 하는 것과 그것을 합법화하는 것이 생명윤리에 부합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번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한 한국교회법학회 서헌제 교수의 말에 따르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의 주체가 각 개인인지 창조주 하나님인지를 두고 논란이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 말과 같이 평소에 깊이 담아두지 않았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창조의 주인이신 우리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셨음과 동시에 또 다른 생명을 창조하고 계시는 것이 분명한데 그 소중함의 경중이 서로 다를 순 없는 것이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한을 인간의 법으로 제한한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가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오랜 세월 유지해온 낙태를 죄로 인정하는 법을 헌법재판소라고 하는 인간사회의 권력기관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과 불순종을 드러낸 과오(過誤)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자칫 우리 사회가 낙태권을 합법화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현대 사회가 컴퓨터에 의한 컴퓨터의 시대라고 말들 하지만, 인간의 생명조차 컴퓨터에서 작성하다가 단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리낌 없이 간단히 삭제해버리고 마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은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으로 쉽게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10:29참조)는 진리를 참조하기 바란다
    • 오피니언
    • 사설
    2022-12-01
  • [장향희 칼럼] 은혜받은 솔로몬(왕상 3:3~10)
    장향희 목사 (든든한교회) 오늘 말씀에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왕위에 오르게 됨을 감사하며 다른 어떤 것보다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런 솔로몬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지혜뿐만 아니라, 구하지도 않은 부귀영화도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솔로몬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한 것이 무엇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우리 모두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Ⅰ. 솔로몬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본문 3절) 1) 하나님은 자기만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2) 하나님은 자기만을 제일로 사랑하면 책임져 주십니다. (사 43:1~4) 3) 성경에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 계십니다. 4)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세가 있습니다. ①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 7:9) ② 마음, 성품,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막 12:30) ③ 세상 것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일 2:15) 2. 솔로몬은 부친 다윗의 법도를 지켰습니다. (본문 3절) 1) 다윗은 어떤 믿음이 있었나요? ①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겸손히 받을 줄 알았습니다. (삼하 12:13) ② 침상을 적시며 회개할 줄 아는 자입니다. (삼하 12:16~17) ③ 평생소원이 성전 건축이었습니다. (삼하 7:2) ④ 하나님을 향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본문 6절) 2) 하나님은 다윗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① 왕 중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② 다윗의 집을 세우게 해 주셨습니다. ③ 아들 솔로몬에게 복 받게 해 주었습니다. 3.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본문 4~5절) 1) 일천 번제를 드린 의미가 있습니다. ①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믿음이 있었습니다.(예배의 신앙) ② 일천 번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③ 일천 번제물을 아낌없이 드리는 헌신이 있었습니다. ④ 하나님께 바쁜 일정이지만 귀한 시간을 일천 번 드린 것입니다. 2) 오늘날도 일천 번제를 하나님께 쌓는 믿음을 갖길 바랍니다. 4. 솔로몬은 하나님께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다고 고백하는 겸손한 자였습니다. 1) 솔로몬은 유전적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2) 솔로몬은 아비의 신앙을 자랑했습니다. 5. 솔로몬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를 드린 자입니다. (본문 7~9절) 1) 솔로몬의 기도를 통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①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본문 4절) ② 아비 다윗에게 베푸신 주의 은혜를 찬양했습니다. (본문 6절) ③ 왕으로서 부족함을 느끼는 겸손한 자세로 기도했습니다. (본문 7절) Ⅱ. 솔로몬이 받은 축복이 무엇입니까? 1) 아버지 뒤를 이어 왕이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본문 7절) 2) 성전을 건축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왕상 6:1) 3) 전무후무한 지혜를 얻었습니다. (왕상 3:12) 4)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리는 솔로몬이 되었습니다. (왕상 3:13) 결 론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은혜에 감사하여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가운데에도 감사가 넘치시길 바랍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장향희 목사
    2022-12-01
  • [김원수 칼럼] 26.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 227평의 선물! 은혜로다!!!
    김원수 목사 (일산주님의교회) 본당 입당예배는 2006년 11월 12일 늦은 가을이었다. 이것으로 일산주님의교회 공동체의 공간 확보는 끝인 줄 알았다. 은퇴할 쯤에야 공간 확보가 될까? 2007년부터 3년 동안의 예배드림의 아픔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유아실이 없음이었다. 많은 유아부모님들이 교회를 떠났다. 유아공간도 마련 않고 교회를 운영한다고 공개적으로 홈피에 비난까지 받았다. 1%도 합법적으로 공간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한강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막아 보려고 주차공간에 합판을 대고 공간을 막았더니 교회를 지키는 이름 모를 지킴이(?)가 구청에 신고하여 계속적으로 구청 공무원들이 열심히 출장을 왔다(?). 답답하고 할 말이 없었다. 공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하여 사용할 때마다 괴로움은 더했다. 어린이 공간, 유치부 공간, 중고등부 등 어느 공간 하나도 부족했다. 방법은 은혜로! 기도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2010년 초 말씀을 전하면서 올해 우리교회에 주시는 은혜에 “‘감’이 좋습니다.” 라고 선포했다. 영적인 느낌이 좋았다. 2010년 1월말에 설계사무소로부터 전화가 왔다. 법적으로 더 건축할 수 있는 공간이 허락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던지, 강화에서 쉬고 있다가 펄쩍펄쩍 뛰었다. 너무너무 기뻤다. 감사했다. 감격했다. 문제는 주차장 확보였다. 타워(철골) 주차장으로 설계를 하여 올렸더니 고양시 건축 조례 때문에 승인되지 않았다. 다시 재검토하여 일부 테라스 건축물을 공간을 축소하고 주차장 등으로 확보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층 옛 주차장에 유치부실이, 15년 만에 교역자 사무실이, 2층엔 새가족실이, 3층엔 장년 예배실, 유아실, 소그룹실, 4층엔 너무나 멋있는 치유와 중보기도실이 확보되었다. 건축을 하면서 공간 공간마다 인부와 인력과 경비가 더 투입되었지만 우리 교회만이 누릴 수 있는 필요한 공간과 사용 목적에 따라 공간에 세심한 배려를 해 나갔다. 기도 없인, 눈물 없인, 절대로 돈으로 건축할 수 없다는 것을 또 깨닫고 느꼈다. 성도들의 작은 헌신, 눈물의 기쁨, 정성된 기도, 건축기간에 ‘해피데이 516 영혼의 축제’까지 함께 기도하면서 교회를 세워 나갔다. 너무 감사했다. 리더들이 세워지고, 성도들이 활력을 얻고, 알파와 치유와 회복사역은 계속되고 남성들이 일어나고 셀 그룹이 하나씩 둘씩 맺혀가고 2010 봄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와 간섭 속에 여기가지 왔다. 정말 감사하고 이제 성도들의 신수성가(身手成家)의 축복만 남았다
    • 오피니언
    • 칼럼
    • 김원수 목사
    2022-12-01
  • [하성민 칼럼] 철부지에게 고개를 숙이는 사람(2)
    하성민 목사 (소망전원교회) 누구에게 고개를 숙이는가에 의해 사람됨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윗사람에게만 고개를 숙이고 성도는 아랫사람에게도 고개를 숙입니다. 장사꾼은 이득이 될 사람에게만 고개를 숙이고 성도는 손해를 입힐 사람에게도 고개를 숙입니다. 세상은 어른에게만 고개를 숙이고 성도는 아이에게도 고개를 숙입니다. 세상은 잘 한 사람에게만 고개를 숙이고 성도는 못 한 사람에게도 숙입니다. 성도는 함부로 취급당하고 무시 받는 철부지를 귀한 사람으로 대접하는 사람입니다. 어린아이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싸우는 어른은 아이 수준이고, 건달과 싸우는 신사는 양복 입은 것만 빼고는 건달과 같은 수준입니다. 정말 신사는 건달과 싸우지 않습니다. 해방 직후에 백영엽 목사님이 피어선 신학교 건물을 빌려서 대광청소년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학교 갈 나이가 많이 지나서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이 많아 선후배의 나이 차이도 없고 상급생이나 하급생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 간에 호칭에서부터 시작해 일상적인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상급생과 하급생의 사소한 다툼이 교내 문제로 불거져서 전교생이 등교를 하지 않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교장인 백영엽 목사님이 학생 대표를 불러 화해를 시키기 위해 대면을 했습니다. 상급생은 하급생들이 무례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고, 하급생은 상급생들이 난폭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양쪽 이야기를 다 들은 백영엽 목사님은 정말 문제는 학생들에게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깜짝 놀라는 학생들에게 교장 선생님이 이야기했습니다. “학생들의 문제도, 학생 대표인 자네들의 문제도 아닐세! 제자들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내가 문제일세! 이 모든 일이 다 나의 부덕함으로 생긴 일이니 나를 처벌해야 갰네!” 이야기를 마친 목사님은 책상 위로 올라서더니 회초리를 들고 자신의 종아리를 피가 나도록 내리쳤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상급생과 하급생 대표들이 회초리를 붙잡으며 소리쳤습니다. “이 문제는 교장 선생님의 잘못도 하급생의 잘못도 아닙니다. 저희 상급생의 잘못입니다.” “아닙니다. 우리 하급생들의 잘못입니다.” 성도는 남의 잘못도 자기가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남의 잘못을 책망하나 성도는 감싸고 끌어안습니다. 세상은 잘못한 것 하나로 전체를 보고, 성도는 잘 한 것을 보며 잘 못 한 것을 덮습니다. 세상은 처벌로 끝내고 성도는 용서로 끝냅니다. 세상은 잘못을 찔러서 무릎 꿇게 하고 성도는 약을 발라서 치료합니다. 세상의 리더십은 통솔이고 성도의 리더십은 섬김입니다. 세상은 법과 질서가 우선이고 성도는 사람이 우선입니다. 세상은 원리 원칙이 중요하고 성도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세상은 원인 규명이 우선이고 성도는 해결이 우선입니다. 세상은 결과가 중요하고 성도는 동기가 중요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가복음 10:42~45】
    • 오피니언
    • 칼럼
    • 하성민 목사
    2022-12-01
  • [김연희 이종호 칼럼] 레위기 피로씻어요
    • 오피니언
    • 칼럼
    • 김연희 이종호 목사
    2022-12-01
  • [조예환 칼럼] 하나님의 예정하심
    조예환 목사(갈보리교회) [프로필]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 역임 그렇게 연탄가스로 온 가족이 죽을 뻔하고도 우리는 그 집 지하실 방을 오래도록 떠나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 다른 집에 갈 수 없었고, 그보다 더 싼 방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곳에서 만날 사람이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그 집에서 살도록 하셨던 건인지도 모른다. 아직 겨울이 채 사라지기 전, 2월 마지막 날 때쯤, 우리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 아내가 등록했다. 막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교회 옆에서 학원을 하게 되어 아내가 이사를 온 것이다. 나는 신학생으로 교회학교와 성가대로 봉사하고 있었다. 아내도 교회학교 교사로 성가대로 봉사하게 되었는데, 반주자가 결혼해서 나가고 아내가 본 성가대 반주자가 되었다. 아내는 전공도 아닌데 부족한 자신에게 반주의 귀한 사명을 주신 것이 정말 감사하다며, 모든 예배 시간 가장 먼저 교회에 나와 피아노를 깨끗이 닦아놓고 찬송을 은은히 치며 예배를 준비했다. 어머니도 항상 교회에 일등으로 가셨다. 그리고 맨 앞자리에 서서 예배를 준비하는 기도를 하셨는데, 아내는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저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꼭 들으실 거 같다’라며. 어머니 또한 몇 해를 봐도 한결같이 성실하게 일찍 나와 반주하는 아내가 꼭 마음에 드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형편에 마음에 드는 며느릿감이라고 말을 꺼낼 처지도 아니니 그저 기도만 할 것이라고 하셨다. 온갖 기적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는 쉬웠다. 그러나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한편 강도는 그 가장 초라한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래서 어쩌면 그 한편 강도가 가장 믿음이 좋았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아내는 지하실에 사는 우리 집에 와서 가난한 그 형편을 다 보고도 주저하지 않고 나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교회 개척하고 가난하고 힘든 모든 시절을 함께 견디어 왔다. 교인들이 중매를 부탁할 때가 많다. 부흥회를 다니니 믿음 좋은 청년들 좀 찾아봐 달라고들 한다. 그래서 믿음 좋은 청년을 소개해 보면 결혼이 성사되는 법이 없다. 몇 번을 실패하고야 나는 깨달았다. ‘믿음 좋은’이 단 하나의 조건이 아니라 모든 조건을 갖춘 것에 ‘믿음 좋은’ 이 더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결혼 기도를 한다며 적어놓은 기도 제목이 수십 가지인 것을 본다. 조건만 맞으면 신앙은 차차 가지면 된다는 사람들도 본다. 무엇이 우선순위인 건가? 나는 정말 헷갈리는 일들이다. 사람들이 잠깐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가지고 있는 조건은 언제나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건강한 자와 결혼했지만 병들 수 있고, 부유하다고 결혼했지만 가난해질 수도 있다. 좋아서 결혼했지만, 그 마음 변해서 평생 원수끼리 사는 것이 결혼이라 하지 않는가.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그 모든 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다. 그럼 기준을 어디에 두고 배우자를 선택해야 할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선택해야 실패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너무나 간단하고 당연한 일인데, 현실만 보고 당장 이익만 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순위에서 밀려나고 만다. 그럴싸한 조건들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 자존심을 세워줄 것이라 여긴다.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지게 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란 걸 잊는다. 과연 믿음이 무엇일까? 무엇을 믿고 있는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생각해본다.
    • 오피니언
    • 칼럼
    • 조예환 목사
    2022-12-01
  • [문미향 칼럼] 그때 그 시절
    문미향 사모(주님기쁨의교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 인생 길에도 적잖은 만남이 있다. 세월이 가니 애경사에 봉투만 보내도 되는 곳이 있고 반드시 현장에 찾아가서 진한 위로나 기쁜 축하를 해줘야 할 사람이 있다. 결혼하면 남편 친구가 내 친구가 된다더니 진짜 실감하면서 산다. 남편 신대원 동기들 부부가 그렇고 이번엔 남편 젊었을 적의 교회 청년들이 그렇다. 지난주 그 시절 남편이 전도한, 인기 많던 청년이 장로 임직식 한다고 기쁨으로 뭉쳤다. 말은 여러 번 들었는데 처음으로 식후에 차를 마시며 35년이 넘은 추억들을 소환해왔다. 낼 모레 인생 60을 바라보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A가 B 장로님에게 “옛날에 일주일 좋아했었다” 고백했다. B 장로님 사모님도 그 자리에 있고 다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 젊은 날 다른 지역에 있었지만 ‘안 봐도 비디오’였다. 다 알아듣고 다 이해되어 웃음 났다. 목사님 딸은 너무 예쁘고 멋쟁이였다. 오빠한테(지금의 남편) 편지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며, 나한테 “생긴건 촌스러워 가지고 답장을 안 하는 거 있죠. 촌스러워요, 그쵸?” 너무 솔직한 ‘아줌마’가 내게 정직한 동의를 구했다. 여간 어려운 일도 아니니 네! 맞아요! 진실로 답해줬다.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세상에 널리 전하리 주의 사랑을!’ 요즘은 잘 부르지 않지만 뜨거웠던 옛 노래, 추억 돋는 가사들이 툭툭, 줄줄이 나왔다. B 장로님은 내 청년시절, 내가 섬기던 교회의 C 오빠와 닮았다. 충청도 양반의 느린 말투 하며 나중에는 얼굴까지 닮아 보였다. 말할 때 요점 정리만 해서 전달하는 게 아니고 상대가 원하지 않은 정보를 오지랖 넓게 기승전결로 길게 말한다든가, 묻지도 않은 얘기를 주~욱 펼치며 이야기를 독점하는 것도 얄밉지 않았다. 학력고사 실패까지 우울했던 스무 살 무렵의 내 청춘도 돌아보니 교회에서 지내던 그때가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학교 공부야 비록 취미생활, 여가선용으로 헐렁했어도 교회학교 교사로, 성가대로, 대학청년부로 바쁘게 살았다. 우리 교회 C 오빠는 우리 학교 도서관을 이용했고 가끔 거기서 마주쳤다. 왜 남의 학교로 다녀? 묻지도 않았고 그뿐이었다. 어느 날 청년부 모임 중에 내 앞에 놓인 물컵을 보면서 “미향아, 너 이거 어디 쪽으로 마셨어?” 물었다. 다른 쪽으로 마시려고 묻는 줄 알고 정확히 “여기!” 했다. 그 오빠가 다시 확인하며 “요기?” 하더니 내가 마신 자리로 딱 맞춰서는 마시는게 아닌가? 애들이 웃고 야단법석. 나는 무안하고 어이없어서 같이 웃었다. 그때 그 시절 우리 교회 청년들은 다들 잘 살고 있는지, 지금 만나면 너무 늙어서 서로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닌지. 다들 할배가 된거 아닐까? 진짜 이러다가 천국에서 만나는 것 아냐? 천국에 가면 세 번 놀란다고 한다.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내가 진짜 천국에 왔구나, 황송하다!’ 하면서 놀라고 “어머, 너도 왔니?”(못 올 줄 알았는데 어떻게 왔쪄?), 근데(천국에 꼭 올 것을 기대했던) 우리 담임목사님이 안 보인다 아! 사람들의 평가는 이중적이고, 아무리 착해 보이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내게 악당인 사람도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일 수 있다. 하나님의 평가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서 믿음이나 충성이 가볍지 않은 사람이 되기를,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천국에서 만나기를 소망하며 기도드리고 싶다
    • 오피니언
    • 칼럼
    • 문미향 사모
    2022-12-01
  • [김상복 칼럼] 창조와 관련된 사역(4)
    김상복 목사 [프로필]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 1. 창조와 관련된 사역 (3) 성령님은 모든 에너지와 자연질서의 근원입니다 성령님은 자연 속에서 역사하시면서 창조의 세계를 보존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에너지와 자연질서의 근원이 되십니다. 창세기 1장 2절에서 여호와의 영이 물 위에 운행한다고 했습니다. “운행”이라는 그 단어는 ‘에너지’라는 의미입니다. ‘물 위에서 에너지를 일으켜 움직이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에너지가 있습니다. 물에 에너지를 가하면 어떻게 됩니까? 물이 파도가 됩니다. 그것이 물의 파장(water wave)입니다. 파장(wave)이라는 것은 전부 에너지입니다.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한다고 해서 그냥 말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말이 파장을 일으켜서 이 음파(sound wave)가 멀리까지 전달되는 것입니다. 소리에 에너지를 가한 것입니다. 전기도 에너지입니다. 전파(electric wave)가 바로 전기 에너지입니다. 빛에도 파장이 있는데 그 빛의 파장(light wave)이 에너지가 되어서 파장이 되면 멀리까지 움직여서 결국은 환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자력(magnetic wave)도 에너지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다 에너지입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팔 하나를 움직이고, 손 하나를 움직여도 꼭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음식을 섭취해서 새로운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 주고 내 몸의 공장에서 에너지를 만들어 주어야 계속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면 그만 기진해집니다. 그런데 에너지의 근원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 에너지의 근원입니다. (4) 성령님은 좋은 것의 원천입니다 성령님은 미의 원천입니다. 욥기 33장 4절에서 성령님이 “하늘을 맑게 하신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아름답게 꾸민다는 것입니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하고 이 창조의 세계에 죄가 들어와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계를 파괴했습니다. 죄가 들어오는 것에는 반드시 파괴가 있습니다. 개인에게도 죄가 들어오면, 성령을 슬프게 하고, 섭섭하게 하고, 거역하고,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파괴됩니다. 몸도, 마음도, 영혼도, 인간관계도, 가정도, 직장도 파괴되고, 무엇이든지 파괴되고 맙니다. 질서와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님은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의 원천입니다. 성령님은 창조와 미와 관련되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런 권고를 했습니다.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참 되고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라”(빌 4:8) <계속>
    • 오피니언
    • 칼럼
    • 김상복 목사
    2022-12-0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