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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희 이종호 칼럼] 레위기 피로씻어요
    ● 한눈에 보는 레위기 1.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제사의 규례규례> (1~10장) 1) 제사 규례 (1~7장) 5대 제사(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에 대한 규례를 주셨다. 2) 제사장 위임 (89장)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으로 아론과 그 아들들을 세우셨다. 3) 제사장 직무 (10장) 아론과 아들들이 제사장 직무를 시작한 후 두 아들이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었다. 2.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정결의규례 (11~27장) 1) 정결규례 (11~15장)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여 정결하게 살도록 음식과 질병의 규례를 주셨다. 2) 대속죄일 (16장) 일 년에 한 번 이스라엘의 모든 부정과 죄를 씻는 대속죄일의 규례를 주셨다. 3) 조항 (17~27장)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구별된 삶을 살게 하는 규례를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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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희 이종호 목사
    2022-11-10
  • [조예환 칼럼] 공항 가는 길
    조예환 목사(갈보리교회) [프로필]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 역임 공항 가는 길은 왠지 설렌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동남아가 아닌 곳은 대부분 열 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야 한다. 비행기로 열 시간 이상 이동하는 것이 정말 온몸이 뒤틀리는 고충인데도 이상하게 공항 가는 길은 한결같이 설렌다.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 편하다….’ 하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비행기를 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지하실 방에 온 가족이 살 때였다. 싼 집을 찾고 찾아서 아마도 그 동네로 이사를 한 것이었을 것이다. 한쪽에는 주인집 연탄이 쌓여있고 주인집 보일러도 있는 그 지하실 한편에 방이 한 칸 있었다. 상수도도 하수도도 없어서 물을 길어 와서 밥을 하고 설거지도 마당의 수도에서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에 줄을 서야 했다. 그게 정말 죽을 맛이었다. 다 같이 바쁜 아침 시간마다 일어나는 화장실 전쟁, 가난은 정말 괴로운 것이다. 환경이 그러하니 늘 약간의 연탄가스 속에 살고 있었지만, 눈이 내려서 날씨가 유독 기압이 낮은 그런 날이었나보다. 우리 가족은 단체로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었다. 비몽사몽간이었지만 찬바람 속에 누워있으니 조금 정신이 드는 듯했다. 겨우 샛눈을 떠보니 우리 가족은 마당에 일렬로 누워 있었다. 마치 무장 공비를 사살하여 시체를 늘어놓은 것처럼 비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주인이 연탄불을 갈려고 내려왔다가, 연탄가스가 꽉 차 있어 우리 방을 열어보고 쓰러진 우리 가족을 발견했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와서 식구들을 다 끌어내어 눈 내린 차가운 마당에 눕혀놓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계속 기절한 척 눈을 뜨지 않았다. 정말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창피해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말소리들이 들렸다. “아들을 먼저 살려야지 대가 끊어지면 안 되니.” 하며 내게 맨 먼저 동치미 국물을 먹였다. 식구들이 다 깨어나지 못하니 사람들이 걱정했다. 한참 지나고 주위가 조용해진 듯해 실눈을 떠보았다. 우리가 살던 곳이 김포공항 근처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길이었기에 저 멀리 비행기가 가는 게 보였다. ‘비행기다.’ 내게서는 너무 멀리 있는 비행기, 그 거리보다 더 멀리 있는 나의 환경. 그러나 희망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기도는 또 얼마나 좋은 것인가. 희망은 무엇이나 꿈꿀 수 있고 기도는 무엇이나 구할 수 있다.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너무 비참해요. 너무 창피해요. 제가 지금은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여기 누워있지만, 이다음에 저런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마음껏 다니게 해주세요. 하나님, 세계 어디든 다녀서 비행기를 가장 많이 타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그 기도를 잊지 않았다. 하나님도 내 기도를 잊지 않으셨다. 나는 지금 세계 어디든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집회를 하고 선교를 한다. 정말 비행기 타는 게 너무 힘들어 피하고 싶어 꾀를 부리고 싶을 만큼 비행기로 이동할 일이 많다. 좀 쉬고 싶을 때, 꾀가 날 때, 문득 그날의 기도가 떠오르면서 ‘주님 죄송해요. 이렇게 기도에 응답해 주셨는데 제가 지금은 힘들다고 불평하고 있네요.’ 다시 마음을 다지며 공항 가는 길에 나선다. 기다란 인천 대교를 지나면 다시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가는 곳에 복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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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예환 목사
    2022-11-10
  • [김대조 칼럼] 프사로 공감 나누기
    김대조 목사(주님기쁨의교회) “목사님. 프사 넘보기 좋으신데 바꾸시는 게 좋을 듯해요. 늦었지만 너무 많이 축하 드리고요. 때가 때인지라 실족하실 성도분들도 있을 것 같아 말씀드려요. 아파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ㅠㅠ 목사님은 교회의 대표성을 띠시잖아요…” 문자 하나를 받았다. 아차 싶었다. 난 원래 프사(카톡 대문 사진)를 잘 바꾸지 않는다. 한번 올리면 사계 절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그대로 두는 편이다. 언젠가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가 말씀을 전하며 기도했던 장소를 방문하고 감동을 받아 지금 은 풀이 자라는 잔디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나에게도 웨슬레의 복음의 열정과 영성, 휫필드에게 임했던 성령의 강력한 말씀의 능력을 주옵소서!’ 간절히 소리 내어 기도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 여러 해 동안 내 프사가 되었다. 이제 카톡이 거의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최근에 카톡의 서버가 건물의 방화 문제로 잠시 중단된 일이 발생했고, 국민들 일상의 많은 부분이 멈추어 버린 일이 있었다. 그때 새삼 카톡과 연계된 네트워크의 위상을 실감했다. 교역자들과 대화를 하다가 교회의 중요행사는 그 포스터를 프사로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렇게 하기로 하면서 어색하지만 최근에는 몇 번 프사를 바꾸는 이례적인 일이 있었다. 어제가 내 생일이었다. 수요예배를 마치고 이러저러한 바쁜 사역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가니 늦은 시간이었다. 근 11시가 넘어 아들이 케익을 사 들고 들어왔다. 늦은 밤이라서 오히려 촛불을 켜고 케익 앞에 앉으니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양이 떠올랐다.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선물을 주섬주섬 가지고들 나왔다. 아내는 친필로 ‘To 남푠님~ Sender, 당신의 아내’라는 글씨가 쓰여진 생일 카드를 받고 아이들의 성화에 그 자리에서 읽어주었다. “내 인생 최고의 친구, 영혼의 친구의 귀 빠진 날을 맞이하여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카드 내용은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았다. 착한 아내와 아이들을 주심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이번 생일은 특별했 다. 교회에선 든든한 동역자인 순장님들을 비롯하여 여러분이 축하를 해주었고, 여기저기서 감동이 되는 마음들이 카톡을 타고도 전해왔다. 한 분 한 분 다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어떻게 다들 내 생일을 알았을까 보니, 딸이 “아빠, 카톡에 아빠 생일이 떠요. 그래서 사람들이 아는 거지요~” 그러고 보니 역시 카톡의 힘이었다. 그렇게 한밤중에 케익을 나누고, 생일축하를 받았다. 무엇보다 아내, 딸, 아들이 돌아가며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늘 기도만 해주는 자리에 있다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니 참 감사했다. 이 소중한 시간, 나를 축하해 주는 분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케 익을 앞에 놓고 찍은 가족사진 중 한 장 골라 프사로 올렸다. 그리고 다 음 날 위의 카톡 문자를 받았다. 이태원 참사의 아픔을 함께 하는 마음이었다. 얼마나 힘이 들까,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고통, 이 모든 마음을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어루만져 주시길 기도했다. 얼른 프사의 사진을 바꾸었다. ‘고마워요.’ 문 자를 보내온 집사님께는 답을 바로 보냈다. 하마터면 내 사진 한 장이 본의 아니게 누군가의 마음을 힘들게 할 뻔했다. 서로를 위해 주고, 배려해 주는 마음들이 감사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 서로 돌아보고, 함께 연결되어 있음의 소중함을 느낀다. 우리 모든 성도들의 안전을 위해, 우리로 인해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소원하며 기도의 두 손을 모은다.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 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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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조 목사
    2022-11-10
  • [김상복 칼럼] 창조와 관련된 사역(3)
    김상복 목사 [프로필]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 1. 창조와 관련된 사역 (2) 성령님은 창조의 세계를 보존하십니다 이 창조의 세계가 보존되어 나가는 것, 이렇게 지속되는 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시편 104편 30절에는 성령을 보내서 우주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영어로 새롭게 한다는 것은 ‘renew’라고 합니다. new는 새롭다는 뜻이고, 접두사 re-는 ‘다시, 한번더’라는 뜻입니다. 다시 한번 새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졌다가 봄이 되면 새싹이 나게 하는 일은 누가 하시는 일입니까?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탁한 공기를 비로 싹 씻어주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강 속에 이끼 같은 것을 두셔서 우리가 버린 더러운 물들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또 좋지 않은 물들을 증발시켜 좋은 것만 하늘로 올라갔다 비로 내려주셔서 개울물을 만들어 주십니다. 이렇게 온 우주를 늘 새롭게 해주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또 그뿐이 아니라 성령님은 생성과정 속에서도 역사하십니다. 욥기 33장 4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라고 했습니다. 또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죽었는데 다시 살린다’가 아니고 ‘살려두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살아 있는 것도 성령님 이 우리의 생명을 보존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도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파괴적인 것에도 역사하십니다. 이사야 40장 7절을 보겠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기 마련입니다. 이 마름과 시듦 위에 성령님이 역 사하십니다.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들면 또다시 파랗게 하시고, 움 나게 하시고, 또 피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내 백성은 풀이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이 풀과 같습니다. 우리가 불순종하고, 범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리면 하나님의 영의 바람이 불어와 모든 것을 시들게 하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신 뒤, “네가 듣지 않으면 내가 촛대를 옮겨 버리겠다”고 여러 번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말씀을 듣지 않는 교회들은 주님께서 촛대를 옮겨버려서 이제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때에 더욱더 겸손해야 합니다. 축복하실 때에 더 겸손하고, 더 기도하고, 더 사랑하고, 더 말씀을 사모하고, 더 예배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우리를 향하여, 우리를 위하여 볼 때 감사하고 주님을 더 사랑하고, 더 말씀에 열심을 내고, 더 순종하고 애를 써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도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때에 그 은총이 하나님의 은총인 줄 알고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모르고 교만해져 버리면 하나님의 바람이 반대 방향으로 옮겨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건강도 생명도 가정 도 사업도 모든 것이 시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영은 파괴적인 과정 속에 서도 역사하시기 때문에 늘 깨어서 조심해야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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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복 목사
    2022-11-10
  • [소강석 칼럼] “단풍잎에게 길을 묻다”
    요즘 산행을 하면 온 숲이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계절의 신비를 느끼는 때이죠. 겨울에는 죽은 듯 조용하던 나무에서 연한 잎들이 얼굴을 내밀지 않습니까? 가을의 단풍도 신비스럽지만 봄의 연초록 잎들 역시 언제 만나도 신비롭죠. 온 대지는 푸른 생명들이 스프링처럼 솟아나고 그 푸른 소나타가 온 대지를 푸르르게 만듭니다. 게다가 바람이 부는 들판에서 흔들리며 피는 꽃들은 생명의 아리아를 노래하는 듯하지 않습니까? 여름에는 신록의 계절이 되어 온 산을 눈이 부시도록 푸르게 만듭니다. 그러다가 가을이 오면 계절의 신비를 더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이 부시도록 푸르르던 숲들이 저렇게 붉게 물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단풍이 들다가도 낙엽으로 땅에 떨어지지 않고 내년 봄이 되면 또 다시 푸르른 잎사귀로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단풍은 낙엽이 되고 그 낙엽은 땅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저는 지난주 토요일 산행을 하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 떨어지는 단풍잎들에게 마음속으로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너는 무엇을 위해 봄의 새싹으로 피어났는가. 무엇 때문에 여름에는 푸르르고 지금은 왜 단풍이 되어 낙엽으로 떨어지고 있단 말인가. 무엇을 위해 봄에는 그토록 연녹색의 노래를 부르고 여름에는 신록의 춤을 추다가 가을에는 이렇게 단풍이 들어 땅에 떨어지는가.” 마치 단풍잎은 저에게 이렇게 대답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단풍이 들고 낙엽으로 지는 것이야 말로 사라짐과 영원성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죠.” 사실 이는 가을 시인 김현승의 시 세계이기도 합니다. 김현승은 ‘가을의 향기’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전략) 모든 육체는 가고 말아도 풍성한 향기의 이름으로 남는 상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여 높고 깊은 하늘과 같은 것들이여.” 여기서 육체로 상징되고 있는 일체의 지상적인 것들은 가을이 오면 마르고 시들고 떠나가는 것들을 말합니다. 가을의 이미지들인, 단풍, 낙엽, 마른 풀들을 말하는 거죠. 김현승 시인의 상상력 가운데는 가을 자체가 계절적으로는 육체적인 것이 끝나가는 때로 여겨집니다. 사람의 육체건, 마른 풀이나 나뭇잎이건, 산 까마귀가 구슬프게 울어대는 겨울을 맞는다는 거죠. 그러나 그는 ‘지상의 시’를 통하여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전략)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사라지는 것만이, 남을 만한 진리임을 위하여, 나의 마음은 지금 저무는 일곱 시라면, 시는 그곳에 멀리 비추이는 입 다문 창들...” 한마디로 김현승 시인은 반드시 가을은 모든 걸 사라지게 하는 계절이지만 사라짐이 있기에 영원이 있다는 것이죠. 아니, 사라짐은 영원을 전제로 하고 영원은 사라짐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단풍잎들을 향하여 이런 질문을 했고, 단풍잎은 저에게 김현승의 시 세계를 떠오르게 해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가을이 있습니다. 인생의 가을을 맞으면 우리 육체도 서서히 단풍이 들게 되어 있죠. 그러다가 겨울을 맞으면 낙엽이 어디론가 사라지듯이 우리의 육체도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라짐이 있기에 영원이 있고 또 영원이 사라짐을 품어 주듯이, 언젠가 가을 단풍처럼 떨어지고 사라질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세계로 걸어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독의 시인 김현승에게 있어서 고독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회로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 육체의 사라짐 역시 영원을 향하여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낙엽에게 다시 한 번 길을 물어봅니다. 전도서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전12:1) 오랜만에 만난 분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소목사님, 예전보다 더 젊어지신 것 같아요. 아직도 피부가 40대 같아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얼굴에도 단풍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저의 몸도 언젠가 낙엽처럼 사라지는 때가 오겠죠. 그러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이 주신 사명의 길을 더 잘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순간마다 저의 사라짐이 있기에 영원이 있고 영원은 저의 사라짐을 품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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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6
  • [신간] 하나님을 선택한 구약의 사람들
    저 자 : 조영민 가 격 : 16,000원 출판사: 죠이북스 저 서 : 하나님을 선택한 구약의 사람들 책소개 인생을 살다 보면 수도없이 ‘선택’이라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열세 명의 인물은 그 순간, 하나님을 붙잡는 선택을 하며 믿음의 길을 멋지게 걸어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우리 또한 삶의 크고 작은 문제들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 성경 인물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가진 기준으로 매순간 선택하기를 바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물론 지금 하나님편에 서는 선택을 하더라도 그 길의 끝을 당장, 혹은 빠른시간 안에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명확한 기준점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분과 동행하기를 선택하면 된다고 저자는 전한다. 이 책은 점점 어려워지는 한국 교회 상황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비범하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만이 하나님편에 서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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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제의 신간
    2022-11-04
  • [신간] 너희들에게 가는 따뜻한 속도
    저 자 : 김병재 가 격 : 16,500원 출판사: 비비투(VIVI2) 저 서 : 너희들에게 가는 따뜻한 속도 책소개 AI 시대에 손 편지? 조금이라도 먼저 살아가는 어른의 책무, 삶에서 실천하는 교육 이야기, 책 속에서 입말체로 건네는 학교 현장의 갈등과 고뇌, 속 깊은 사랑은 참된 교육 철학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서로 따뜻하게 다가가게 한다. 저자가 그랬듯이 우리 아이들을 세상에 잘 보내려는 교육 철학이 빛나게 전해진다. 교육 현장에서 새로운 상황, 낯선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성찰한 저자 ‘병재 쌤’은 다양성을 말하고, 창의적 가능성을 기록하고 전한다. 자신을 가둔 시간의 비밀이기도 했다. 서로 하나 되어 웃기도 하고 울어야 했던 아름다운 마음 읽기는 함께 성장하는 놀라운 이야기가 되었다. 가르침과 배움 사이에서 시대적 요청을 헤아리고, 이대로는 안 된다며 다르게 생각하도록 안내한 책으로 상실 시대에 배움의 본질을 깨우치게 한다. 저자는 이 시대 선생들의 아픔을 그대로 써주었다. 마음 담은 편지를 통해 이 시대 선생들이 어떻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야 할지 보여주고 있다. 철학적이지만 진솔하고, 잔잔하지만 휘몰아치는 이 시대의 지성이 녹아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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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제의 신간
    2022-11-04
  • [신간] 다위처럼 기도하라
    저 자 : 이대희 가 격 : 16,000원 출판사: 브니엘 저 서 : 다윗처럼 기도하라 책소개 다윗의 모든 기도는 거의 하나님께서 왜 응답하셨을까? 그 해답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일련의 과정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는 다윗은 전 생애에 걸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별칭을 주셨다. 특히 다윗은 고난과 눈물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며 기도를 배웠다. 지식과 이론으로 배운게 아니라 쫓김과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지독한 삶을 통해 기도를 배웠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윗의 일생을 통해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했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어떻게 구하고, 어떻게 응답받아 행했는지 살아있는 다윗을 만나게 된다고 전한다. 본서는 그의 인생을 통해 기도의 초점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라는 참된 인생기도의 은혜를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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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제의 신간
    2022-11-04
  • [사설] 우리 사회 좀 진정성 있게 나아가자
    우리나라는 국민성이 그리 자부심을 가질 만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 희한한 민족인 것 같다. 정치권만 보아도 편 가르기 아니면 상대방 헐뜯기, 거기에다 요즘 들어 부쩍 가짜 뉴스를 양산해 내어 선량한 사람을 욕보이는 것까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것같다. 사회 또한 어느 한구석도 온전해 보이지는 않는다. 비방과 모함이 멈추지 않는 사회가 정상은 아니다. 사회 지도층에서부터 비방과 불법이 판을 치는 나라, 이 사회가 정상일까 싶다. 이 땅이 정상이 아니라는 증좌로 보이는 것이 근자에 무인도 하나가 경매로 나온 일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전라남도 신안군의 어느 무인도가 경매로 나와 5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응찰하여 감정가의 30배 금액에 낙찰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만큼 혼탁한 세상으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무언의 외침이 아닐까 한다. 제발 좀 진정성 있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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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11-03
  • [사설] 핼러윈, 어느 나라 풍습이길래
    그렇게 목숨을 걸고 참여를 한 것은 결코 아니겠으나, 결과는 엄청난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남들이다 모이는데 나만 빠지면 뭐가 되느냐는 식으로 덩달아 참여한 젊은이가 적지 않았을 것 으로 짐작한다. 도대체 핼러윈 (Halloween)이 무엇인지 알기나 하고 그렇게 들떠서 거리를 메우고 소리를 지르고, 또 그것을 즐기는지 좀체 이해하기가 어렵다. 본래 핼러윈은 천주교의 축일인 만성절(萬聖節)이라고 알려졌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축일(祝日)은 결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유래를 설명하는 글에는 옛날 유럽의 스코틀랜드 켈트족의 미신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날은 음식을 준비하여 죽음의 신에게 제사를 올림으로써 죽은 이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았다는 설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어떻게 해서 이 문화가 미국에까지 전파가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아마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어떤 유학파에 의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지금까지 우리가 낯설게만 여겼던, 정확히는 말로만 들었던 핼러윈이 그 본고장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더 성대하게 축제를 연다 하는 말이 사람을 속상하게 한다. 이번에 150여 명의 아까운 생명을 잃게 만든 서울의 핼러윈 행사는 참으로 두고두고 생각해도 비통한 심정이다. 왜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국적도 불분명한 축제를 즐기느라 생명까지 잃어야 했을까를 생각하면 괜히 원통한 마음도 든다. 천주교의 축일에서 출발했다는 설(說)이 있다고는 하나 우리가 볼 때는 분명 귀신의 장난이고, 마귀의 놀음일 뿐이다. 이 어수선한 세상을 귀신이 세력화하느라 그동안 곳곳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마귀들의 어처구니 없는 문화를 만들어오고 있었던 것이 사실 아니냐고 묻고 싶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그러한 귀신의 세력화 내지는 저질의 문화를 완전히 끊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뜻과도 완전히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가 더 유감스럽고 우려스러운 것은 이제 기억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세월호의 아픈 기억을 다시 불러냈다는 점이다. 조용히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해야 옳을 것 같은데 무슨 욕망이 그리 많아 정치적으로 그것을 이용해먹으려고 하 는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핼러윈 축제가 남긴 귀신의 소 란이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멈출는지 걱정이 앞선다. 지금은 누구의 잘잘 못을 따질 때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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