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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예환 칼럼] 어머니의 바나나 우유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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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조예환 목사
    2023-01-26
  • [김대조 칼럼] 명절, 용서를 생각하다
    김대조 목사(주님기쁨의교회) “김 목사, 제일 용서를 안 하는 사람들이 누군 줄 아니? 목사들이야” 개척을 하고 열심히 교회를 세우며 뛰고 있던 어느 날, 걸려 온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의 목소리셨다. 교회를 개척하고 학교에서 예배를 드리니 교회가 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다. 마침 가까운 지하철역 안 벽 광고 문의가 들어왔다. 기회다 싶어 그 광고면을 활용하기로 했다. ‘제자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생명공동체~’ 교회를 소개하는 문구와 함께 개척을 할 때 옥한흠 목사님이 써 주신 추천의 글과 함께 옥 목사님의 사진도 작게 넣었다. 그것이 그 누군가의 눈에 거슬렸나 보다. ‘왜 주님기쁨의교회 광고에 옥한흠 목사님이 들어가도록 허락을 했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전화가 걸려 오고 있어서 입장이 참 곤란하시다는 말씀이셨다. 느낌이 왔다. 당시에만 해도 옥한흠 목사님의 영향력이 컸던 터라 주변 교회들이 새로 개척한 주님기쁨의교회로 몰려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때 바로 옥 목사님의 사진을 광고에서 빼는 수정을 했던 씁쓸한 기억이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설 명절이다. 옥한흠 목사님이 그때 하신 ‘용서’에 대한 말씀이 불쑥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명절은 마냥 즐거웠다. 일 년에 한 번 새 신발, 새 옷을 얻어 입을 수 있는 시간. 그때는 부모님의 명절에 대한 부담은 생각하지 못했다. 남들은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 명절이 더 외로운 사람들이 있고, 명절을 끼고 더 많은 마음의 힘듦이 찾아올 수도 있음을. 한 결혼 정보 회사의 설문조사에서는 일 년 중 부부 사이에 가장 많은 다툼이 일어나는 때가 명절이고 그 외에 부부의 생일, 결혼기념일 순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가장 행복해야 할 시간이 의외로 누군가에게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간일 수 있음이다. 명절이면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가슴이 설레는 이들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불편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다. 때로 만나고 싶어도 서로의 마음의 거리로 인해 만날 수 없는 경우도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명절이 얼마나 힘이 들까. 이번 명절은 ‘용서’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고 보냈으면 좋겠다. 예수님의 제자가 묻는다. ‘몇 번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을 일흔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어렵다. 그러나 나도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받은 사람임을 기억한다면 용서하면서 살아야 하고, 조금은 더 용서할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 아픈 기억보다 고마운 기억, 사랑을 나누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용서하는 명절’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품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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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김대조 목사
    2023-01-26
  • [송용필 칼럼] 마음을 지키는 방법(히브리서 3:7~19)
    송용필 목사 [프로필] ◈ KAICAM 고문 동남아의 한 지역에서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먼저 누가복음을 10절씩 매일 번역하여 원주민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6장 30절은 그냥 넘어가 버렸습니다.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하지 말며”라는 말씀이었는데 이 말씀을 전했다가는 원주민들이 자신의 모든 물건들을 가져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빼먹은 이후로 큰 양심의 가책을 느낀 선교사는 결국 전에 빼먹은 말씀이 있다며 그 말씀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다음날 원주민들이 몰려와 선교사의 여러 물건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선교사는 말씀에 책임을 져야 했기에 모두 주었습니다. 다음 날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가져간 물건들을 다시 가져온 뒤 말했습니다. “당신이 가르친 말씀이 참이라는 것을 이제는 믿겠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이제는 정말로 배우겠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해 보이지만 자신과 타인의 삶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는 삶입니다. 히브리서 3장 7절부터 19절에는 강퍅한 마음에 대한 경고가 나와 있습니다. 말씀을 지켜야할 상황에서 순종하지 않는 것과 죄의 유혹에 빠져 거룩한 행동을 져버리는 것은 모두 마음이 강퍅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마음을 지키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에 욕망이 쌓여, 욕심에 눈이 멀어 그 소리를 무시하고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통해서 우리가 그것을 듣기 원할 때든 원하지 않을 때든 우리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매 순간 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사 50:10/삼상 15:19) 둘째, 지금 순종해야 합니다. 변화의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순종하지 않고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후회가 남게 됩니다. 파종의 때가 지나면 아무리 좋은 씨를 뿌리고 열심히 관리를 해도 추수의 때에 거둘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순종은 우리의 작은 일상에서의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지금 반응하십시오.(마 13:18~21) 셋째, 하루를 반성해야 합니다. 그날의 삶을 반성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루 중의 실수와 잘못들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실수를 통해 나의 성격과 자주 빠지는 유혹, 관계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더욱 잘 파악하게 되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게 되고 진실하게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었는지 매일 하루를 반성하십시오.(잠 1:24) 오늘 본문을 통해 마음을 지키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마음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도 영향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모든 거룩함으로 마음을 가득 채울 때에 우리의 삶과 행동은 더욱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오늘도 말씀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사십시오. 주님!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순종의 모습을 갖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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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송용필 목사
    2023-01-26
  • [소강석 칼럼]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면...”
    저는 남원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온 마을이 떠들썩하도록 유명한 소년으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대나무 뿌리로 때려가며 억지로 공부를 하도록 했던 큰 형님이 군대를 가서 그때부터는 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시험을 쳐서 고등학교를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제가 가까운 전주로 고등학교를 가야 되는데 후기도 아닌 전기 때부터 군산제일고를 들어갔습니다. 물론 그때 군산제일고는 전라북도에서 굉장히 뜨는 학교였습니다. 원래 군산제일고등학교의 전신은 영명고등학교였는데 고판남 회장님께서 학교를 인수하셔서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유망한 학생들을 모집한 학교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학교에 입학을 해서 저의 가정과 전혀 관계가 없는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나중에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소명을 받고 신학교를 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전혀 몰랐는데 먼 훗날에서야 제 모교를 전킨 선교사가 세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킨 선교사는 유니온 신학교를 졸업하고 1892년 12월 3일 한국에 선교사로 도착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10개월간 한국어 공부를 한 후에 전라도 지방으로 내려갔습니다. 내려가자마자 그는 노방전도를 하고 축호전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전도를 하다가 급류에 빠져 죽을 뻔하기도 하고 연탄가스 중독으로 쓰러지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막에서 밤에는 모기나 빈대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온갖 고생을 감내하면서 호남지방에 선교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는 군산에서 선교를 하고자 군산포구에 거처를 정하고 전도로 결실을 얻은 몇 명의 교인들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곳이 바로 군산 구암교회와 개복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의 모교를 세운 것입니다. 그의 열정은 군산 지방의 선교로만 국한하지 않고 옥구, 익산, 김제 등 여러 곳을 다니면서 선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 풍토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자신만 풍토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세 아들을 낳았는데 세 아들 모두 풍토병에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을 향하여 절망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고백을 하며 감사했다고 합니다. “선교사가 풍토병에 걸린 것은 선교사의 영광이고 특권입니다. 그리고 자녀 셋을 다 잃은 것도 시험이 아니라 시련일 뿐입니다. 이것은 재앙이 아니라 선교사의 영광 중의 영광이고 사명자의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선교사가 하늘에 쌓은 상급과 면류관이 더 많아지고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킨 선교사가 풍토병이 걸린 병든 몸으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선교를 하자, 전라도 지역 선교사들이 회의를 해서 이분을 강제로 사역지를 전주서문교회로 옮겨 버렸습니다. 당시 전주서문교회는 제법 부흥이 되어 있어서 교회가 안정적이고 자립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킨 선교사로 하여금 20리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못하도록 선교사들이 결의를 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전킨 선교사님은 다시 몸이 근질근질해서 전주서문교회를 재건축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전국에서 가장 큰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이 정한 20리 밖을 나가서 여섯 교회를 개척하고 고아원까지 설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07년 12월 마침내 그는 풍토병으로 인한 급성 폐렴이 찾아와서 몸져눕게 되었고 1908년 1월 2일 43세의 젊은 나이로 땅에 묻히고 맙니다. 저의 삶이 어찌 전킨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분명한 것은 젊은 시절부터 전킨의 영성과 스피릿이 제 안에 어느 정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학교를 간다고 집에서 쫓겨나던 일, 백암교회를 개척하던 일, 가락동에서 몸부림치던 야성의 나날, 분당과 죽전까지 이어지는 폭풍의 질주, 성대를 두 번이나 수술하던 일 등 일련의 사건들이 그걸 증명한다고 할 수있겠지요. 이걸 칼 융의 집단 무의식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니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킨이 뿌린 열매를 하나님이 거두셨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전킨은 43세에 죽었잖아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전킨 선교사님께서 자기가 세운 학교 출신인 소 목사가 지금의 사역을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까. 어쩌면 나도 전킨처럼 43세의 나이에 죽었다면 더 순수하고 더 깨끗하고 더 맑은 영혼으로 천국에 갔을 텐데... 전킨과 나를 비교해 본다면 43세 이후부터의 삶은 덤으로 살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는 43세 이전의 맑은 영혼을 그대로갖고 있을까. 43세 이전에 그 순수함이 나에게는 얼마나 가득 배어 있을까.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면 하루하루가 더없이 소중할 텐데... 불붙는 소명감뿐만 아니라 더 깨끗한 영혼으로 주를 섬기고 목양일념에 빠져 살아야지.” 전킨이 세운 학교를 나왔기에 전킨 같은 삶을 살아야 하고, 그것도 덤으로 사는 삶이라면 더욱더 전킨의 스피릿으로 살아야 하겠다는 부담감이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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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01-22
  • [소강석 칼럼] “작은 거인 앞에 큰 절을 드렸습니다.”
    올해는 정전 70주년입니다. 연초부터 한국전 참전용사들에 대한 보은과 보훈의 정신을 함양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 오전에는 저희 교회가 진행한 제16회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주 내용으로 소개되는 ‘워싱턴에 새겨진 한국전쟁의 별’ 다큐 시사회를 하였습니다. 사실 저희 교회 참전용사 초청행사는 KBS와 SBS방송을 통해서 여러 번 방영이 되었고 재방, 삼방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사에는 유튜브에 올려주지 않고 우리도 저작권에 걸려서 유튜브에는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저작권을 갖는 유튜브 영상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시사회에 참석한 우리 교인들뿐만 아니라 여러 기자들이 가슴이 울컥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중앙보훈병원에 있는 참전용사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방문을 하였습니다. 보훈병원을 갔는데 너무 미안한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보훈병원은 여러 군데를 찾아다녔지만 정작 한국에 있는 보훈병원은 처음 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서 들은 바에 의하면, 저만 처음 간 것이 아니라 교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보훈병원 관계자분들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보통 수요예배에는 코로나 여파로 인해서 20~30명밖에 안 모였지만 제가 간다고 하니까 병원 측에서 협조를 해 주셔서 보훈가족들이 많이 모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위문품이 대단한 것도 아닌데 병원 측에서 위문품 전달식까지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또한 전광판에 “소강석 목사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글까지 올려 주셨습니다. 참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막상 국가유공자나 가족들 앞에서 설교를 하려니까 너무 감사할 뿐만 아니라 송구한 마음이 그지없었습니다. 한국전 참전용사, 베트남 참전용사들이 휠체어를 타고 참석을 했는데 그 순간을 버티질 못해서 기관지에 가래가 걸려서 기침을 하고, 또 보호자가 가래를 뱉어 내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10분, 15분 내외로 짧게 설교를 끝내려고 했는데 위문품 전달식 행사 시간 때문에 설교를 좀 길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저의 간증도 하면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저는 98세 되시는 김석규 선생님께 다가갔습니다. 그분은 6.25 참전용사이신데 지금은 워낙 고령이셔서 휠체어에 의해서만 움직이실 수 있었습니다. 저는 휠체어에 앉은 어르신을 보는 순간 우리나라 한국전쟁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고 그 모든 역사가 그 어르신의 얼굴에 다 새겨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은 체구도 아주 작으시고 키도 작으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제 앞에는 작은 거인으로, 아니 작지만 위대한 거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냥 맨바닥에 엎드려서 큰 절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누군가가 같이 맞절을 하는 것입니다. 봤더니 그분의 아드님이셨습니다. 그분의 아드님도 교회 장로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장로님께서 아버지에게 절만 해주지 마시고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왼손으로는 그분을 보듬고 오른손으로는 퉁퉁 부은 다리가 가라앉고 떨리는 다리는 진정되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간절히 기도를 해드리고 나오는데 갑자기 17년 전에 사건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2007년 1월 15일에 마틴 루터킹 국제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전야제에 참석하였는데, 한 흑인 노병이 와서 왼쪽 허리에 총상 흉터를 보여주면서 누가 초청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전쟁 후에 한국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며 울먹이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저도 모르게 그 분께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며 “제가 꼭 한국으로 초청하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저는 많아야 예닐곱 명 데리고 오실 줄 알았는데 50명 가까이 데리고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시작되었고 16년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해 오게 된 것입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흑인 노병에게 큰절을 했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매년 6월이 되면 외국에서 초청한 참전용사들과 함께 현충원을 방문합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 심지어는 자유로운 목회 활동까지 할 수가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참전용사 어르신들이 고령이 되셔서 갈수록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전 70주년을 맞아 한 분이라도 더 우리 교회에서 초청하고, 또 한 번이라도 더 많이 만나 보은과 보훈의 정신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보은을 행하는 것이 한 사람의 인격과 품격을 가늠한다고 한다면, 보훈의 정신이 가득하고 그 가치를 함양 하는 것은 한 국가와 국민의 품격을 가늠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지난 16년 동안 보은과 보훈의 정신을 함양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17년째인데 이 땅에 참전용사 어르신이 한 분이라도 살아계실 때까지 그분들을 찾아뵙고 초청하여 보훈의 행사를 하려고 합니다. 이 또한 품격 있고 격조 있는 애국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 땅에 참전용사들이 하나님께서 건강 주셔서 오래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보훈가족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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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01-15
  • [신간] 더 구원받음
    저 자 : 김창영 가 격 : 15,000원 출판사: 생명의말씀사 저 서 : 더 구원받음 책소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구원, 바로 ‘그’ 구원을 증거하는 책! 기독교의 핵심 진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요한 진리가 강단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강단에서 형통, 부, 건강, 번영, 긍정적 사고, 자아 발전을 통한 치유, 세상에서의 성공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게 한국교회의 현주소이다. 이에 저자는 구원, 그리고 성경적 진리들이 다시금 강단에서 되살아나야 한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이 책을 통해 구원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구원은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며 성도가 교회에 출석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기독교의 능력은 죄인을 구원하는 데 있다. 구원이 주인공이고 다른 것들은 모두가 조연이다. 이 책은 구원의 진위 여부를 판단케 하는 성경적 질문들로 하여금 자신의 구원을 점검하게 하며 구원의 각 과정과 개념에 자신을 투영시켜 봄으로써 바른 구원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구원을 점검하며 제대로 알고, 받고, 확신하고 살라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한 바울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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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제의 신간
    2023-01-12
  • [신간] 100년 넘은 시골교회 젊은 교회가 되다
    저 자 : 권준호 가 격 : 15,000원 출판사: 브니엘 저 서 : 100년 넘은 시골교회 젊은 교회가 되다 책소개 저자는 “성도들의 변화는 확실히 소그룹에서 일어나고, 훈련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라고 밝히고 있다.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성도수를 자랑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례를 많이 주는 교회가 되어 주님을 위해서 녹슬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닳아서 없어지기를 간구한다. 이 책은 저자의 평신도 사역과 셀 목회가 오롯이 담겨 건강한 교회를 세우려는 기록이다. 20여 년간 평신도가 사역하는 교회를 세우려는 외침이다. 시골교회를 전도형 교회, 양육형 교회로 세우고 있는 고백서이다. 한국교회가 사는 길이 무엇일까 늘 고민하는 저자는 그 해답으로 지름길 신앙을 버릴 것을 권한다. 본서는 지름길은 빠르게 보이고, 좁은 길로 가는 것은 느리고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좁은 길은 영광의 자리에 서는 길이며 생명의 길이라고 전한다. 빠른 목회자보다 바르게 목회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목양관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의 땀과 눈물, 헌신과 기도가 집약되어 이루어낸 결정체로 한국교회의 좋은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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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제의 신간
    2023-01-12
  • 신간] LEXHAM 성경지리주석
    저 자 : 베리베이첼 편집 김태곤 옮김 가 격 : 60,000원 출판사: 죠이북스 저 서 : LEXHAM 성경지리주석 책소개 이 책의 특징은 70여 개의 지도, 190여 개의 현장 사진, 140여 개의 이미지 자료, 주요 성경 단어 연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학문적인 깊이와 오랜 현장 연구를 겸비한 사도 시대 지리의 권위자 19명의 필진이 세심하게 성서 지리를 안내한다. 초기 사도 운동의 발자취를 따라 기독교 교회가 성장하는 흐름을 공간적인 측면에서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 사도행전과 서신서 들의 주요 배경이 되는 지역과 공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성경 본문을 생생하게 들여다보도록 이끈다. 성경을 읽는 이들, 목회자와 교수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참으로 귀한 자료이며 그 시대에 대한 정보의 보고이다. 신약성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본서에서 접할 수 있다. 초기 기독교 운동의 성장 과정을 그 지리적 배경 속에서 논의함으로 주석 문헌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공백을 메워준다. 지리학과 역사는 중요하다. 대부분의 주석에서 언급되지 않는 논의와 통찰을 제시해준다
    • 오피니언
    • 화제의 신간
    2023-01-12
  • [사설] 국회의원 수를 늘리자는 선거법 개정안
    결론을 먼저 말하라면 ‘반대’ 쪽에 손을 들 국민이 훨씬 많을 것 같다. 그러한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 이 법안을 발의한 것 아닌가 한다. 회기(會期) 중 불체포 특권을 비롯한 200여 가지가 넘는 특권에 취해 지내다 보니 아마 정신 상태가 좀 몽롱해져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대개는 이런 의안에 눈살을 찌푸릴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 전체 국민의 수가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국회의원 수를 줄여도 모자랄 판에 반대로 늘리자고 하면 좋아할 사람 별로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알려진 바와 같이 국회가 하는 일이라고는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된 일에는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서민들의 생활과 관련한 문제에서는 전혀 급할 것도 중요할것도 없다는 듯 뒤로 미루기를 밥 먹듯 하는 인사들, 어디가 예뻐서 그 숫자를 늘린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그것도 지금의 300명을 360명으로 대폭 늘린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도 않는다. 국민들 입에서 국회 해체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이번에 올라온 법 개정안은 폐기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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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3-01-12
  • [사설] 용서하며 사는 교회 공동체 되자
    사람이 사는 사회는 알다시피 자신의 성향이나 체질과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또 그렇지 못하고 전혀 다른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어느 쪽이 되었건 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교회 공동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차피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공동체라면 그것이 교회든 사회든 모인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러한데도 기어코 내 취향에 맞는 사람을 찾겠다고 하는 것은 적지 아니 그 자신 피로감만 더할 뿐이다. 간혹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라치면 지극히 사소한 일임에도 단지 생각의 차이 때문에 다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예배 공동체인 교회가 깨어지고 마는 경우를 보게 된다. 문제는 규모 면에서 작은 교회가 아닌 제법 크다고 하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경우, 소위 힘이 센 편의 위세에 밀려 약한 무리(?)가 공동체를 나가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곧잘 하는 말이 서로를 ‘용서할 수 없다’는 단호함이다.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못 하고의 권세를 주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실에서는 자주 목격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무리들 가운데는 선동하기를 좋아하고 그것이 습관으로 몸에 밴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극히 사소한 일 같으나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을 선동하여 집단행동을 하다 보면 교회 공동체에도, 자기 자신에게도 결코 유익이 되지 않는 일을 함으로써 떠돌이 신앙인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이들을 목격하게 된다. 자신의 작은 체면이나 위신을 세우다 보면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하는 탓이다. 적어도 우리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는 올해 여기서부터 새로운 모습을 갖출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든지 이제 새해는 이것 하나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겠다. ‘용서하고 나아가자’는 것이다. 작은 것 하나 용서하지 못하고 어떻게 우리 주님이 지고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따르겠다는 얘긴지 모르겠다. 세상의 정치단체나 이익단체가 서로 갈라져 으르렁거리는 것은 눈에 보이는 작은 이익 때문이라 하겠으나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공동체가 아닌가! 새해에는 세상과는 다른 용서하는 공동체가 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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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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