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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빈방 있습니까?
    ‘빈방 있습니까?’ 베들레헴 온 동네를 다니며 처절하게 외치는 요셉에게 선뜻 방이 여기 있다고 부르는 대답은 없었다. 만삭이 된 아내의 태중에서 생명이 세상에 나오기 위한 시간은 점점 가까워오는데, 해산할 자리는 좀체 구할 길이 없어 안타까움만 더해가는 순간 그의 눈에는 비어있는 마구간이 들어왔다. 마구간이면 어떠랴! 삭풍을 막아줄 수만 있다면 그까짓 마구간이면 어떠하랴 싶어 급히 아내 마리아의 무거운 몸을 감싸듯이 이끌어 자리에 앉혔다. 이내 아기는 고고(呱呱)의 울음을 터뜨리고 세상으로 나왔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던 날 밤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만 왕의 왕으로 오신 이의 탄생 스토리는 이렇게 극한의 추위를 뚫고 뜨끈한 세도가의 아랫목이 아닌, 외롭고 쓸쓸한 찬바람만 겨우 가릴 수 있는 외딴집 빈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야 했다. 태어나자마자 강보(襁褓)로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성경 기자 누가는 전한다(눅2:7). 비단 금침에 싸여 누인 귀한 집 자제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낮고 천한 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인간의 눈에 비친 그의 탄생 스토리는 그렇게 초라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탄생은 그렇게 간단히 많은 사람의 동정이나 구하는 순간의 이야기로만 끝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때도 아마 지금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와 교만의 영이 가득한 가운데 죄악이 관영(貫盈)하여 어두워진 세상에 빛을 비추시고자 오셨던 분이시다. 그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요1:12) 말씀하셨으나 세상은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이를 시대적 상황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오늘날의 시대를 비추어봐도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끝없는 투쟁과 높이 쌓아가는 바벨탑 아래서 사람들은 그저 화려한 상가의 쇼 윈도우에서 생명의 주님을 찾기를 원하나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외치고 계신다. ‘빈방 있습니까?’ 애타게 찾으시는 주님의 외치심에 응답하는 길은 하나다. 우리 모두의 마음에 마구간 하나라도 마련해두고 주님이 오시기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모두가 다 마음의 문을 닫고 영접하기를 거절하는 현대 사회에 주님이 들어오실 자리는 보이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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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12-15
  • [안도현 칼럼] 번뇌하는 인생
    안도현 목사 (아름다운교회) [프로필] ▣ 순복음 신학교 교수 ▣ 前 일기연, 42대 고양시기독교연합회장 ▣ 사랑이 있는 마을 담임 ▣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전 1:18)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혜와 지식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부분 관심을 두지만 전도자는 지혜와 지식의 악영향을 논하고 있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귀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삶에 유익을 주기보다는 해가 될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 마음 편할 수 있지만, 너무 많이 알면 근심 걱정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아는 것이 병”이라고 말합니다. 최근 건강의 중요성으로 인터넷과 케이블 TV 등에서 건강정보가 넘쳐나면서 ‘건강 염려증’과 ‘건강 과민증’ 환자가 늘고 있습니다. 건강 염려증은 병이 없는데도 있다고 믿는 것으로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는데도 믿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는 ‘의료쇼핑족(族)’ 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도자의 말과 비슷한 한자 표현은 ‘식자우환(識字憂患)’입니다. 글자를 아는 것이 도리어 근심을 사게 된다는 뜻입니다. 식자우환이라는 말은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너무 많이 알면 오히려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지만 너무 많이 알면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철학자인 칸트는 무엇이든지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는 매우 냉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인으로부터 청혼을 받았으나 쉽게 답변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답답해하던 여인이 드디어 칸트에게 다가와 결혼 여부를 분명하게 말하라고 다그쳤습니다. 칸트는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간단하게 말한 뒤 바로 도서관에 가서 결혼에 관한 책들을 찾아 결혼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과 반대하는 의견을 모아 연구하며 결혼을 해야 할 것인지 안 해야 좋을 것인지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집에 찾아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당신의 따님과 결혼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이버지는 “여보게, 너무 늦었네. 내 딸은 벌써 결혼해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됐다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너무 많이 알면 약아지기 쉽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법을 전혀 모르는 자영업자는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제공하면서 하루하루 먹고 살며 세금 꼬박꼬박 잘 내지만 세법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법을 피해 탈세를 하며 부당 이익을 얻는데 몰두하는 것입니다. 많은 지혜와 지식의 폐단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마음이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을 가짐으로 겸손해져야 하나 오히려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학(神學)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연구하는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교에서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분석하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한때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사신(死神)신학까지 논할 정도였습니다.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유럽과 미국 사회는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세속화된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60년대에 미국에서 태동한 사신신학은 사실상 하나님을 부정하며, 신 없는 신학, 특히 하나님 없는 그리스도론을 전개했습니다. 이러한 폐단을 생각할 때 신을 연구하는 학문, 신학(神學)이라는 말은 그리 적합한 표현이 아닌 듯 싶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분석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차라리 신앙에 대한 학문, 신학(信學)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지혜와 지식을 가질수록 모든 인간사의 불완전하고 불만스러운 본질에 대해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뇌도 깊어지고 근심도 더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는 더 많아지고 깊어질수록 더욱 경건한 삶, 평안한 마음, 더욱 온전한 인격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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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5
  • [고병국 칼럼] 어디까지 갈까?
    고병국 목사 (한소망교회) [프로필] ▣ 협성대학교 신학과 졸업 ▣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졸업 ▣ 서울남연회 강동지방 감리사 역임 ▣ 온맘 닷컴 “목회칼럼” 연재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애완견을 유모차에 태우거나, 안고 다니거나, 함께 동행 하듯 다니는 사람들 모습이다. 애완견이 아니라 반려견이라는 말까지 한다. 필자도 애완견을 15년 키우다 수명을 다해 떠나보내기도 했다. 가끔은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할 정도의 모습이 보일 때는, 이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지나간 2002년 글을 정리하다가 그런 글을 읽었다. ‘어디까지 갈까?’ 전문이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고 있는 것도 많겠지만 대부분은 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변해도 이렇게까지 변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변하는 것이 있다. 몇 일 전에 신문을 읽다가 정말일까 할 만큼 의구심이 가는 대목이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는 월드컵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하다. 전국에 있는 월드컵 경기장을 모두 개장을 하였고, 앞으로 월드컵이 열리는 날까지는 경기장 주변을 경비를 한다. 몇 달 전에는 외국의 언론과 단체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기호식품으로 선호하는 보신탕을 가지고 설왕설래하였다. 조금은 잠잠해진 듯 요즘은 조용하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국민소득 10,000불을 향해 달리는 선진국 진입에 들어왔다. 물론 한때 외환위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한창 힘들고 어려운 때 같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실물경제를 다루고 체감으로 느끼는 경제는 더욱 악화될 수도 있겠다. 사회가 점점 복잡화하고 인간의 마음들이 점점 외롭고 심리적인 위기감을 가지게 될 때 무엇인가를 의지하고 기대고 새로운 사랑의 대상을 찾으려고 한다. 아니 생활경제 수준이 조금 향상되면 인간은 무엇인가를 키우면서 인간의 허전한 마음과 무의미함을 달래려고 한다. 그 가운데 근대에 들면서 집집마다 키우는 것이 애완견 등이다. 요즘은 애완동물도 다양하다. 애완견. 고양이, 심지어는 도마뱀 등을 집에서 사람과 함께 키우고 있다. 과거에는 집에서 개를 키우는 것은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보신용이라든지, 집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라든지, 사냥을 하기 위함이라든지,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집집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시대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경제수준이 향상되고 핵가족 중심이 되어 가다보니 점점 애완동물을 사람들이 선호하고 키우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런 애완동물만을 취급하는 여러 가지 사업들이 성행을 하게 되었다. 동물병원이 그중의 하나이다. 요즘의 동물병원은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수의사가 기껏해야 가정에 소나 가축들이 질병이 들고 새끼를 낳을 때 수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에 가끔씩 볼 수가 있었다. 고향교회에도 수의사 하시는 장로님 한 분이 계셨는데 항상 보면 가방을 들고 방문하면서 가축을 돌보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런데 요즘은 동물병원을 보면 웬만한 시설을 뺨칠 만큼 고급화가 되었다. 애완동물만을 다루는 미장원이 성업 중이고, 사람들이 휴가나 출장을 갈 때 비어있는 동안 애완동물을 맡겨 부탁을 하는 곳까지 성업 중이다. 그러던 것이 드디어는 삼베 수의로 입히고 오동나무 관까지 사용해서 애완견 장례를 치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말에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있다. 얼마나 개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편하고 쉬우면 이런 말까지 나왔겠는가? 지금 우리들의 주변은 사실 심각할 형편이라고 한다. 외환위기 이후에 밀어닥친 경제는 휘청거린다고 하며, 걸식노인들이 수백만을 넘는다고 한다. 소녀 소년 가장들이 점점 수를 더하고 있고 청년실업자의 증가,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즐비하고 시설과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는 예년같이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없다고 야단들이다. 이런 가운데 애완견 장의 업이 강남에서 인기라는 신문을 보니 왠지 씁쓰레한 기분이다. 모든 것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있다고 한다. 수요자가 있으니 공급자가 있게 마련이다. 강남의 수준이 다른 지역보다 조금은 났기에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디까지 갈까? 정말 의구심이 든다. 애완견 장의업체가 1999년 7월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장의업체를 찾는데 지금은 한 업체는 한 달에 100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애완견을 화장장으로 하고 납골당까지 만든다고 한다. 점점 수요자가 증가되니 납골당과 화장장을 증축하고 투자를 많이 한다고 한다. 그리고 장례절차도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삼베 수의를 입히고 라면박스 만한 오동나무 관에 넣고 개 전용 화장터에서 화장한 뒤 납골당에 안치한다고 한다. 화장장에는 천도재나 장례예배가 열리기도 한다고 한다. 앞으로는 애완견 전용 결혼식장도 있을 날이 오지나 않으런지 모르겠다. 개는 역시 개일 뿐인데 왜 그렇게 야단을 떨고 소란을 피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천하에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묻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야단스럽게 호들갑을 떠는 자들이여 얼마나 이웃의 불행과 가난과 빈곤에 시달리는 이웃을 돌보고 관심을 가지고 함께 울고 웃었는가? 아직도 사람이 개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아는가?(200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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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병국 목사
    2022-12-15
  • [함정호 칼럼] 하나님이 보내신 은혜의 사자(엡 2:19~22)
    [프로필] ◈ 영화교회 담임목사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이 또는 불행이, 천국이 또는 지옥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주님은 성도에게 가지각색의 사람을 연결해 주셔서 몸의 성전을 건축케 하는 축복을 주신다. 성전이 되면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 되는 무한한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복을 주신다” 하나님은 인성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 택한 만민을 구원하셨고 축복을 주셨다. 또한 제자들을 세우고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 복음을 주시고 복을 받게 하셨다. 의인을 통해 죄인을 구원하시고, 성인을 통해 아이들을 구원하시고, 건강한 자를 통해 병약한 자를 구원하시고, 부자를 통해 가난한 자를 구원하시고, 유식한 자를 통해 무식한 자를 구원하시고, 유능한 자를 통해 무능한 자를 구원하신다. 또한 의인은 죄인 구원을 통해서 더 복되게 하시고 성인은 아이를 구원하여 더 복되게 하시고, 건강한 자는 병약한 자를 구원함으로 더 복되게 하시고 부자는 가난한 자를 구원함으로 더 복되게 하신다(마 25:31~40). 고로 수은자는 시은자를 통해 복을 주시고 시은자는 수은자를 통해 주님이 구원의 은혜와 복을 주신다. “악인도 선인도 성도가 만난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신 은혜의 사자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악인들은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보낸 은혜의 사자였다. 왜? 이로 인하여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기 때문이다(빌 2:5~11) 악한 요셉의 형들과 보디발 아내는 하나님이 요셉에게 보낸 은혜의 사자였다. 애굽의 총리로 올라가는 매개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간파한 요셉은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 45:5)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버려진 모세에게 보낸 바로의 공주는 은혜의 사자였다. 모세의 어머니가 되어줬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보낸 최고 은혜의 사자는 주의 종들이다” “일곱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계 2:1~3:14) “일곱별은 일곱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교회니라”(계 1:20) 말씀같이 주님이 능력있는 오른손으로 붙잡고 쓰시는 주의 종은 성도들에게 보낸 최고 은혜의 사자다. 왜? 예수님의 모든 구원의 은혜와 모든 영육간의 축복을 예수님께 받아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이는 영안이 열린 자만이 알 수 있기 때문에 “일곱별의 비밀”(계 1:20)이라 하셨다. 이 비밀을 아는 자만이 주의 종을 통해서 주시는 바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 이 비밀을 안 ○○○박사 부모는 또는 ○○○집사 부부는 주의 종들을 주님께 하듯 선대함으로 자녀 복을 받았고, 큰 영적 축복과 물질의 축복 받았다. “모든 은혜의 사자들을 믿음으로 선대할 때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 예수님은 당신을 죽이는 악인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요셉도 형들을 향해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창 45:5) 다윗도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왕을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신 것이니...”(삼상 24:6) 고넬료는 베드로를 주님께 하듯 섬김으로 복을 받았다. 은혜의 사자를 대적하고 박대한 사울왕이나 가룟유다는 멸망했다. 은혜의 사자로 알고 선대하는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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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정호 목사
    2022-12-15
  • [암동훈 칼럼] 예수나라 옴니버스
    임동훈 목사 (예수나라공동체) 아마데이스(Αmadeis)는 영적 진리를 배우지 못해 믿음의 기반이 부실하고, 성령의 인도를 깨닫지 못해 일을 그르치는, 이른바 ‘무식한 자들’이다. 그 삶은 설상가상(雪上加霜)이요 첩첩산중(疊疊山中)이며, 엎친 데 덮치고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한번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 연거푸 꼬여 난맥상이 일어난다. 일사천리(一瀉千里) 만사형통(萬事亨通)을 추구하는 예수쟁이에게 더욱 혹독하게 다가온다. 바른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2002년 10월, 일산으로 이사하였다. 카드깡으로 2,000만, 가등기로 5,000만, 사채로 3,000만 원을 마련하였다. 우선 급한 빚을 갚고 다른 채무까지 단번에 정리하기 위해 궁리하였다. 처음에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였다. 머지않아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장밋빛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사회 경험도 없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놈이 찍새(싼 물건을 사서 되파는 자)로 승부수를 띄웠다가 정말 된통 찍힌 새가 되고 말았다. 그해 12월 초, 공매로 매입한 임야에다 1,000만 원의 웃돈을 주고 공릉동 삼거리의 식당과 교환하였다. 친구의 언니를 소개받아 장사를 시작하였다. 반지하에 난방이 안 돼 견적을 받아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급매로 지역신문에 광고를 냈다. 1주일간 작정하고 거기서 기거하며 간절히 기도하였다. “오, 주여! 이 식당만 팔리게 해주시면 술파는 가게는 평생 쳐다보지도 않겠습니다!” 기가 막힐 정도로 딱 1주일 만에 24시 해장국집 사장이 찾아와 바로 계약하고 다음 날 인계하였다. 그리고 일산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기도를 돌아서 바로 잊어버렸다. 오히려 서울은 넓고 사람은 많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2003년 1월, 1,200만 원에 다른 임야를 얹어 주고 응암동 시장의 2층 카페를 찍었다. 문을 닫은 지 꽤 오래되었다. 서둘러 그 자매의 명의로 영업허가를 내고 사업자등록을 하였다. 식자재를 구입하고, 소주와 맥주를 들여놓고, 카드단말기를 임대하여 영업 준비를 마쳤다. 그때부터 일이 자꾸 꼬이기 시작하였다. 어렵게 마련한 자금을 다 까먹고 빚더미의 최고봉을 찍을 때까지, 나는 미련 방퉁이로서 그 약속을 깨닫지 못하였다. 카페를 오픈하자 IMF시절보다 더 심한 불경기와 강추위가 밀어닥쳤다. 거기서 밤을 지새우며 애썼으나 찬바람만 쌩쌩 불었다. 2월 초, 기습 한파로 수도와 하수구까지 얼어 터졌다. 주인이 해동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으나 업체를 불러 보수하고 상당한 비용을 치렀다. ‘그대는 고집이 세고 회개할 마음도 없으니,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나타날 진노의 날을 앞에 두고, 자기에게 임할 벌을 스스로 쌓고 있는 것입니다.’(로마서 2:5) 그때 매도한 임야에 문제가 생겼다. 한 등기에 두 필지가 등재된바, 작은 것은 2월 12일 카페 주인에게 확인서면으로 넘겨주고, 큰 것은 2월 21일 다른 사람에게 등기필증으로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가 먼저 등기를 신청하면서 두 필지를 다 이전하였다. 그리고 딴청을 피우며 배짱을 부렸다. 인간의 몰염치와 맘몬의 비정함을 새삼 맛보았다. 이후에도 파라오의 10가지 재앙을 더 받았다. 코뚜레를 당한 송아지처럼 나는 고수의 손에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정말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어려운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그리고 서서히 찍새 드라마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아, 물질의 옷을 입고 재물변작의 허공에 던져진 내 영혼의 비애여!”하나님의 징계와 사랑의 채찍은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미루지 말고 지키라.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너는 약속한 것을 지켜라.’(전도서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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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동훈 목사
    2022-12-15
  • [최원석 칼럼] 고요한 밤에
    최원석 목사(서울중앙교회) 신인 듯 인간인 듯 모든 것을 아시나 천진난만 아기로 우주를 열었으나 강보에 싸인 채 살포시 감은 눈에 옹알옹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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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원석 목사
    2022-12-15
  • [한홍 칼럼] 천국 잔치 “지상에서 영원을 준비하다”의 감동
    한홍 목사 (새로운교회) 지난 11월 6일 주일 열렸던 전도축제 “지상에서 영원을 준비하다”는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온교회 위에 엄청난 기쁨과 감동을 부어 주신 천국잔치였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열게 된 전도축제였기 때문에 많은 두려움과 떨림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 전반에 퍼진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우리 성도들 스스로의 위축된 마음으로 인해, 최근 한국 교회 목사님들의 35% 이상이 설문 조사에서 전도가 너무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그저 코로나 이전으로만 돌아갈 수 있어도 혹은 현상 유지만 해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더욱 담대한 믿음으로 이 전도축제를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당일 머리 숫자만 채우는 이벤트식 전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몇 달 전부터 공동체 순별로 초청대상 VIP를 정하여 그분의 인생 스토리를 나누며 함께 기도로 준비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미 전도축제 전부터 온 교회 안에 말할 수 없는 기대감과 뜨거운 감동이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연 D-Day 당일에는 너무나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한 성도는 오랫동안 기도하다가 용기를 내어 직장동료에게 전도했는데, 뜻밖에도 그 옆에 있던 다른 동료가 왜 자신에게는 전도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도 전도축제 당일에 오게 되셨는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찬양을 들을 때부터 성령의 감동으로 오열하셨다고 합니다. 또 어떤 성도님은 VIP 한 사람만 초대했는데, 당일에 배우자와 자녀들까지 온 가족이 다 나와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성도는 기도하며 한 분을 전도했는데, 알고 보니 그분은 이미 하나님을 이해해 보려고 성경을 2독이나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내가 성경을 두 번이나 읽는 동안 아무도 나를 전도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당신이 전도해 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미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린 예비 된 영혼들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또 한 성도는 오랫동안 친분이 있던 VIP를 어렵게 교회로 모시고 왔는데 사실 예배에 들어가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분이 과연 변화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설교를 다 들으시고, 설교 마지막 예화인 토미 스토리에 반응하시면서, 손을 가슴에 품고 “Here”라고 읊조리시더라는 것입니다. 이에 초청하신 분도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제가 친교실에 내려가서 식사하시는 VIP들을 격려해 드릴 때 한 나이 지긋하신 중년의 VIP 한 분이 제게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이 토미 스토리를 들려주시면서 ‘Here’라고 하실 때, 아주 오래전 어머니께서 저보고 ‘교회 나가라’고 하시던 음성이 생각나서 울었습니다.” 저는 촉촉히 젖어있는 그분의 눈에서 이미 하나님이 그분 안에 임하셨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간증들을 소개하자면 책 한 권은 될 것입니다. 이번 전도축제는 그야말로 온 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천국 잔치였습니다. 사람을 모으기 위한 건조하고 딱딱한 행사가 아닌 이야기가 있고, 웃음이 있고, 성령의 일하심이 분명하게 있었던 기쁨이 가득한 축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 전도축제를 통해서 ‘전도’란 성령님의 도우심 안에서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하며 기쁨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계속해서 기도하며, 전도의 구령을 쌓아 올릴 때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있을 전도축제 시즌2에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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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홍 목사
    2022-12-15
  • [조예환 칼럼] 울타리가 무너질 때(1)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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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조예환 목사
    2022-12-15
  • [소강석 칼럼] “난간 앞에서 깨달은 은혜”
    지난 주일 저녁에 총남선교회 주관으로 ‘새에덴 문학의 밤’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문학의 밤이 아니라 ‘새에덴 아버지들의 밤’이었습니다. SBS 아나운서인 이동준, 차유주 집사님 부부가 사회를 보았는데 어느 방송국에 내놔도 손색없을 정도로 너무나 깔끔하고 세련된 진행을 선보였습니다. 컨설팅 전문가인 이병환 안수집사님이 총괄기획을 하고 EBS 방송작가 출신인 박소현 간사님이 진행 대본을 썼으며 진심 어린 출연자들의 무대가 어우러지면서 큰 감동을 일으켰습니다. 이종진 안수집사님의 아내에게 바치는 세레나데 연주, 송치연 간사를 중심으로 한 새에덴 아버지밴드, 이선우 안수집사님의 아들에게, 이광호 안수집사님의 딸에게 바치는 편지, 새맨파의 댄스, 시낭송과 샌드아트, 색소폰 연주 등 다채로운 순서들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청소년기의 난간의 위기를 잘 극복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군들 고민이 없고 누군들 난간의 위기를 안 겪은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름대로 난간의 위기를 극복하였기에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장애인 사랑부 최봉기 형제의 간증 편지는 뭉클한 감동을 주며 눈시울을 젖게 하였습니다. 최봉기 형제는 3살 때 뇌병변 판정을 받게 되어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너무나 힘들어 교회에서 기도하다 잠깐 잠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감동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봉기야! 나는 너에게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그런데 왜 너에게 없는 것들을 바라보며 원망하고 우울해 하느냐. 사랑하는 아들아! 마음을 강하게 하고 굳세게 하고 기쁘게 살아라.”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힘을 얻어 미국에서 주립대를 졸업한 이후에 한국에 돌아와 새에덴교회에서 큰 은혜를 받으며 하루하루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위대한 인간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울컥했던 것은 최진경 장로님께서 병환으로 누워계신 아버지께 바치는 편지였습니다. 최장로님께서 눈물로 편지를 낭독하자, 온 성도들이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자랑스러운 나의 아버지, 최해규 장로님, 이 단어를 부를 때마다 가슴 속 깊이 밀려오는 존경과 감사의 감정으로 쉰이 넘은 나이에도 눈가에는 어느덧 눈물이 맺힙니다... 지금 아버지는 휠체어에 의지하고 계시지만 저는 아직도 아버지께서 벌떡 일어나서 ‘진경아~’ 하며 부르시는 상상을 합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예배 때마다 강단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놓고 기도할 때마다 아버지의 귀에도 그 기도 소리가 들리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목자의 기도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들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두 분의 기도와 사랑을 늘 마음에 간직하고 평생을 살겠습니다...” 저 역시 최진경 장로님의 눈물의 편지를 들으며 너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마무리 기도를 할 때 제 마음이 너무 애절하고 간절함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애절함이 도가 지나치고 너무 몰입한 나머지 기도하다가 갑자기 현기증이 느껴졌습니다. 순간 눈을 뜨고 보니까 오른발이 강단 끝 난간에 거의 반 정도가 걸쳐 있는 것입니다. 정말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만약에 제가 한 번만 더 헛발을 내딛어버렸으면 그대로 낙상을 해버렸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적어도 코뼈나 광대뼈가 부러지든지, 아니면 제 팔이 하나 부러졌을 것입니다. 그 순간, 난간 앞에서의 은혜를 다시 한번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역시 청소년기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슬아슬한 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각자 위기가 있고 고비가 있을 텐데 이게 다 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난간에서 한 발만 헛디뎌도 시험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예수님을 떠나고 교회도 떠날 수 있었을 텐데 하나님께서 눈을 뜨게 하시고 붙잡아 주셔서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것이 아닙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니, 지금까지 저와 함께해준 성도들, 새에덴의 아버지들이 너무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오늘의 새에덴의 아버지들이 있도록 뒤에서 기도를 해주고 응원해준 새에덴의 어머니들이 너무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자랑스러운 새에덴의 아버지요 어머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안주하거나 자만해서도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선 줄로 생각하지 않고, 다 잡은 줄로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순간순간 난간의 위기나 고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천국 가는 그날까지 절대로 실족치 말고 함께 손잡고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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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1
  • [소강석 칼럼] “간절한 마음을 가지면 반드시 열린다.”
    저는 지금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저 혼자 온 것이 아니고 12명의 일간지 기자들과 함께 이곳에 왔습니다. 특별히 저희 교회 의료목사님이신 이재훈 목사님과 또 대외 협력실장이신 박요셉 목사님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온 목적은 먼저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님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과 부활의 역사를 취재하기 위함이고 동시에 한국과 이스라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서 성지순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기자들과 함께 해외를 가도 끝까지 있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정상 하루나 이틀만 같이 하고 곧바로 돌아왔습니다. 그 먼 아프리카를 갈 때도 3일 동안만 함께 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끝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첫날부터 늘 긴장 속에 살았습니다. 아무래도 가이드를 하시는 분은 이스라엘의 지리와 문화에 정통을 하신 분이지만 일반적으로 통상적으로만 설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는 곳마다 그 장소를 성경과 연결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관계성을 언급하면서 어떻게든지 예수님의 스토리를 소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에 와서는 더 그랬습니다. 다른 곳도 다 중요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것을 기자들께 꼭 보여주고 설명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찾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일일이 다 보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번 SBS 다큐를 제작하고 또 CTS 다큐를 제작할 때는 미리 비용을 지불하고 특별예약을 해 놓아서 부족하지만 충분히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영상에 저의 설명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서 보니까 이번에는 그곳에 예약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노력을 다해서 특별예약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조마조마 할 수밖에요.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의 무덤교회를 찾아가니까 아니나 다를까 사람도 많고 무덤 안에서는 사진도 못 찍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애가 달았습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을 갖고 현장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물론 가이드께서도 수고를 해 주셨습니다. 아무튼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담당자에게 사정을 하고 설득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자들과 함께 무덤교회를 직접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은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서너 명밖에 안 되기 때문에 몇 팀으로 나눠서 제가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예수님이 어떻게 장사를 지냈고 그곳에서 부활하셨는가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그나마 마음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복받쳤습니다. 저는 기자들에게 이곳이 예수님의 탄생지와 함께 최고의 하이라이트 성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남아서 기자님들과 함께 한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보람되고 가치를 느낀다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가 성묘교회를 다녀오고 나서 호텔에 와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나는 천상 목사이구나.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그리고 죽음과 부활 승천을 전하고 싶어 안달하는 목사이구나. 그리고 간절한 마음을 가지면 어떤 장벽도 뚫고 열 수 있구나. 간절한 마음이 없으니까 늘 핑계만 대고 자기 스스로 위무를 할 수밖에 없겠구나. 나는 앞으로 더 간절한 마음으로 사역을 하고 사명에 임해야 되겠구나.” 저는 할 수만 있으면 절제를 하고 제 자신을 컨트롤 하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로서의 본성을 어찌 감출 수가 있겠습니까? 기자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믿는 분도 계시지만 믿지 않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으면 그분들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저 자신이 셀프컨트롤을 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목사의 본성과 정체성이 드러날 수밖에요. 방에 들어와서 생각해 보니 이러한 저의 마음과 정열을 이해를 해주시고 수용해 주신 기자들께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를 너그러이 용인해 준 가이드 목사님께도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면 얼마든지 장애를 극복하고 닫힌 문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너무 긴장을 했는데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고 나니 사랑하는 성도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어서 빨리 교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속히 달려가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을 사모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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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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