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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제54회 국가조찬기도회는 대한민국의 영적 자산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국회·국가조찬기회는 대한민국 영적 횃불!” 장헌일 목사/행정학박사 신생명나무교회 국회조찬기도회 지도위원 (전)국가조찬기도회 사무총장 한국공공정책개발연구원 원장 국가조찬기도회는 디모데전서 2장 말씀을 근거로 하여 기도회가 이어져 왔는데 신앙인의 직분과 사명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무엇보다도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을 위해 간구, 기도 및 도고(중보기도)를 드리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임을 강조하여 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헌장 제7조는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졌음’을 분명하게 선언하였다. 임시의장 이승만 장로의 권면으로 1948년 5월 31일 제헌의원인 이윤영 목사의 기도로 시작되었다. 국회 속기록 첫 장에 기록된 것처럼 기도로 시작한 대한민국임을 우리는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주님 주신 사명과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영적 자산인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국가조찬기도회와 국회조찬기도회가 시작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이었음을 믿는다. 1966년 3월 8일 구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대통령 조찬기도회가 열린 지 올해로 56년이 되었다(1967년 1975년 1980년에 개최되지 못함). 1966년과 2004년, 2017년, 2019년에는 박정희,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했다. 1965년 3·1절을 앞둔 2월 27일, 김준곤 목사(한국CCC 설립자)의 제안으로 김종필, 김영삼, 박현숙, 정일형 의원 등 20여명이 여야 국회의원들이 복음 안에서 만나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국회조찬기도회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미국 국가조찬기도회와 국회조찬기도회를 주관하는 국제기독교지도자협의회(ICL, International Christian Leadership) 총무 로빈슨과 미국 국회조찬기도회 담임목사였던 하버슨 박사가 1964년경 한국을 방문해 김준곤 목사에게 한국에서도 국회조찬기도회 시작을 제안했다. 김 목사는 당시 공화당 의원이었던 박현숙 장로(독립운동가), 김종필 의원과 의논을 했고, 그들은 전적으로 동의를 표하면서 국회 사무처에 등록된 기독 의원 약 30명의 명단을 건네주었다. 김 목사는 이들에게 국회조찬기도회의 취지를 설명하였고 김종필 당시 공화당 의장과 김영삼 당시 민중당 원내총무, 정일권 국무총리 등 20여 명이 1965년 3·1절을 앞둔 2월 27일에 구 조선호텔에서 최초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김준곤 목사는 국회조찬기도회를 정례화시키기 위해 조직 방법을 참석 의원들과 협의하여 여당 총무에 김종필 의원, 야당 총무에 김영삼 의원(전 대통령)을 위촉하고, 1년 동안 매주 모이게 되었다. 2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함께 국회조찬기도회로 모이면서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미국처럼 대통령 조찬기도회로 모이자는 제안이 있자, 김종필 의장을 통해 박 대통령의 뜻을 타진하니 박 대통령으로부터 참석하겠다는 응답이 왔고 1966년 3월 8일 7시 30분, 구 조선호텔 볼룸에서 처음으로 제1회 대통령조찬기도회가 개최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는 미국보다 9년 늦게 시작되었지만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열렸다. 미국의 기독교 지도자 로빈슨 총무, 하버슨 박사 등 미국 ICL에서도 5명이 참석했고, 브라운 주한 미국대사 등 각국 외교 사절, 이효상 국회의장, 정일권 국무총리, 한경직 목사, 노기남 천주교 대주교 등 267명이 참석했다. 김준곤 목사의 도미(渡美) 관계로 1967년 국가조찬기도회를 개최하지 못했고, 1968년 연례기도회로 대통령조찬기도회(1976년 부터 국가조찬기도회)때부터는 국가조찬기도회 총무로 윤남중 목사를 임명했고, 김준곤 목사를 비롯해 박현숙 장로, 윤인식 장로, 김일환 상공부, 방순원 대법원장, 김인득 장로, 최태섭 장로 등이 7인 상설위원회로 하여 재정적으로 국가조찬기도회를 후원했다. 그 동안 국가조찬기도회는 국회조찬기도회와 한국기독실업인회(CBMC)가 공동으로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준비를 해오다가 국가조찬기도회를 한국교회의 영적자산으로 상설화 하고자 한국교회 연합기관과 협의해 국회조찬기도회 회장인 김영진 장로를 초대회장으로 부회장(국회)에 황우여 장로를, 사무총장에 장헌일 장로(13년 역임)를 선임해 문광부 법인설립(411호,2003.2.15.)과, 2003년 3월 1일 사단법인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법인설립 감사예배 및 회장단 취임식을 가졌다. 2003년 법인 이후로 매년 연례 국가조찬기도회를 대한민국 국회조찬기도회가 대회장을 사단법인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가 준비위원장을 맡아 공동으로 국가조찬기도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지난 2020년 9월 28일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제52회 국가조찬기도회가 온라인으로 개최되었고 2021년 12년 2월 2년만에 정부 방역에 따라 499명이 모여 제53회 국가조찬기도회를 드렸다. 코로나19 확산 후 3년 만에 전면 대면으로 진행되는 제54회 국가조찬기도회(2022.12.5.)는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이 땅에 주님의 위로와 새 소망이 임하게 하소서’ 주제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위해 기도한다. 2015년 제47회 국가조찬기도회와 국회조찬기도회 50주년 기념및 기념문집 출판 감사예배를 드린바 있는 국회조찬기도회는 금년에 57주년이 된다. 국회조찬기도회는 2020년 6월 24일 국회개원 국회조찬기도회(회장 김진표 장로)를 2022년 9월 7일 제21대 하반기 개원 감사, 국회의장(김진표 장로)및 국회조찬기도회장(회장 이채익 장로) 취임 축하예배를 드렸다. 국회조찬기도회는 매월 첫 번째 수요일 오전 7시 30분 국회의원회관에서 여야 기독국회의원이 모여 국회조찬기도회를 드리고 있다. 또한 창립 42주년 맞는 국회기도회가 국회조찬기도회를 섬겨 오면서 대한민국을 오늘에 있도록 모든 입법과정에 기독교세계관을 갖고 영성과 전문성으로 헌신해 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소중한 영적 자산과 국가기도의 전통을 이어가는 국회조찬기도회와 국가조찬기도회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한국교회의 공공성과 공교회성 회복이 절실하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한 성경적 세계관을 갖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이 땅에 실천해 나가며,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해 함께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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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4
  • [소강석 칼럼] “수능생을 위해 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습들”
    해마다 수능이 임박해 오면 저희 교회는 100일전부터 금요일마다 수험생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청지기로서 어떻게 자녀들을 양육하고 기도해야 할지 훈련받는 시간을 갖고 특별기도회를 합니다. 특히 지난 한 주는 온 교인이 수험생과 자녀를 위한 특별새벽기도로 함께 격려했고, 주일예배 시에는 수험생들을 위한 안수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 수능 당일에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40분까지 수능 시험 시간표와 동일한 시간대에 수험생들과 한 마음으로 온 교회가 함께 금식을 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저도 온종일은 못하지만 아침 금식을 하고 기도회에 합류했습니다. 물론 저희 집사람은 하루 종일 기도에 동참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교역자들은 틈이 나는 대로 본당에 와서 기도를 했습니다. 특별히 저는 3층 본당에 나와서 300여명의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니까 옛날 제 아들, 딸이 수능시험 볼 때처럼 가슴이 애처로워지고 눈물이 핑 도는 것입니다. 저는 수능생 자녀들의 이름을 부르며 최상의 컨디션을 주시고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점수를 달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도회를 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수능은 상대가 있어서 경쟁하게 되는데 자기 자식들이 남의 자식들을 이겨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게 해달라는 이기적인 기도를 하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그런 주장이 옳다면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전혀 기도를 안 할까요. 자녀들이 수능시험을 보는데 잘 보든, 못 보든 자기 운명에 맡기면서 부모는 기도도 안 하고 자기 일만 보겠습니까. 남의 일이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은 직장에서 승진 심사가 있을 때 항상 남에게 양보만 하겠네요. 먼저 상대가 잘 되도록 하고 자신은 영원히 말단에서 근무해야 할까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간절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늘 말하지만, 간절함이 있으면, 그 간절함은 자신을 감동시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감동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돌파구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간절함이 없으면 핑계만 대고 남을 비판하고 공격을 일삼습니다. 물론 자기 자녀의 입신양명을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중에 잘 되어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남을 섬기며 살도록 기도하는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는 무조건 자녀가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는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나 이웃을 섬기며 세상을 섬기도록 가르치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또한, 요셉처럼 하나님의 복이 그를 통하여 흘러가도록 기도합니다. 저는 그런 마음으로 자녀를 위해 금식을 하며 기도하는 부모들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고 숭고하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기도는 정말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숭고하고 존엄한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수험생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더 애절한 마음이 생기고 수험생의 이름들이 제 가슴을 문지르는 것 같아 더 애절하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물론 기도를 한다고 해서 모든 수험생들이 다 시험을 잘 보리라고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기도는 마술이 아니기 때문이죠. 애절하게 기도한다고 해서 바라는 점수대로 다 나올 수는 없습니다. 저 자신도 고등학교 시절 너무 교회 생활에 빠지다 보니 학교 성적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니 제가 공부한 만큼 실력을 거둘 수밖에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점수가 낮게 나오더라도 기도한 만큼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계획과 플랜을 이루어간다는 건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습니다. 점수가 높게 나오건 낮게 나오건 하나님께서 모든 걸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오늘의 소목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점수가 잘 나오건 못 나오건 우리는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기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수능생 부모님들이 기도한 그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이번 기회에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의 씨를 심고 기도를 축적한 것입니다. 이번 수능시험 점수에 상관없이 거기에 반드시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할 뿐만 아니라 수능 시험 이후에도 그 기도는 하나님의 선하심의 역사에 기필코 작용을 해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해왔던 수험생 부모들의 기도는 아름답고 위대하고 가치가 있었습니다. 부모가 흘린 눈물의 기도의 씨앗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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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0
  • [사설] 어떤 종교 지도자의 기도
    근자에 어떤 종교 지도자의 기도와 SNS(사회적 관계망)에 올린 글이 적지 아니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것 같다.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일이다. 최근 G20 정상회의 등의 일정으로 해외 순방에 오른 대통령의 전용기가 추락해 사망하기를 기도하자는 내용을 올렸다는 것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해당 교단(敎團)에서는 면직이나 정직과 같은 행정적 처리를 했다고는 하나 성직자가 취할 처신은 아닌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자신의 이념과 철학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정을 수행하기 위해 해외 순방을 나간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을 그런 식으로 저주하고 선동하는 행위는 결코 국민적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설사 그 대상이 대통령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렇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겨야 할 성직자로서는 절대 가져서는 안 될 심성이 아닌가 한다. 다시는 종교인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다거나 강단에 서서는 안 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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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8
  • [사설] 잊고 살아온 단어 ‘감사’를 회복하자
    대단히 유감된 일이지만, 현대인들에게는 잃어버린 단어가 하나 있다. ‘감사’라는 말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학생은 스승에게, 노동자는 고용주에게, 국민은 정부에, 그리고 성도는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함에도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 비난이 더 많은 시대를 살고 있다. ‘감사’라는 단어를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감사’의 마음을 잃어버린 것일까? 어느 쪽이 되었건 현실은 부인할 수 없는 ‘감사’를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에게 좀 오래된 이야기이자 생소한 얘기일는지는 모르지만 2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에서 있었던 어느 인기 연예인의 경험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당시로서는 미국 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한 연예인이 2차대전 참전 용사들 위문공연에 출연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 연예인은 자신의 스케줄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무대에 서는 시간이 10분 이내여야 한다고 조건을 붙여 출연을 승낙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기획된 프로그램에서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순서였는데, 막상 공연이 진행되고 마지막 순서로 이 사람이 무대에 나갔을 때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애초의 약속은 출연시간을 단 10분 이내라고,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으나 이 연예인은 약속된 공연시간을 넘기고도 30분이나 더 무대에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고 한다. 마침내 공연을 마치고 내려온 이 연예인에게 기획자가 왜냐고 물었다. 이 사람은 말없이 객석의 앞줄을 가리켰다. 객석 앞쪽에는 두 명의 참전 용사가 앉아 있었는데 둘 다 전쟁에서 한쪽 팔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오른쪽, 다른 한 사람은 왼쪽 팔이 없었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각자 남은 한쪽 팔을 서로 부딪치며 매우 기쁘고 감사하는 표정으로 공연 내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도 자신의 스케줄이 바쁘다는 단순한 이유로 공연을 짧게 끝내서는 안 된다는 마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신의 장기를 다 보여주었다고 한다. 세상에는 양팔을 다 가지고도 원망하고 불평하고 비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팔 하나를 가지고도 박수치고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사례이다. 나에게는 감사할 일이 전혀 없다는 이들에게 ‘감사는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사례가 아닐까 한다. 잊고 살아온 단어 ‘감사’를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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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8
  • [안도현 칼럼] 바람을 잡는 인생
    안도현 목사 (아름다운교회) [프로필] ▣ 순복음 신학교 교수 ▣ 前 일기연, 42대 고양시기독교연합회장 ▣ 사랑이 있는 마을 담임 ▣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 1:14) 미국 역사 중에 미국인들의 경종을 울렸던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1923년 어느 날 시카고에 있는 에드워드 비치 호텔에서 그 당시 미국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는 7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의 부는 그들의 전 재산을 합칠 때 미국 전체의 국고를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신문 기자가 시카고에 모였던 그날로 시작해서 정확히 25년이 지난 후의 그들의 생애가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해서 발표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었던 강철회사 사장, 찰스 슈업은 25년 후 무일푼의 거지가 되어 죽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인 알써 카튼은 밀농사로 거부가 된 사업가였는데 그 역시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쓸쓸하고 고독한 가운데 혼자 임종을 맞이했습니다.세 번째 사람인 리처드 위트니는 뉴욕 은행의 총재였지만 자기를 둘러싼 여러 가지 정황이 잘못되어 감옥에서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인 엘버트 홀은 미국의 재무장관까지 지냈지만 감옥에서 막 풀려나와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인 웰스프트의 회장이었던 J. C. 리버모아는 인생의 끝을 자살로 마쳤습니다. 여섯 번째 사람인 국제은행 총재였던 프레이져 역시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쳤습니다. 일곱 번째 사람인 이반 크루컬은 부동산 업계의 거부였지만 자살 미수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미국인들에게 부의 허무를 알려주는 커다란 충격과 교훈이 되었습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행위를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아무리 의미 있어 보이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거시적으로 볼 때 모든 일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211년 로마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장면이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 제11권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 황제 세베투스는 아들 카라칼라와 게타를 비롯한 가족과 측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원로원 의원도 했고, 변호사도 했다. 집정관도 했고, 대대장도 했다. 장군도 했다. 그리고 황제도 했다. 국가 요직은 모두 거쳤고, 임무를 충실히 해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것이 다 헛된 것 같구나.” 솔로몬과 세베투스, 이 두 사람 사이에는 1100여년 정도의 시간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인생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며 내린 결론은 똑같습니다. 그 결론을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영혼과 마음에는 이 세상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신비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생활에서 얻어지는 것이나 교회에서 붙여주는 호칭만으로는 진정 만족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우리 영혼과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이단과 육체의 쾌락에 빠져 탕자의 삶을 살았던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 첫 페이지에서 “하나님, 당신은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으므로 우리가 당신 품안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참된 안식이 없었나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천재 수학자인 파스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 세상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큰 공허가 있습니다. 그 공허는 주님께서 찾아오시기 전에는 어느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2~30년 전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먹고, 훨씬 더 좋은 옷을 입고 살면서도, 여전히 외로워하며 목말라 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봅니다. 2~30년 전보다 재산도 많아지고,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여전히 공허함이나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봅니다. 마음의 굶주림이 이렇게 채워지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리 안에는 눈에 보이는 물질이나 세상 것으로 채울 수 없는 신비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물질이나 지위나 호칭에 의존하는 인생살이에는 언제나 불만족과 불안이 쌓이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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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도현 목사
    2022-11-18
  • [조예한 칼럼] 인신매매인신매매
    조예환 목사(갈보리교회) [프로필]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 역임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이 막 시작된 어느 날이었다. 친구 두 명과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다가왔다. “너희들 돈 벌고 싶지 않냐?” 아저씨는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도 주는 데가 있는데 가보자고 우리를 꼬드겼다. 너무 가난했기에 배고팠기에 그 말이 솔깃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친절한 아저씨를 따라 한참을 차를 타고 갔고, 내려서 골목을 지나고 혼잡하게 길을 돌아서 어떤 지하실로 들어갔다. 그 길로 우리 세 명은 그곳에 감금이 되어서 잠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새벽부터 밤까지 가방공장 일을 해야 했다. 인신매매가 된 것이었다. 친절한 아저씨는 데려다만 주고는 사라지고 우리는 무서운 가방공장 주인의 지시를 받으며 가방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친구가 말했더니 그럼 돈을 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 또래 보다 좀 더 큰 아이들이 많이 잡혀 와 있었다. 하루는 어떤 아이가 도망치다 잡혀서 본보기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는 일도 있었다. 종일 일하고, 잠은 일하던 그곳에서 한쪽으로 가방을 밀어놓고 자는 것이었다.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식사는 주인이 식권을 한 달 치씩 90장을 주었다.그러면 하루 세끼 자장면이었다. 중국집에서도 우리에게 주는 것은 사람들이 먹다 남은 찌꺼기들 끌어모은 것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음식에서 담배꽁초, 종이 등이 나왔다. 나는 어린 마음으로 곰곰이 생각했다. 팔려 온 빚을 갚아야 집에 갈 수 있는 것이라면 집에 빨리 가려면 돈을 모아 빚을 갚아야겠구나 싶어서 식권을 하루에 두 끼만 먹고 매일 한 장은 모으기를 시작했다. 너무 배가 고팠다. 온종일 어린아이가 하기에는 중노동인 가방공장 일을 새벽부터 밤이 되도록 하고서 두 끼로 버틴다는 것은 정말 고통이었지만 그렇게 돈을 모아 빠져나가지 않으면 평생 그 지하에서 죽을 것 같아서 배고픔과 힘든 고통을 견디어 냈다. 드디어 한 달이 되었을 때 나는 식권 30장을 내밀며 집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주인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이미 지난 건 가치가 없어, 식권은 그달이 지나면 쓰레기야” 하는 것이다. 그때 내가 느낀 절망과 배신은 정말 말할 수 없이 끔찍한 것이었다. 또 도망치던 아이가 잡혀 와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아서 실신했다. 도망가는 마음을 못 가지도록 우리가 보는 데서 매질을 하는 것이다. 중국집 배달과 다들 한편이었다. 한 달이 훨씬 지난 어느 날 기회가 왔다. 무슨 잔치가 있었는지 가방공장 주인이 술이 잔뜩 취해서 들어왔다. 나는 친구들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오늘이 기회다.’ 긴장하고 있었다. 가방 재료를 들여오고, 밤이면 항상 쇠사슬로 걸어 잠그던 문도 그날은 미처 닫지 못한 채로 경비가 허술한 상태로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이때다 싶어 벌떡 일어나 죽을힘을 다해 뒤도 보지 않고 그냥 앞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저 뒤에서 술 취한 주인이 “이놈들” 소리 지르며 달려오고 지키던 삼촌도 달려오는 소리가 났지만,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뛰기만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곳은 청계천쯤 이었던 것 같다. 전신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우리는 탈출에 성공했다. 길바닥에 벌러덩 누워 턱까지 차오른 가쁜 숨을 헐떡이며 바라본 밤하늘엔 정말 별이 많았다. 그렇게 어렵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머니는 마치 아침에 나간 아이가 온 것처럼 아무런 일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밥은? 밥 먹었냐?” 허무했다. 아마도 친구 집에서 사는 거로 생각했던 것 같다. 생사의 고비를 넘어서 돌아왔는데 내가 없어진 줄도 모르는 가족들이라니 기가 막혔다. 그날그날 일곱 식구 먹고살기 바빠서 어머니는 다른 어떤 것도 욕심부리지 않았다. 평생 나는 공부하란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어머니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만 할 뿐 어떤 기대도 요구도 하지 않았다. 10년 이상 세월이 지난 후 신학교에 다닐 때 나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가다가 가게 앞에서 술을 먹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바로 나를 인신매매한 그 사람이었다. 이제는 늙어서 흰머리가 반이고 몸도 말랐지만, 그때 그 사람이 분명했다. 어찌 잊을 수 있는 얼굴이란 말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전율이 흘러서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말할 수 없는 분노가 들끓어서 부들부들 떨렸다. 어찌할 것인가. 이제는 늙었고 지금 술을 먹고 있다. 그의 행색은 초라하다. 그렇게 인신매매까지 하고서도 가게 앞 툇마루에서 소주나 마실 처지밖에 못 된단 말인가.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하고 한참이 흘렀다. 어떻게 해야 하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지금은 충분히 그를 이기고 제압할 힘이 있지만 나는 이미 예수님을 만났고, 용서를 배웠지 않은가, 그러나 저 사람이 과연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가. 별의별 생각들이 지나갔다. 수없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내 속의 이야기들을 듣고 들었다. 그는 여전히 계속 술을 들이켜고 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스리며 조용히 돌아섰다.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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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예환 목사
    2022-11-18
  • [고병국 칼럼] 신종 스트레스 병
    고병국 목사 (한소망교회) [프로필] ▣ 협성대학교 신학과 졸업 ▣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졸업 ▣ 서울남연회 강동지방 감리사 역임 ▣ 온맘 닷컴 “목회칼럼” 연재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하다. 새천년을 운운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한 지도 어언 20년이 흘렀다. 돌아보면 새천년이라고 해서 그렇게 색다른 것도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느낌상 일생 두 번 다시 맞이할 수 없다고 하니, 좀 색다른 마음으로 대할 뿐이었던 것 같다. 새천년을 맞이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서 많은 사람이 심리적, 정신적으로 적지 않은 부담을 가지고 출발했었다. 본인도 새천년을 그래도 좀 새로운 각오로 시작해야지 하고 2000년, 2001년, 2002년을 10일, 또는 20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20년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이런 저런 상념들이 지나간다. 그러던 차에, 지난 목회칼럼 중 그 시절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글을 읽었다. ‘신종 스트레스 병’ 전문이다. “세월은 무심하리만큼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다. 잡을 수도 없고, 조금만 느리게 가도록 조절할 수도 없는 것이 시간이고 세월이다. 그래서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있듯, 인생의 삶은 어느새 쏜살같이 흘러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20세기 말에 언론에서는 요란을 떨고, 사람들도 마치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이하기만 하면, 인생의 신기루 같은 핑크빛 삶이 그냥 오는 것처럼, 착각을 할 만큼 온통 우리들 주변은 소란과 호들갑을 떨었다. 21세기를 역사적으로 맞이했다. 말로만 듣던 새천년을 맞이했다. 그런데 왠지 우리들의 일상의 삶과 우리들의 모습은 20세기 말이나 21세기, 새천년이나 다를 바가 없다. 지난번에 방송을 보니, 새천년을 맞이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신병원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들어보면 이런 것이다. 새천년을 맞이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새 세상, 새 삶이라는 구호처럼 새로운 천년이 되었으니, 각자가 많은 결심을 하고 다짐을 하고 새천년을 맞이하면, 실천을 할 것들을 목록에 적어 놓고 실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이 하루아침에 달라진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닌가? 고정적인 관념과 악습적인 습관 등은 두부를 칼로 자르듯이 하루아침에 자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결심하고 새천년을 맞이하면 지킬 내용과 사항들을 달력이나 사무실 책상머리 앞에 적어 놓고 쳐다는 보는데, 몸이 따라오지 못하니 자연적으로 부담이 되고 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되어 정신병원을 찾는다는 것이다. 일명 새천년 스트레스 병이라는 신종 병이 생겼다. 옛 어른들이 늘 하는 말이 사람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하며,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도 하고 결단도 해야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 새천년을 맞이했어도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자신인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면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역량만큼을 정해놓고 실천해야 한다. 괜히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지 하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짓이다. 사람에게 모든 질병이 되는 요소가 바로 스트레스라고 한다. 잘해 보자고 했던 다짐과 결심이 스스로 실천하지 못해서 올무가 되어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가 된다면 분명 잘못된 것이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늘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매사에 “무리”라는 것은 꼭 탈이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순리 가운데 하면 되는 것이다. 역리 현상이 우리들의 삶에 있다면 틀림없이 무리가 되거나, 과부하가 되어 이상적인 징후가 있게 마련이다. 건강도 마찬가지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도 마찬가지이다. 순리 가운데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이다. 그냥 21세기를 열심히 살면 되는 것 아닐까?“(2000.2.6.) 그렇다. 무엇이 어떤 새로운 것이 다가온다고 해도, 우리들의 삶은 그냥 지금까지 지내 온 것처럼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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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병국 목사
    2022-11-18
  • [임동훈 칼럼] 55. 아데모네오
    임동훈 목사 (예수나라공동체) 그리스어 아데모네오(Αδημονέω)는 ‘심히 근심하다’ 또는 ‘몹시 괴로워하다’의 뜻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그 깊은 고뇌와 번민으로 가득 찬 상태를 표명한 말이다.(마태 26:38, 마가 14:34) 2004년 9월 26일 주일, 9시 예배를 드리고 이른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을 만나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서였다. 차량 정체로 1시 반쯤 서울 우이동에 도착하였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전화하였다. 한참 후에 딸만 나오고 아들은 나오지 않았다. 몇 차례 통화를 더 하였으나 끝내 시골에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순간 몹쓸 자아(Ego)가 못된 본능(Id)을 일깨워 고약한 고통의 굴레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래, 맞아! 내가 아무리 애비 노릇을 못 해도 그렇지, 명절을 맞아 방구석에 처박혀 코빼기도 내보이지 않는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부추기는 보복성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잠재의식에 깔린 욕지거리를 모조리 내뱉었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를 봤나? 야, 이놈아! 너는 애비도 없고 조상도 없냐? 배은망덕한 새끼 같으니! 이놈이 생각할수록 정말 싸가지 없네. 그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혀라도 깨물고 뒤져버려라. 이 짐승만도 못한 새끼야!” 애들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이후 대화가 단절되었다. 오래전 돌중의 저주가 생각났다. “아! 그 망발의 앙갚음을 애들에게 하다니? 죽을 놈은 애들이 아니라 애비였어!” 아직 어린애가 무슨 인생을 알겠는가마는, 어쩌면 나보다 더 깊은 상처를 받고 힘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미도 그렇지, 명절이 되면 으레 아이들을 아비의 고향으로 보내야 하지 않는가? 삼손의 치명적 실언이 생각났다. 온몸에 진땀이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때 아버지의 전화가 왔다. 항상 벽에 붙여놓고 되뇌는 경구가 뇌리를 스치며 무안하게 다가왔다. ‘我旣死者 예수內住!(아기사자 예수내주!)’ 다시 일산으로 돌아왔다. 이미 죽은 자? 그놈이 다시 살아나 너무 밉고 역겨웠다. 처참하게 망가진 나를 보니 당장 때려죽이고 싶었다. 흥분된 자아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맞아죽을 놈! 남들처럼 쉽게 뒤질 수도 없는 놈이! 야, 이 미친놈아! 네가 예수를 믿는다고? 지랄하고 자빠졌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접한 잡놈이!” 평생 듣고 본 막말의 구정물을 더러운 하수구로 마구 토해낼수록 진땀이 더 솟구쳐 올랐다. 그 자리에 나자빠져 벌러덩 드러누웠다. 다시 일어나 이리저리 배회하며 안절부절못하다가 밤 10시가 넘어 딸에게 전화하였다. 어제와 달리 한껏 기가 죽어 있었다. 못난 아비에게 크게 실망한 듯하였다. 내가 봐도 정말 가증스러운 애비였다. ‘그래, 맞아! 나는 구제불능이야. 아무리 봐도 믿는 자라고 할 수가 없어. 그저 한갓 더러운 짐승, 인간종일 뿐이야. 그것도 얼간이 망종!’ 9월 27일 자정, 주변을 정리하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휘영청 밝은 한가위 보름달이 창을 통해 역겨운 놈의 집구석을 쫙 비추었다. 달을 보자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베개를 등에 괴고 이불장에 기대어 성경책을 들었다. 애절한 하소연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오, 하나님 아버지시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너무너무 송구합니다. 아이에게 퍼부은 저주를 저에게 몽땅 돌려주십시오. 제가 달게 받겠습니다. 백번 받아 마땅합니다. 이 부정하고 더러운 입술을 절대 용서하지 마십시오!” 이후 입은 있어도 말을 못 하는 사가랴의 신세가 되었다. ‘보라, 내가 너를 정련하되 은처럼 아니하고 고난의 용광로에서 택하였다.’(이사야 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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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동훈 목사
    2022-11-18
  • [함정호 칼럼] 참 지혜자의 마음을 가진사람(전 7:1~4
    [프로필] ◈ 영화교회 담임목사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세인은 출생하면 기뻐하고 죽으면 슬퍼하나 성도들은 출생하는 날은 인생고해가 시작되는 날이요 죽는 날은 세상 고난이 끝나고 천국가 신랑 예수님 만나 천국 복락이 시작되는 날이니 좋다(빌 1:23).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지혜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매일 삶에서 죽음을 인식하고 체험하는 사람” 죽음은 천국행이냐 지옥행이냐 인생 최대의 일이 결정되는 날이다. 이 최대의 일을 항상 인식하고 준비하는 자가 최고 지혜자의 삶이다.(시 90:12, 엡 5:15) 하나님은 이런 지혜자로 살도록 매일 작은 죽음, 일부 죽음을 보게 하시고 당하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신다. 죽음은 이별인데, 이사, 이혼, 전근, 헤어짐, 졸업, 승진, 정년퇴직, 해고, 늙어지는 것 등은 작은 죽음이요 죽음의 일부들이다. 고로 인생은 죽음들로 장식된 터널을 통과하는 것이다. 지혜자는 이 터널에서 순간마다 자기의 죽음을 인식 체험하고 치밀하게 준비해간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 네 영혼을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눅 12:16~21, 딤전 5:6) “매일 삶에서 죽음을 푯대로 삼고 달려가는 사람” 예수님은 일생 무수한 고난과 십자가의 모진 고난을 통과하면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다 이루었다”고 하는 죽음의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 골인하셨다. 바울도 “관제와 같이 벌써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도다”(딤후 4:6~8) “우리의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고후 4:18) 죽음을 푯대로 삼고 살아간 삶을 말씀한 것이다. 선수가 금메달을 푯대로, 농부가 가을의 풍성한 추수를 푯대로 삼고 매진하는 것도 귀하지만 성도가 죽음과 심판을 푯대로 삼고 거기에 맞추어 살아가는 삶은 영원 무한히 귀한 것이다. “매일 삶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 모든 일에 미리 준비가 있으면 복이요, 성공이요, 승리요, 영광이지만 준비가 없으면 화요, 수치요, 실패요, 멸망이다(마 25:1~13). 여행을 가려해도 차비와 숙식비가 있어야 하는데 영원한 천국이냐, 지옥이냐, 상급이냐, 수치냐를 판가름 짓는 죽음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없으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요 당황할 것인가? 세상을 다 거머쥐는 성공을 했다 해도 죽음 준비가 없다면 실패요, 거지로 살아도 죽음 준비를 잘했다면 대 성공이다(눅 16:19~31). 죽음 준비는 의식주를 구하는 일반적인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으로 죽는 순간까지 하되“영이요 생명이요 영생하는 말씀”(요 6:61~68)과 그 안에 역사하는 성령께만 온전히 순종하는 것으로 하여 자타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지혜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 어리석은 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롬 9:27) “하나님은 모든 행사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이는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그날에 수치될 것, 화 받을 것, 욕될 것, 멸망할 것, 날마다 찾아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성화되어 갑시다. 마귀에게 잡힌 자의 삶은 죽음을 망각하고, 성령에게 잡힌 자의 삶은 항상 죽음을 인 식하고 체험하여 준비하는 삶을 산다. 성도여!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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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정호 목사
    2022-11-18
  • [최원석 칼럼] 감사
    최원석 목사(서울중앙교회) 감사는 인정이다 내 인생이 이 정도면 괜찮다고 감사는 만족이다 내 생활도 이 정도면 잘 산다고 감사는 긍정이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나이기를 감사는 사랑이다 나 되게 하는 삶의 길은 이 길뿐 그래서 감사만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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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원석 목사
    202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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