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쪼들리고, 열심히 일을 해왔지만 변변치 못하고, 있는 것도 날아가 버렸고, 그저 막막한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캠프의 주인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 각 사람의 상담자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내러티브카운슬러(Narrative Counselor). 이는 다큐멘터리 방송프로그램에서와 같이 이야기인 스토리(story)를 부각시키면서 그 장면을 성우의 목소리로 말해주는 것이 내러티브다. 주의가정캠프에 참여하는 한사람 한 사람에게 상당자이며 조언자이 이신 성령님이 필요했다. 이젠 더 이상 일방적인 설교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방침을 세웠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를 것이고, 무질서하고 막막한 그림을 그리는 자가 있음이 기대됐다. 다섯 명의 준비요원들이 모였다.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사랑입니다. 이 땅위에 살아가는 자녀를 사랑하시기에 아버지는 그 아들을 보내주신 것이죠. 사랑이 없이 그 일이 될 수 있을까요?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에 대한 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지금까지 그걸 모르면서 그냥 지나쳐왔기에 지금 이런 하나님사랑을 받고, 나누고, 그리고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들이 모여서 부르는 노래는 세 가지입니다. 나의 노래, 주의 노래, 그리고 이웃의 노래입니다.
나의노래는 나의 탄식과 호소에 대한 노래입니다. 주의 노래는 주님의 뜻을 알아가는 노래입니다. 지금까지는 내 뜻으로 살아왔는데, 주의 뜻을 알아가면서 주님에 대한노래가 나오게 됩니다.” “노래는 주의 성품으로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거룩함과 사랑과 의와 신실과 자비입니다. 그 노래로 주의 성품이 선물이 되어 그 사람 안으로 들어오실 겁니다. 죄는 사람의 몫이라면 주의 성품은, 하나님의 몫이 됩니다. 이참에 그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림은 관찰입니다. 무엇이든 관찰하게 되면, 그림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그림은 역시 관찰에서 관찰로 끝납니다. 무엇을 그리려고 하면 잘 안됩니다. 더군다나 누군가에 보여주기 위해 그리는 그림은 그림도 그려지지 않을 뿐더러 거짓이죠, 거짓. 우리는 그것을 뽑으려 하지 않습니까?” “내 그림을 봐줄 분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위해서 캡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서 하는 캠프. 그래서 그 이름도 주의 가정캠프가 아닙니까? 주님은 우리의 그림을 이미 알고계실뿐만 아니라 그 그림을 보시기를 원할 것입니다. 주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과 흡사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그림은 엉뚱한 데로 가서는 안 됩니다.” 마침 전문미술가의 말이었다. 모두 다 그럴 듯하고, 거창하게 말을 이어갔다. 현장에서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날씨도 무더울 텐데’ 라고 반문하는 표정의 사람도 있었다. 우리들의 기도는 이러했다. 그저 우리들이 모여서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다스려 주시기를 원하는 기도였다. “스토리 그 자체가 내러티브가 아닙니다. 우리의 바람은,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스토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무대에 설 테니, 그 프로의 연출은 성령님께서 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노래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그림으로 그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