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람의 위안

  • 입력 2018.05.24 14:09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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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국 목사 (한소망교회)  
[프로필]
▣ 협성대학교 신학과 졸업
▣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졸업
▣ 서울남연회 강동지방 감리사 역임
▣ 온맘 닷컴 “목회칼럼” 연재
▣ 한소망교회 담임목사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만족하면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때로는 여건과 환경이 자신으로 하여금 여유롭고 넉넉하기를 바라지만 살다보면 그렇게만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좀 더 여유롭고 넉넉한 여건을 만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동안 목회를 하면서 바라기는 여러 가지 여건과 환경이 모자람이 없이 되었으면 하였지만, 실제로 그렇게는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를테면 목회를 시작할 때는 누구나 큰 교회를 이루어 보리라는 각오로 목양일념으로 출발했지만 어느덧 목회연한도 한참 흐르다보니, 그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실패감과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용기를 잃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흔들림 없이 여기까지 달려온 것 같다.지금까지 수십 년 목회를 하였지만 아직도 목회환경은 사람걱정, 돈 걱정을 하여야하는 조그만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모자람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고 때로는 힘들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시절에 나름의 위안이 되었던 책이『모자람의 위안』이다. 그 책의 주 내용은 이렇다. 한창 잘 나가던 사람이 어느 날 어떤 사건과 계기를 만나서, 한 가지는 잃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또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재물이 많고 여유롭다면 그것은 모자람이 없는 넉넉함이겠지만 재물이 없어졌다면 그것은 분명 모자람일 것이다. 그런데 그 모자람 때문에 또 다른 것을 얻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교회가 크지 않으니 모자란 것은 분명 있는데, 그것으로 인해 나 자신을 위한 성장과 소신을 가지고 목회를 성실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결코 모자람은 모자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 바쁘지 않아도 되니, 책 읽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었고, 허둥지둥하지 않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 있는 영성의 깊이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예들은 얼마든지 있다.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넉넉함도 분명 좋고 기쁨을 안겨주겠지만, 때로는 모자람이 또 다른 위안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도 많다.

크다고 다 만족이 아니라 모자람, 작음도 얼마든지 만족과 위안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사람의 몸도 어느 한 지체 온전하다면 그것은 모자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 부분이 이상이 생긴다면 그것은 모자람이다. 이런 모자람을 통해 인생의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글을 남긴 사람이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그는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다. 그의 글을 보자. 제목이 『이가 빠지다』이다. “이가 나를 일깨워 준 것이 많은 셈이다. 주자는 눈이 멀어 존양(存養)에 전념하게 되자 도리어 진작 눈이 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렇게 말한다면 내 이가 빠진 것 또한 너무 늦었다. 형체가 일그러지니 고요함에 나아갈 수가 있고 말이 헛 나오니 침묵을 지킬 수가 있다. 살코기를 잘 씹을 수 없으니 담백한 것을 먹을 수가 있고, 경전 외는 것이 매끄럽지 못하고 보니 마음을 살필 수가 있다. 고요함에 나아가면정신이 편안해지고 침묵을 지키면 허물이 줄어든다. 담백한 것을 먹으면 복이 온전하고 마음을 살피면 도가 모인다.

그 손익을 따져 보면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지 않겠는가? 대개 늙음을 잊은 자는 망령되고 늙음을 탄식하는 자는 천하다. 망령되지도 천하지도 않아야 늙음을 편안히 여기는 것이다. 편안히 여긴다는 말은 쉬면서 자적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산문선5』 인용. 김창흡은 김창협(金昌協)(1651~1708)의 동생으로 두 형제가 문장가였다. 김창흡이 나이가 66세 즈음에 이가 빠지게 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설명하는 글이다. 즉 이가 빠진 것은 모자람이다, 그런데 그 모자람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이는 오복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 만큼 이가 튼튼하면 좋다. 먹는 것을 겁내지 않고 잘 씹을 수 있다. 그러다가 이가 빠지게 되면 많은 불편함이 있다. 그래서 오늘날은 틀니나 임플란트를 한다. 그런데 김창흡이 살았던 시대는 이가 빠지면 고스란히 불편함을 감수하여야 했다. 우리들 주변에 모자람이 있는데도 즐겁고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런 사람들을 보다가 문득, 내가 만약 저 사람과 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저렇게 밝고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사람은 그런 것 같다.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상황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다. 때로는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고 여유롭기도 하지만 때로는 처음부터이든지 중간에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모자람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그 모자람 때문에 한탄하고 인생을 비관적으로 살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왜, 모자람은 분명 또 다른 위안을 우리들에게 안겨다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은 살만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그렇게 만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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