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옷을 입으셨습니까?(사사기 6:33~35)

  • 입력 2018.06.14 09:19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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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덕 목사(세인교회) 

본문을 보면 드디어 기드온이 우여곡절 끝에 미디안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사사로 부름 받고 출정하기 바로 직전의 장면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33절을 보십시다. “그 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요단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압제 하에서 7년이라는 세월동안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해서 이스라엘은 7년 동안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고 살아야 하는 비참한 지경이었음을 앞선 지령에서 이미 살폈습니다. 미디안은 지난 6년 동안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또 다시추수를 하는 이스라엘의 때를 맞추어 군사들을 이끌고 접경을 넘어 이스르엘 평야로 진격해 왔습니다. 이스르엘은 ‘하나님이 씨를 뿌리신다.’ 는 뜻을 갖고 있을 정도로 유대 지역의 가장 비옥한 평야 지대였기에 추수철의 수확물을 빼앗기 위해서 또 다시 침략한 것입니다. 매년 이 축복의 소산물들은 미디안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을 곡식들을 모조리 강탈한 뒤에 남아 있는 부스러기 열매들은 미디안 군사들이 데리고 온 말들과 가축들의 먹이로 싹쓸이 되었습니다.

지난 6년 동안 꼼짝없이 이스라엘은 이런 수모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오늘 본문 기사를 보면 7년이 되는 이번 해에는 미디안만 침탈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까지 연합을 해서 강탈의 강도가 더 심해진 것입니다. 여느 해 같다면 영락없이 도적질을 당하는 수모를 또 겪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해의 상황이 달랐습니다. 이어지는 본문 34~35절을 보시면 다음의 정황이 일어납니다. 기드온은 미디안과 대적하여 싸울 사람들을 소집합니다. 먼저는 자기 고향인 아비에셀 지역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자 아비에셀 사람들이 기드온의 이 독려에 동참하기에 이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임을 알았던 기드온은 이윽고 고향 지역과 가까운 인근 지파의 사람들인 므낫세, 아셀, 스불론, 납달리 형제들에게 사자들을 보내 협조를 구합니다. 그러자 뜻을 같이한 지파 공동체의 형제들이 전쟁에 기꺼이 참여하기 위해 함께 모입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비에셀 지역은 기드온의 고향인 오브라를 품고 있었던 더 넓은 행정구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 역시 오브라 지역의 바알 단을 훼파한 범인이 기드온임을 알고 기드온을 죽이려고 했을 때 그의 적대자들이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들이 기드온이 독려하는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모여들었음을 본문이 보고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필자는 그 답을 34절 전반절에서 찾습니다. 다시 한 번 곱씹겠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임하시니’로 아주 단순하게 번역한 히브리어 ‘라바쉬’ 의 원 뜻은 ‘옷을 입다.’ 의 의미입니다. 직역하면 이런 뜻이 됩니다. 기드온의 전 인격이 성령으로 옷 입게 되었다는 해석 말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오늘 대단히 중요한 영적 교훈을 얻게 됩니다.

● 영적 승리를 위해서는 세속적 전략의 옷을 입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령의 옷을 입는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대적이 동역자로 서게 된 반전에서 기드온이 행한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성령의 옷을 입은 기드온을 위해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했기에 가능했던 역사였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세속적인 전략에 패하지 않고 승리하는 방법은 내가 성령과의 인격적인교제를 하는 옷을 입는 것입니다. 성령은 비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내 심령에 내주하기를 원하시는 철저한 인격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거짓의 영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의 내주하심은 시몬이 계획했던 것처럼 돈 주고 살 수 있는 영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은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자에게 인격적으로 오셔서 그의 인격에 옷을 입혀 주시는 보혜사이십니다. 20세기의 최고의 변증학자인 C.S 루이스는 그의 걸작인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피력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본질 그 자체이지, 변화가 일어날 때의 느낌이 어떠했느냐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노력을 의지하던 상태에서 완전히 절망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상태로 변화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p,230)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내 기분과 느낌대로 사는 자는 세속적인 사람과 별반 다름이 없는 존재입니다. 내 자신의 노력을 의지하던 상태에서 완전히 절망한 상태가 되어 하나님께 내 전인격을 맡길 때 우리는 비로소 그때 성령의 옷을 입게 되며 그 이후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샬롬이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중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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