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귀한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를 지적한다면, ‘케어’와 ‘레스트’는 구분하는 것이 어떨까요?” 뭔가 말을 하려고 한 참을 머뭇거리던 상옥이 형은,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는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 작가의동생이라서 글 쓰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는 분, 게다가 어떤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났다. 그의 지적은 이러했다. “주의가정캠프를 스피레스트 쉼 전문연구소에서 주관하는 것은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쉼을 전문적으로 다루게 된다면, 일의 구분이 필요합니다. 지친사람을 누군가가 ‘케어’(care)를 하고, 그 다음에 쉬게 하는, ‘레스트’(rest)로 분류해보는 겁니다. 케어는 사람이 하는 것 이라면, 레스터는, 창조주께서 하시는 일로 넘기는 방법입니다.”나는 그의 눈빛을 보면서, 속으로 말했다. ‘옳다, 옳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었을까? 그가 지적해준 것은, 쉼 연구소의 전문성을 살려 보려는 충고, 그가 그런 일에 까지 신경을 써주니 무척 고마웠다.
모두 다 무관심뿐인데,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지금까지 주의가정캠프에 참석한 사람들을, 세 가지로 구분하기는 했었다. 무질서한 사람과 지친 사람과 쉬려고 해도 쉬어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구분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옳지 않았다. 구분에 대한 기준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구분을 하더라도 어디에 써야할지를 모르는 그저 실효성이 없는 구분이 되었다. 그저 모두 다 무질서하고, 지치고, 힘겨운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케어와 레스트의 구분은, 역할분담이라는 측면에서 큰 힘이 되었는데, 우선주께 기도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다 무질서하고 지친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주의 영을 내려주셔서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하시고, 그 마음에 들어 있는 사람의 생각과 뜻과 죄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세요. 성령의 성품으로 주의 일을 받는 자가 되어, 쉼을 얻게 하시고, 그 안식으로 복을 얻게하옵소서, 그리하여 영원한 주의 안식에 참예하는 자로 만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이미 여기에 모인 자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케어를 하였다면, 그 다음의 일은, 주께 맡기게 되었다.
주최 측의 입장에서 큰 부담이 사라졌다. 그리고 쉼 모임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모든 것을 사람이 하려고 했던 교만함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모지에 ‘쉼을 얻는 과정’이란 제목으로 기록해보았는데, 사람이 만들어서 얻게 되는 쉼과 창조주에 의해서 얻어지는 쉼으로 선명한 선이 그어지게 되었다. 그 과정은, 이미 쉼을 얻는 자에 의해서 지친사람을‘케어’(care)하고, 주께 의지하여 주의 쉼을 얻어 가도록하는 ‘레스트’(rest)였다. 그리고 그들 뒤에서 기도하여 얻어지는 주의 ‘의지력’(will)의 순으로 기록되었다. 이들 쉼에 대한 과정을 관찰하는 연구로, ‘체험방법론’이란 이름을 붙였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있었던 이런 연구의 틀이, 지금의 쉼 연구소가 되었다. 한 사람을 케어를 하게 되면, 적어도 20년을 이어가야 한다. 그 단위는 사람의 성품이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의 주기로 보는 것이다. 그것도 주의 성령을 받을 때의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