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포니스트 안드레 황 “가슴 울리는 연주로 하나님의 감동 전하고파”

  • 입력 2018.07.27 10:10
  • 기자명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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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일컬어 영혼의 비타민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좋은 음악은 인간에게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고, 음악으로부터 얻어지는 즐거움은 육체의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연구 결과다. 세상 음악도 그러하려니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강단에서의 악기 사용을 금했던 과거의 예배와는 달리 오늘날의 예배는 가능한 모든 악기로 주님을 찬양한다. 이 가운데 색소폰은 큰 음량과 아름답고 부드러운 음색을 가지고 있어 주님께 드리는 찬양을 온 청중의 감동과 함께할 수 있는 훌륭한 악기로 손꼽히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근래 색소폰 연주자의 신예로 떠올라 빼어난 연주로 주목받고 있는 색소포니스트가 있다. 바로 안드레 황(Andre Hwang)이다. 그는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모든 역량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색소폰이라는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청중들은 숨죽이고 감탄하며 그의 연주에 빠져들었다가 비로소 연주가 끝나고 나서야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아멘’, ‘할렐루야’ 탄성을 터뜨린다.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그의 연주를 보고 들은 청중들의 입소문을 타고 ‘안드레 황’이라는 이름은 빠르게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아티스트가 세상에서의 성공보다는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인생을 드리기로 결심한 것은 결국 음악을 통해 교회 문턱을 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안드레 황은 음악 관련 회사를 운영하는 부모의 영향 아래 태어나 자랐다. 피아노를 좋아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뱃속에서부터 음악을 접했고, 태어나서는 피아노, 트럼본, 플롯, 색소폰, 컴퓨터 미디음악, 화성학, 작곡까지 관심있는 모든 음악을 배웠다. 그의 부모는 공부를 강요하기보다 안드레 황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응원했다.

그가 처음 색소폰을 잡게 된 것도 아버지의 권유였다. 중학교 여름방학 때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얻어온 색소폰을 배워보라고 권했고, 학원에 등록하여 배우기 시작한 그날, 당일에 색소폰 연주가 가능했다.

잘 되면 재미를 붙이게 되는 법. 안드레 황은 그때부터 학원에 다녔고, 마침 주변에 아는 분이 연습실을 오픈하면서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안드레 황은 “그러면서도 색소폰을 내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축제 때 대중 앞에서 처음 연주했던 경험이 내 인생의 방향을 확정하게 했다”고 말했다.

4000여명 정도가 모인 무대에서 처음 색소폰을 연주했고, 관객들이 ‘와’하며 환호하는 모습에 희열을 느끼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트럼본과 미디음악을 전공하겠다는 마음이 색소폰으로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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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색소폰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유명한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단국대학교 생활음악과에 입학하고 계속 색소폰을 배워갔지만 목마름은 계속됐다. 그러던 차에 안드레 황에게 베트남 호치민으로의 생각지도 않았던 길이 열렸다. 그곳에 살던 외숙모 집에 놀러갔다가 방문한 재즈클럽에서 그는 음악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만남을 이루게 된다.

기대 없이 방문한 클럽에서 안드레 황은 3시간을 넋을 놓고 연주를 바라봤고, 한국으로 돌아와 구입해 온 CD에 적힌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 클럽 전화번호까지 찾아냈다. 영어가 능통했던 아버지는 대뜸 “우리 아들을 보내면 색소폰을 가르쳐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 색소포니스트는 흔쾌히 “물론”이라며 승낙했다. 그는 바로 베트남인 최초로 버클리음대를 수석 졸업한 트란만뚜안(Tran Manh Tuan)이었다.

안드레 황은 1주일 뒤 바로 베트남으로 다시 날아갔다. 5일 동안 머물며 매일 연주했고, 수개월 후 다시 찾아가 트란의 집에 머물며 6개월을 배웠다. 그리고 트란의 새로운 집에서 2년 6개월을 같이 지내며 실전에서 배우는 연주를 많이 공부했다.

안드레 황은 “이론만으로 연주가 되는 것이 아닌데 실전 연습과 공연을 통해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굉장히 좋은 만남이었다. 인간관계와 음악과 악기 모든 것을 배웠다”면서 “선생님은 ‘너의 음악을 해야 한다.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라’며 가슴 깊은 조언을 해줬다”고 말했다.

그렇게 돌아온 한국에서 안드레 황은 지인의 소개로 기타리스트 이근형을 만나게 됐다. 트란에게서 실전을 배웠다면 이근형은 그의 이론 선생님이었다. 그동안 부족했던 이론과 앨범 제작을 배우며 첫 싱글을 제작해 2014년에 첫 앨범을 발매해고, 차근차근 음악적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안드레 황은 “과거를 돌아보면 왜 그때 그 사람이 하필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는지. 음악에 대한 나의 열정도 있었지만 모든 것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뤄졌기에 스스로 인복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뤄진 것이 아닐까. 내가 음악적으로 갈구했지만 모든 것이 나의 힘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당시에 그는 신앙이 없었다. 지인들의 소개로 주변 교회들을 몇 차례 가보긴 했으나 교회 안에서 비춰진 실망스러운 모습들에 조용히 예배만 참석하고 돌아오곤 했다.

안드레 황은 “유명 색소폰 연주자들의 공연 DVD를 찾아보는 것이 내 취미다. DVD만 1만 장 정도 보유하고 있다. 거기서 연주기법이나 소울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한 흑인 연주자의 공연에 주목하게 됐다”고 했다.

교회에서 이뤄진 공연이었고, 드럼과 피아노 등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이 굉장히 유명한 음악가들인 것을 발견한 것. 안드레 황이 꽂힌 흑인 연주자는 바로 목사이면서도 훌륭한 음악가인 커크 웨일럼(Kirk Whalum)이었다. “왜 한국에서는 저런 훌륭한 연주자의 저토록 가슴 벅차오르는 연주를 볼 수 없는가”라고 생각했고, 이것이 그의 비전의 태동이 됐다.

그러다 찾은 곳이 새에덴교회였고, 다른 교회와는 달리 감정표현에 있어 자유롭고 편안함을 느껴 정착하게 됐다. 음악에 이끌려 교회 문턱을 넘게 된 안드레 황은 즐겁게 찬양하고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아멘’과 ‘할렐루야’를 꿈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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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황은 “얼마 전 오산리 기도원에서 특송을 하게 됐다. 기도원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친구에게 보내니, 친구가 ‘이제 선교사 역할까지 하네’라고 하더라”며 “선교사라는 자리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가슴을 울리는 연주로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받으며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가슴을 울리는 연주로 하나님의 감동을 전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은 음악목사가 대중적으로도 활발히 활동한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오셨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이끌어 가실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안드레 황은 “가족들 대부분이 불교 집안이다. 우리 집에서 예수를 믿고 사역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다. 부모님은 예수를 믿지 않지만 음악을 위해 나더러 교회에 가라고 하신다”며 “가족복음화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이 있다”고 웃었다.

안드레 황은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세계적인 색소포니스트 트란 만 뚜안에게 사사를 받아 베트남에서 Trinn Cong Son Concert에 함께 참여했으며, 솔로 콘서트도 개최했다.

폴 포츠(Paul Potts)와는 친구사이로 내한공연 전국투어와 서울 반얀트리 디너콘서트를 함께했으며, 코니 탤벗(Connie Talbot)의 내한공연 전국투어에도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제46회 대종상 영화제 연주, 한국 마사회 초청 연주, 홍대 상상마당 공연, 이미자 콘서트 특별 초대 연주를 비롯해 KBS 올댓뮤직과 CBS 러빙유 외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솔로 앨범으로는 ‘Butterfly’가 있다.(사역문의 010-4736-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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