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에게 ‘광대설교, 광대목회’를 묻다

  • 입력 2018.07.30 08:14
  • 기자명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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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는 시대의 소통자이자 하늘과 땅의 가교자”

“광대설교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내가 좀 망가지는 것”

 

“설교는 하나님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로 성육신되어

설교자의 인격과 영성을 통해 투영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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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광대가 되어 말씀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목회로 세상의 희로애락을 어루만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는 목회자. 혹자들로부터 ‘목사답지 못하다’, ‘경박하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말씀에 나타난 기쁨과 사랑, 노여움과 슬픔을 온 몸으로 설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설교가. 이를 통해 성도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교회공동체가 세상 속에서 ‘바보스러워’지는 것을 가장 큰 목회의 보람으로 삼는 종이 있다.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다.

그런 그가 최근 자신의 설교와 목회를 ‘광대설교, 광대목회’라 일컬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의 언어와 혼과 노래로 전달하는 광대설교자의 모델이 되어갈 것이라 밝혀 주목받고 있다.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 그대로 전하는 것이 광대설교

소강석 목사가 말하는 광대설교란 무엇일까. 먼저 광대란 시대의 아픔과 한, 정서를 마음에 담아 말과 음악과 춤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전함으로써 마음을 치유하고 힘과 용기를 주는 존재다. 광대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스스로 망가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익살스럽고 풍부한 감정 표현을 통해 사람들의 가슴에 비수와 같은 메시지를 꽂는다.

소 목사는 “광대는 시대의 소통자이자 백성과 왕, 하늘과 땅의 가교자라고 생각한다. 설교란 하나님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로 성육신하는 과정에서 설교자의 인격과 영성을 통해 투영되어야 한다. 따라서 설교자의 마인드는 반드시 광대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하나님의 기쁨과 한, 아픔을 이야기하는데 설교자가 어떻게 고루하고 정제된 언어만 사용할 수 있겠는가. 희로애락의 인격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광대는 시대적 고민과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광대로서 설교자는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전율처럼 느껴야 한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보여야 한다”며 “설교에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시대를 향한 마음과 감정이 본문을 통해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소 목사는 강단에 올라 본문의 희로애락에 따라 기쁠 때는 기쁘게, 슬플 때는 슬프게, 때로는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전할 때는 소스라치도록 무섭게 말씀을 전한다. 이것이 바로 목회자가 광대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광대설교다.

사실 설교에는 광대설교 외에도 본문 중심의 강해설교나 주제별 설교 등 여러 장르의 설교들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설교가 성경 본문을 잘 드러내고 설교가 청중으로 하여금 위대한 결단을 하게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설교자의 우아함이나 품격을 통해서 말씀을 세련되게 잘 전달하며 하나님을 증거하는 설교자들이 대세를 이루었으며 소 목사 또한 한때는 그런 설교자들을 부러워했던 적도 있어서 따라 해보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중 소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는 신성욱 교수를 만나게 된다. 그는 철저한 개혁신학 위에 서 있으면서도 설교의 혼과 스프릿을 강조하며 설교의 전달과 커뮤니케이션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자다. 신 교수는 설교자가 자기를 낮추어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청중을 대하고 메시지를 증거하라는 identification, 곧, 자기동일시 기법의 이론을 주장한다. 즉,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율법주의자들이나 율법 폐기론자들을 동일시 기법으로 설득하듯이 말이다. 이는 소통과 전달 측면에서는 현대목회자들이 당연히 배워야 할 설교기법이라고 한다.

소 목사 역시도 신 교수 덕분에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과 소통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으며 지금도 매주 신 교수에게 설교 원고를 먼저 보여주며 자문을 구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 설교가 전달로 그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성령의 언어와 임재 사건이고 또 성령의 퍼포먼스라고 한다면 본문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의 역설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광대적인 희로애락의 행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소 목사는 광대설교라는 이론을 전에는 알지 못했으나 한국적인 언어로 엿장수 목회, 엿장수 설교라는 이론을 주장하여 왔다. 과거의 엿장수가 돈이 아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물과 폐품을 받고 달콤한 엿가락을 내어주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무거운 죄 보따리, 한숨, 고통, 눈물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 어떠한 예물보다 더 귀하게 받으시고 나서 우리에게 용서와 자유, 기쁨과 행복의 엿가락을 주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런 하나님을 소개하고 드러내는 과정에서 설교자는 엿장수의 이미지, 엿장수의 형상화를 자아내야 한다는 것이 소 목사의 주장인 것이다. 그러던 중 소 목사는 2014년 요한 실리에(Johan H. Cilliers)가 쓴 ‘하나님의 어릿광대’라는 책을 보게 되는데, 책의 서두에서 설교 자체를 어리석은 행위로 보고 설교자가 어리석어야하며, 제도화된 설교 행위를 파괴할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접하며 광대설교에 대한 체계를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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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설교의 필수요소…어리석음과 자기비하

소 목사가 말하는 광대설교에는 3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어리석음과 역설, 하나님 마음과 본문에 대한 애틋함, 자기비하가 그것이다.

소 목사는 “오늘날 목회자들이 너무 똑똑해졌다. 자신의 똑똑함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경향이 있어 성령이 역사할 틈이 없다. 또한 평이한 스피치와 언어행위만으로는 설교가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들려질까 보다 본문과 씨름하듯 파고들어 말씀 그대로를 온몸으로 전달하는 설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본문에 대한 애틋함이 있어야 한다. 광대설교는 본문에 죽고 본문에 산다. 총신대 김덕현 교수는 기생충의 이미지를 가지고 설교자와 본문의 관계성을 설명한다. 설교자가 성경 본문에 기생충처럼 온전히 붙어 있을 때 본문이 실행하는 언어사건은 발생한다. 설교의 영적 영양분은 본문이 실행한 언어행동의 결과물이다. 말하자면, 설교자는 본문의 마스터(master)가 되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본문이 설교자를 지배하도록 애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설교자는 본문의 미니스터(minister)가 될 수 있으며 본문이 실행하는 인격성은 설교자의 감정호흡을 통해 표현된다. 그 결과 설교자는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과 한, 아픔이 느껴지게 되고 청중이 보이고 시대가 보인다”며 “시대와 청중 앞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임팩트 있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자신의 영성을 통해 본문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다 보니 광대스러운 것이 나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소 목사는 본문의 주제와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한 자기비하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꼽았다. 소 목사는 “하나님의 시대적인 마음과 뜻과 기쁨과 모든 감정을 전하기 위해 내가 좀 망가지는 것이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성령 임재의 퍼포먼스가 더 위대하게 나타난다면 이것은 설교자의 두려운 영광이고, 영광중의 영광일 것”이라며 “설교자의 격조 때문에 하나님의 격조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이다. 사도바울이 끊임없이 자신을 비하하듯이 내가 예수 안에서 비하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이 드러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소 목사의 설교방식은 한국교회에 그동안 이어져 내려온 연역적 삼대지 주제설교와는 맥을 달리한다. 통상적인 대지설교는 서론에 이어 3대지 분석, 예화 한 두 개, 적용 그리고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이 틀에 맞추어 설교를 구성하고 성도들에게 전달하여 가르친다.

하지만 소 목사는 “기존의 설교학이 정형화되고 제도화되며 화석화되다 보니 하나님의 마음으로 선포되어야 할 말씀이 예배 순서의 하나에 불과하게 된 면도 있다”며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언어로 선포되는 하나의 언어적 사건이 되고 축제가 된다면 왜 청중은 설교시간에 졸고 설교를 고루하게 생각하며 그 설교에 변화되지 않는가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통하고 어루만지는 목회가 광대설교로 나타나

소 목사가 광대설교, 광대목회를 하게 된 것은 사실 교회 개척때부터 축적되어져 온 모습에서 비롯됐다. 개척멤버 한 사람 없이 장모님과 사모 단 둘을 데리고 시작한 개척교회에는 대형교회에서 상처받거나 큰교회에 대한 저항감 및 열등의식, 작은교회에서 남들보다 위에 서고 싶어하는 심리 등 한과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의 아픔을 보듬고 한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삶의 중심으로 다가가 소통하는 목회를 하다보니 기도와 설교, 심방 등 모든 목회 행위가 광대적 마인드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됐다고.

하지만 소 목사는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 ‘어떻게 하면 대중적 소통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설교자가 될 것인가’하는 시대적인 고민을 간직한 채 끊임없이 답을 찾았다.

특히 소 목사는 조금씩 설교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모든 교회에서 매주 설교가 선포되는데 왜 한국교회는 끊임없이 공격당하고 비난받으면서도 변하지 않는가. 왜 젊은이들은 설교를 듣지 않으려 하는가’였다. 설교자의 고상한 인격으로 고상한 언어와 정형화된 제스처를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맞다면 왜 한국교회는 변화되지 않는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이었다.

소 목사는 “우리가 설교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설교를 통해 생명의 현장으로 역사하게 된다는 확신과 믿음으로 설교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학교에서 배웠던 대로 관습적으로 하고 있는가 되짚어봐야 한다”면서 “수사학과 변증학에 기초한 기존의 정형화된 설교도 당연히 해야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설교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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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설교를 위해서는 진짜 하늘 광대가 되어야 한다

광대설교를 함으로써 설교자의 품위와 격이 떨어질 수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는 소 목사도 동의했다. 하지만 “광대의 형식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광대의 혼과 정신을 말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소 목사는 “설교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모든 사람이 모든 본문을 가지고 다 광대설교를 할 수는 없다”면서 “광대설교에도 좌파적 광대설교와 우파적 광대설교가 있는 반면 진정한 광대설교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을 과대하게 부각시키는 것이 좌파적 광대설교라고 한다면, 본문 중심의 설교보다는 과거의 부흥사들처럼 예화와 자기 이야기에 치중된 설교가 우파적 광대설교라는 것.

반면 진정한 광대설교는 “모든 초점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 본문과 오늘날의 시대, 청중에 있고 설교자는 잠시 역할을 하는 사람일 뿐”이라며 “주님이 주어가 되고 나는 목적어가 되어야 한다. 내가 주인이 되려고 하니 좌파와 우파로 나뉘게 되는 것”이라고 지목했다.

이어 “광대적 언어행위를 하는 사람마다 은사가 다를 수 있다. 격조있는 광대도 있고 딴따라도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너무 해학과 익살스러움이 모든 것을 차지하면 야생적 장터형 광대가 되고 만다”며 “광대설교를 위해서는 적어도 시학과 인문학의 기초가 있어야 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잘못하다가는 설교의 격을 떨어뜨리고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광대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지식과 비판의식이 있듯이 설교자도 기초를 닦아 예술적 극장형 광대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기존의 설교를 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광대의 스피릿이나 마인드만 가지면 되는 것이지 꼭 광대 행위가 필요한가? 소목사는 그 질문에 총신대 김덕현 교수의 언어 행위 이론에 근거하여 이렇게 답한다.

“총신대 김덕현 교수에 의하면 설교도 성령 안에서의 거룩한 언어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언어행위 이론에 의하면 설교의 언어를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순발화행위다. 수사학으로 말하면 지식적인 로고스, 표면적인 내용, 콘텐츠를 말한다. 둘째, 의미수반발화행위다. 내용의 진정성, 진정한 의미 등을 말한다. 성경으로 말하면 단순발화행위는 문자로 기록된 성경 자체 내용을 말한다면, 의미수반발화행위는 그 본문을 기록한 하나님의 마음과 기록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을 수사학적으로 말하면 에토스가 되는 것이다. 셋째, 효과수반발화행위다. 성령이 임재하고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소위 말하면 거룩한 설교적 퍼포먼스를 통하여 성도들이 웃거나 울거나, 감격의 춤을 추거나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감동과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성령의 나타남의 역사라가 할 수 있다.(고전2:4) 그런데 이 의미수반발화행위에서 효과수반발화행위로 가는 과정에서 광대의 외침과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효과수반발화행위가 더 확실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진짜 광대가 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소 목사는 진짜 광대 설교자와 가짜 광대 설교자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진정한 하나님의 광대는 해석학적 실재론자요, 사이비 광대는 해석학적 사용론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하나님의 광대는 해석학적 실재론자로서 깊은 성경의 본문과 하나님의 애절한 마음에 성령의 감동으로 자연스럽게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중을 울리건 웃기건 그 목적이 하나님께 유익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며, 동시에 청중의 가슴에 감동을 주기 위함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짝퉁 광대는 해석학적 사용론자로서 자기 유익을 위하여 청중을 웃기고 울린다. 성령의 감동과 능력이 아닌, 자신의 유머와 감각과 재치를 가지고,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 한다는 것이다”라며 가짜 광대에 대해 경계했다.

이어 “나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보다는 설교자의 바보스러움을 강조하고 싶다. 너무 톡톡 튀는 쪽으로 가기보다는 설교자의 겸손과 어리석음으로 말씀이 설교하게 해야 한다”며 “우리가 말씀 앞에 좀 더 바보스러워지자. 그러면 성령이 역사하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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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설교는 공교회성을 낳는다

이와 같은 광대설교에 기초한 광대목회의 결과로는 첫째, 바보스러운 공동체가 형성된다. 광대목회로 성장한 새에덴교회는 일명 ‘바보교회’이다. 소 목사는 “12년 동안 우리 교회가 참전용사 초청 행사를 하는 이유가 뭔가. 동성애 반대가 우리 교회와 무슨 상관인가. 이것은 교회가 바보스럽기 때문”이라며 “나는 목사이니 그렇다 해도 최고로 똑똑하고 교양있다는 이 동네 우리 성도들이 바보스럽게 쫓아오고 있다. 그 바보스러움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안, 행복과 보람을 누릴 뿐만 아니라 오토텔릭의 헌신과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광대목회의 결과 두 번째로는 역설적인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역설적인 교회는 어려울수록 더 희생하고 헌신한다. 핍박이 오면 올수록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오히려 더 헌신도가 높아진다. 우리 새에덴교회도 목회 생태계를 위해 싸우다가 누가 공격해오면 더 열심히 하는 역설적인 모습도 갖추고 있다. 목사를 닮아 역설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 번째로 공공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교회가 된다고 피력했다. 소 목사는 “우리 교회는 공동체성과 공교회성을 실현하고 있다. 커뮤니티 교회가 생기면서 개교회 설교자들은 우리라는 공동체성보다는 개인의 삶과 영성,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만 계속 강조했다. 그 결과 교회 생태계의 둑이 무너지고 말았다”며 “나도 한때는 개교회 성장주의에 함몰 된 적이 있다. 오로지 교회 부흥이 목표였다. 그러나 한국교회 목회 생태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상전, 영전의 중요성을 깨달은 후 부터는 공교회를 위한 사역에 투신하고 있다. 하늘 광대가 되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애절한 마음을 느끼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성을 향해 킹덤빌더의 교회가 되자고 한다. 한국교회 전체 생태계를 생각하는 교회가 됐다. 이것이 광대설교로 이뤄진 결과”라고 내보였다.

끝으로 소 목사는 “한국교회가 설교가 무엇인지, 설교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나는 왜 설교하는가, 나의 설교는 어떤 설교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광대의 혼이 있는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왜 내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가 고민하면서 설교의 본질에 목말라야 한다. 설교의 대변혁은 일어나야 한다”며 “우리 설교자들도 무한도전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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