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가 제정한 법 정면으로 어기고 나선 재판국

  • 입력 2018.08.14 14:08
  • 기자명 강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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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장로교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는 2013년 명성교회에서 98회 총회를 개최하고, 총대 84%의 찬성으로 ‘세습방지법(헌법 제28조 6항)’을 제정한 바 있다. 위임(담임)목사가 교회에서 사임(사직)할 때, 또는 은퇴할 때 담임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직계비속 배우자는 후임으로 청빙할 수 없으며, 해당 교회 시무장로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도 청빙할 수 없다.

이 법을 두고 지난 102회 총회에서 교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위원회의 유권해석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헌법위 해석에서 그쳤을 뿐 개정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통합총회의 세습방지법은 현재 유효하다.

그런데 통합총회에서 손꼽히는 메가처치인 명성교회가 버젓이 부자세습을 강행해 근래 교계 안팎으로 논란이 들끓었었다. 물론 여전히 갖은 편법을 동원해 세습을 강행하는 교회는 많다. 하지만 통합총회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대형교회가 보란 듯이 강행한 부자세습은 한국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이런 가운데 통합총회가 명성교회 목회세습 등 결의 무효 소송에 대한 재판에서 재판국원 8:7의 의결로 김삼환 원로목사 아들인 김하나 목사 청빙 결의가 적법하다고 판결해 비난의 중심에 서게 됐다. 총회가 제정한 법을 총회 재판국이 정면으로 어기고 나선 셈.

이에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공동대표 김동호 백종국 오세택, 이하 세반연)는 논평을 발표하고, 판결이 잘못됐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세반연은 “이번 재판으로 예장통합총회의 ‘세습금지법’은 유명무실한 법이 되었다. 재판한다는 자들에 의하여 짓밟힌 법과 정의를 마주하면서 우리는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세반연은 “총회 재판국은 명성교회의 부와 권력에 무너졌다. 그들은 정의로운 판결을 간절히 촉구하는 부르짖음에 귀를 닫았고,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는 일에 눈을 감았다”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또다시 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깊은 환멸과 슬픔을 느낀다”고 전했다. 세반연은 예장통합총회 소속 목회자와 교수, 신학생들과 함께 연대하여 행동할 것을 알리기도 했다.

재판결과가 알려지자 각종 SNS와 언론보도 등을 통해 명성교회와 통합총회 재판국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과 성명들이 빗발쳤다. 현재 통합총회에 소속되어 있는 소망교회 김지철 목사는 장문의 글을 통해 김삼환 목사에게 통합총회를 떠나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보내 눈길을 끌었다.

김 목사는 “이번 일로 인해 서울동남노회는 풍비박산이 되고, 교단 총회 또한 흔들리다 못해 이제 추락하고 있는 것을 목사님도 분명히 보고 느끼고 계실 것”이라며 “명성교회 세습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그 세습이 결코 아들 목사를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총회재판국의 판결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젊은 후배 목사들이 가슴을 치며 교단을 탈퇴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시겠냐”고 반문하면서 “한국교회의 선배목사로서 앞으로 한국교회와 총회, 그리고 젊은 후배 목회자들을 생각하신다면, 이제라도 목사님이 결단을 내려주시길 촉구한다. 그래야 한국교회와 총회, 신학교들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논란을 촉발시킨 명성교회 측은 별도의 입장발표 없이 지난 12일 주일 김하나 목사의 말을 통해 논란을 의식하고 있음을 전했다. 김하나 목사는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다만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말은 ‘하나님께 신실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교회를 둘러싼 비판과 질타에 가슴이 아프고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성도들에게 “교회를 향한 여론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며 “(사람들이) 우리를 믿어주지 못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당연히 의심할 수 있고 질타할 수 있다. 의심과 질타가 오히려 교회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한편 총회와 교회, 노회에까지 분란을 야기한 이번 사태로 인해 총회 재판국에도 분열이 일었다. 이번 재판에 반대표를 던졌던 재판국원 7인 중 6인이 다음 날 즉각 사임서를 제출했다.

총회 임원회는 이들의 사임서를 반려했지만 이들은 재판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다음 재판국 일정은 오는 21일 강행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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