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발표한 ‘2017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한해 1만2463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으며, 10~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나라의 중심지인 수도 서울지역의 자살률이 최근 들어 감소하고 있다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시는 자살률 감소의 1등 요인으로 종교계와의 협력을 토대로 한 ‘살(자) 사(랑하자)’ 프로젝트를 꼽았다. 살사프로젝트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민선 6기 공약 시행으로 2015년부터 시작됐다.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불교 등의 4개 종단 자살예방센터가 참여하여 각각 종교 고유의 예식을 진행함으로 유가족들을 애도하고, 전화 상담과 대면상담 등을 병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2일에는 ‘생명과 영성’을 주제로 열린포럼이 진행돼 현대인들의 삶과 죽음에 종교계가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눴다.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진행된 포럼에는 각 종단 관계자들과 봉사자 등 ‘자살예방’이라는 가치에 같은 뜻을 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특별히 이번 열린포럼은 각 종단 가운데서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이사장 임용택 목사)의 주도로 진행됐다.
‘생명을 살리는 개신교회의 역할과 책임’을 주제로 발표한 임용택 목사는 성경과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자살에 대한 이해를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개신교회가 자살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지, 견해차를 어떻게 절충해야 할지 화두를 던졌다.
임 목사는 “성경에 자살이라는 직접적인 용어는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오랫동안 자살을 부도덕한 행위로 보아온 것이 사실”이라며 구약의 아비멜렉, 삼손, 사울, 아히도벨, 시므리, 신약의 가룟 유다의 자살 사건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성경에 나타난 자살 행위들은 단지 본인들의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 좌절감, 죄책감 등을 견디지 못해 자살에 이른 사건들이다. 대체로 하나님의 징계와 저주의 결과로 야기된 것임을 함축하고 있지만 성경 어디에도 성경 저자들이 자살행위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처럼 성경에는 자살에 대해 정확한 판단근거가 드러나 있지는 않다. 하여 임 목사는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밝힌 자살에 대한 견해를 소개했다. 플라톤은 사람의 영혼이 신의 소유물이므로 인간이 임의로 생명을 끊어 영혼을 벗어나게 하는 것은 신의 분노를 사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반대로 스토아학파는 순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살에 대해 비교적 유연하고 관용적인 입장을 취한 바 있다.
신학자 어거스틴은 자살을 ‘자신에 대한 살인’행위로 보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분명한 거부행위로 단정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신 뿐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에도 손해를 끼치는 행위로 정의했다.
마틴 루터는 자살을 개인의 죄악이라는 시각보다 사탄의 힘에 장악돼 역부족인 상태에서 저지르는 성격의 죄로 보았으며, 칼빈은 소명의 자리를 이탈하는 교만에서 나오는 죄악으로 판단했다. 웨슬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살이 죄라는 점을 교회가 성도에게 엄히 가르치고 제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는 자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임용택 목사는 “자살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가 아니라 실제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의 자살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가 교회가 직면한 일차적인 문제”라며 “그런의미에서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과 ‘공의’는 자살을 보는 교회의 시각이 어때야 하는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임 목사는 “성경의 진리를 성도들에게 선포하거나 그들의 삶에 적용하려 할 때, 그 바탕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며 “자살에 대한 교회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교리적 접근이든, 목양적인 돌봄 차원에서의 접근이든 간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근간으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특히나 자살자에 대한 구원 여부는 한국교회 내에서 뜨거운 논란이 되어왔다. 임 목사는 이에 대해서도 “구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이를 논하는 것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라며 “교회는 정죄 대신 진지하고 세심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자살에 대한 엄한 경계는 필요하지만 가르침을 지혜롭게 전달하고 고통당하는 이들의 아픔 속에 진심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권면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살예방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2008년 목회사회학연구소와 기윤실이 발간한 ‘한국교회 자살예방지침서’를 비롯하여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개소를 계기로 목회적 돌봄과 자살예방 운동으로 발전한 것. 특히 9월10일은 세계자살예방의 날을 기념하여 한국교회가 생명문화 인식 개선을 위한 생명보듬주일로 선포하여 기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