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교육」, 언제부터 언제까지?

  • 입력 2018.11.08 13:35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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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좀 앞당겨 말하자면 우리의 교회교육은 태중(胎中)에서부터 임종(臨終)까지 해도 부족할 것만 같다. 언젠가 여행가로부터 들은 바에는, 유럽의 어느 나라 유스호스텔(Youth Hostel)에선가는 한국인 배낭족을 손님으로 받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설마그러랴 하고 생각은 하지만, 듣기에는 참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한편 우리 자신을 좀 깊이 성찰해보자면 그런 곳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 숨길수가 없다. 돌 맞을 소린지는 모르겠으나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좀 무례한 면이 적지 않다. 예의범절의 측면에서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공공질서와 상호존중의 마음이 많이도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공공의 장소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 할 때 만 해도 그렇다. 내려야 할 사람들이 채 내리기도 전에 먼저 힘으로 밀어붙이고 타기에 바쁘다. 그리고 자기가 탔다고 내릴 사람이 다 내리지도 않았는데 ‘닫힘’ 버튼을 눌러대는 사람도 가끔 보게 된다. 환경을 생각하는 측면에서는 더욱 그 도가 심하다.

언젠가 어느 목사님의 설교 중에 한 탈북민이 탈북을 하게 된 동기가 함경도 어느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에 남쪽에서 밀려온 쓰레기더미에서 발견한 라면봉지를 보고 탈출을 결심했다는 간증을 전해들은 바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 누군가 생각 없이 버린 라면봉지가 북한의 청정 해변까지 밀려갔다는 얘기가 결코 자랑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멀리 호주나 뉴질랜드 등의 바닷가에 우리나라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소주병과 라면봉지, 초장 그릇이 널려있다는 것을 보고 우리의 국력이 그만큼 성장한 것이라고 자랑 삼아 얘기할 것은 더 더욱 아니라고 본다. 교육부재(敎育不在)를 단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큼 교육열이 높은 나라는 드물다고 자랑하지만 정작 꼭 있어야 할 교육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로지 지식을 주입하는 것과 입시교육에는 온 정성을 쏟아 부으면서도 정작 훌륭한 시민정신은 교육이전무한 상태이다. 오직 내 자녀가 남을 지배하는 자리로 밟고 올라서기만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자식의 성공이라고 믿는다. 내신 성적의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시험지를 빼돌리거나, 담당 교직원을 돈으로 매수하는 것조차도 서슴치 않는다.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며, 언제부터 시작해서 언제까지 해야 할 것인가를 이 해가가기 전에 깊이 묵상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옛날 그리스에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한다. 어느 고명한 스승에게 한 아이의 어머니가 찾아와 물었다. ‘선생님,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언제부터가 좋을까요?’ ‘아이가 지금 몇 살입니까?’ ‘이제 겨우 다섯 살입니다만....’ 스승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미 5년이나 늦었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우리 민족이 살아온 세월이 험하고 거칠었던 탓이었을 수도 있겠으나 태중에서부터 해야 할 교육, 그 시기를 놓치고 있음이 안타깝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배워야 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 또한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진작부터 우리가 자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가 이미 경제성장 지표로만 본다면 세계 12위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우리 스스로 글로벌 시대의 교양 있는 시민이라고 보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서구화 된다는 것, 현대화 된다는 것, 기독교화 된다는 것, 다 좋은 얘기지만 그것이 결코 교양을 도외시하고 예의범절을 버리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교회교육, 태중에서부터 임종까지 이어져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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