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소강석 목사 목양 칼럼] 뒤늦게 바친 조사(弔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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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 목양 칼럼] 뒤늦게 바친 조사(弔詞)

기사입력 2018.11.25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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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하 장로님, 러시아로 가는 비행기의 하늘은 이토록 눈이 부시게 청명하고 푸르른데 장로님께서는 하늘 위 어드메쯤 계신가요. 지금은 하나님의 품에 안겨 이 땅에서 맛볼 수 없는 평화와 안식을 누리고 계시겠지요.

 

장로님을 알고 지낸지가 벌써 14년째였네요. 저와 장로님의 만남은 팔레스호텔 커피숍이었죠. 장로님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간파하기 위해 만나셨습니다. 당시 지금의 교회당 입당 순서지에 장로, 안수집사들의 담임목사를 향한 서약서가 게재되었는데, 저는 그 순서지가 총회 목사, 장로님들께 보내졌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때 장로님께서 그 서약서를 보고 오해를 하셨지요. 소 목사는 장로님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너무 휘어잡는 것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그것이 수록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제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시킨 것이 아니라 임직자들이 스스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장로님께서는 저를 오해하고 따지려고 만나자고 하였지만, 만나서 대화를 해보니 저의 솔직함과 순수함에 당장 감동하셨다 하셨죠. 그 이후로 장로님은 어떻게든지 저를 총회 안에서 뿌리를 잘 내리고 적응을 하도록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주셨습니다. 전국장로회수련회 주강사를 비롯해서 남전도회와 CE면려회, 그리고 목사장로기도회 강사로 세우려고 앞장서 주셨습니다. 또한 앞으로 총회와 한국교회를 위해 일하려면 총회 모든 협의회에도 많이 후원을 하며 심어야 한다고 이리 소개하고 저리 소개하셨습니다. 정말 장로님은 저의 친 형님보다 더 저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 한 번도 반말을 한 적도 없고 언제나 깍듯하게 대해 주셨고 때로는 기분 나쁘지 않게 충고해 주셨습니다. 이영수 목사님과 정규오 목사님을 비교하면서 정치에 대한 수업도 많이 시켜주셨지요. 아무리 목회자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정치를 해야 할 때가 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도 사람을 죽이는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지요. 장로님, 저하고 비행기를 타고 해외도 얼마나 많이 나갔습니까? 저희 교회 행사 때마다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오셨고 저를 위해서라면 총회와 한국교회에 나가서 뭐든지 하겠다고 하셨죠. 물론 저는 장로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지요. 장로님부터도 백남조 장로님 같은 마인드를 가진 후배들을 많이 키워주시라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장로님께서 심장질환으로 인해 얼굴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진단을 비롯하여 산삼 등 좋은 약을 몇 번이나 해 드렸죠. 그리고 종종 약값도 드린 것 기억하시죠. 그런데 지난 목요일 쓰러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병원에서 뇌사상태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안도감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저녁 늦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토요일 어떻게 밤을 지새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일 오후에 장로님 빈소를 먼저 들리려고 했지만 저녁엔 여수제일교회 집회를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일저녁집회와 월요일 새벽집회를 마치고 목사님께 양해를 구한 뒤 장로님 빈소를 방문하였지요. 그리고 우리교회 부교역자와 성도들을 내려오게 해서 함께 위로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아마 조의금도 그 어느 누구보다 제가 제일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월요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 반까지 장로님의 빈소를 지켰습니다. 그러다가 하태초 장로님의 배려로 5시에 전국장로회에서 주관하는 예배에서도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7시 반까지 빈소를 지키는 동안 갈등에 빠졌습니다. 다음 날 발인예배 때 조시를 낭독하고 싶은데, 제가 다음날 지상파의 성탄특집 다큐 촬영 때문에 러시아를 가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눈물을 머금고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주일부터 우리 교회 장로님 몇 분과 부목사 한 분이 끝까지 그 빈소를 지킨 것 아시죠? 그러나 장로님, 나중에 러시아를 다녀온 후에 꼭 장로님 납골묘를 찾아뵈려고 합니다. 제가 찾아가든 안 찾아가든 천국에 계신 장로님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마는, 이것은 형님 장로님에 대한 저의 예의고 애정이라고 여겨주십시오. 그리고 한 번도 형수님이라고 불러 본 적은 없지만 김봉선 권사님을 잘 모시겠습니다. 장로님이 가셨다고 의리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 저희 장모님이신 정금성 권사님은 천국에 가신 장로님이 너무너무 부럽고 행복하게 보이신다네요.

 

장로님, 러시아 영공의 하늘도 이토록 눈부신데 장로님 계신 천국은 얼마나 더 찬란하고 눈부신가요? 장로님, 하나님 품에서 내내 영생하시고 안식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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