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소강석 목사 목양 칼럼] 속리산 골짜기에서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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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 목양 칼럼] 속리산 골짜기에서의 사색

기사입력 2018.12.30 07:4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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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 너무도 오랜만에 와서 / 마음이 때 묻다 보니 / 몸도 함께 때에 묻혀 / 이리도 오랜만에 왔습니다 / 부끄럽습니다 / 쉴 새 없이 전화하고 / 사람 만나느라 / 분주하기만 했던 지난 삶들이... (중략) ...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 처음에 느꼈던 사랑 / 그 초심을 회복하여 / 다시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는 제가 오래 전에 쓴 산에 와서라는 시입니다. 시를 썼던 당시도 엄청 바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산은 항상 제 삶의 원형이요 근원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에만 가면 그토록 무거웠던 어깨가 가벼워지고 머리가 얼마나 상쾌해지는지 모릅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음이온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겠지만 음이온의 이론을 넘어서 산은 제 삶의 근원이자 주님의 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올해는 얼마나 바빴던지 그토록 좋아하는 산을 제대로 못 가봤습니다. 설악산 대청봉을 한 번 오른다는 게 일정조차 못 잡았고 제주도에 갔을 때도 시간이 없어 교래리 원시림을 뛰어다녔습니다. 산은 뛰어 다니는 게 아니라, 고도원 이사장님의 가르침대로 걷다가도 멈추고 사색에 잠겨야 합니다. 그러나 저의 산행은 제 삶의 여정처럼 멈추기는커녕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아마존에 갔을 때도 배를 타고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밀림의 모습을 봤을 뿐, 밀림 속 깊은 길을 제대로 걷지도 못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아쉬운지 모르겠습니다. 돌이켜보니 올해는 가까운 불곡산도 못 가봤습니다. 올해 고작 간 곳은 고도원 이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충주의 깊은 산속 옹달샘입니다. 그곳에서 고도원 장로님을 따라 용서의 길을 잠시 걸으며 산책 명상을 배웠습니다. 그 후부터는 교회 뒷산을 갈 때도 산책로가 늘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어제 보던 나무가 다른 나무로 보였고, 엊그제 밟았던 흙길과 나무들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연말정책당회 수련회를 속리산으로 갔습니다. 저녁강의와 오전강의를 마치고 점심 먹기 전에 잠시 장로님들과 옛날 세조가 걸었던 길을 걸었습니다. 왕복 6km를 걷는 동안 저는 황홀경에 빠질 정도였습니다. 수 백 년 된 소나무가 속리산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런 소나무들이 마치 로뎀나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세조가 걸었던 길은 주님과 함께 걷는 오솔길이 되어 버렸습니다. 장로님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선은 소나무로 갔고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나무들과 대화하곤 했습니다. 갑바도기아 신학자 닛사의 그레고리가 청결한 마음을 가지면 자연의 나무와 꽃과도 대화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저도 속리산 골짜기의 소나무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지요. “소나무야, 너는 어쩜 그렇게 잘 생겼니, 그토록 잘 생겼는데도 누가 베어가지도 않고 용케도 산을 지키고 있구나.” 그러다가 또 못 생긴 소나무를 향해서는 이렇게 격려를 하였습니다. “못 생긴 소나무야, 어쩌면 너는 나와 똑같이 생겼니? 그래도 너는 속리산을 지켜주고 나는 한국교회를 지키고 있으니 둘의 처지가 똑같구나...” 흙길 위에는 국립공원에서 멍석같이 생긴 코아네트를 깔아 놓았습니다. 우리가 흙으로부터 온 인생인데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가 돌아갈 흙길마저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는데, 코아네트가 흙길을 보호해 주고 있으니 너무 고마울 뿐이죠.

 

돌아오는 길에 꽁꽁 얼어붙은 호수가 보였습니다. 장로님들은 위험하다고 얼음 위로 가지 말라고 했지만 제가 보니 깨질 얼음판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얼음 위에 서니까 얼마나 미끄러운지 엉덩방아를 찧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그 얼음판 위에 누워 버렸습니다. 하늘의 해가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수지의 얼음판에서 썰매를 타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습니다. “, 좋다. 너무 좋아.” 저는 50대 중후반의 목사가 아닌 순수한 어린아이가 되어 얼음판에 누워 버렸습니다.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 오늘 이런 시간을 갖네. 너무 황홀해서 눈물이 나려고 해. 나의 생이 이토록 눈부실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저는 그 자리에서 황홀감만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빨리 서울로 올라가 약속된 일정을 지켜야 하고 다시 교회로 가서 수요예배를 인도해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해 동안의 저의 삶은 전령을 왕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황야를 달리는 한 마리의 군마와도 같았습니다. 그래도 모처럼 짧은 산책 속에서 깊은 사색을 할 수 있었고 눈부시고 감격어린 순간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목양칼럼을 쓰면서 내년은 어떤 해가 될지 이런 눈부시고 감격어린 순간을 얼마나 누릴 수 있을지 기대를 해 봅니다. 무엇보다 한 해 동안 사랑하는 성도들이 제 옆에 있어주어 너무나 행복하고 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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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  
  • dozrr
    • 꽁꽁 얼어붙은 호수를 보고 가서 누우시는 모습들이 마치 소년의 모습처럼 기사보는데 오버랩되네요~^^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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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ukaeyoung
    • 글 을 읽으니  드는  생각
      거창하고  화려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잠시라도  편안한  마음을  주는  장소와  마음이
      진정한  쉼 일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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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은
    • 어린 시절 연못에서 썰매 타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심이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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