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무를 만들지 말라(8:22~27)

  • 입력 2019.01.10 14:17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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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덕 목사.jpg

이강덕 목사(세인교회)

총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사기에는 12명의 사사들(쇼페팀)이 등장합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장(章)수(數)에 12명의 사사들을 배열하다보니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 등 5명의 소(小)사사는 아주 짤막한 소개로 대신하고, 나머지 7명의 사사들의 행적을 비교적 소상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6~8장에 걸쳐 기록한 기드온의 행적은 소위 말하는 대(大)사사반열에서도 결코 적지 않은 신명기사가의 소개로 성경에 적시되었다고 말해도 틀린 해석이 아닙니다. 문제는 기드온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이 너무 일률적이고 긍정적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본문 22절을 읽겠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가 기드온에게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하게 된 배경을 총신대학교 구약학 교수인 김지찬 교수는 자신의 책 ‘오직 여호와만이 우리의 사사’ 에서 다음 6가지로 아주 긍정적 평가를 내린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① 목숨을 걸고 아버지의 집에 있는 바알의 단을 헐었다. ② 300명을 데리고 13만5000명을 공격하는 부대를 지휘하는 능력이 그에게 있었다. ③ 에브라임의 불평을 유화책으로 잠재운 외교적 수완이 있었다. ④ 피곤한 군대에 떡을 제공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숙곳과 브누엘과 같은 도시를 보복하는 단호함이 있었다. ⑤ 피곤한 병사들을 이끌고 끝까지 적을 섬멸하는 집중력이 있었다. ⑥ 적의 왕들의 목을 치는 담대함도 있었다.

필자는 김 교수의 이런 해석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이전 기고문들에서 기드온의 행적들의 총체는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과 마지못함의 마중물이었음을 고발했습니다. 22절의 본문도 그러기에 김 교수의 해석과는 정반대로 필자는 접근합니다. 본문 24~27 전반절에서 기드온은 왕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선포를 한 뒤에 대신 백성들에게 다른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귀고리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귀고리가 아니라 금귀고리였습니다.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는 승전국의 대가로 패전국의 기물들을 탈취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금귀고리였습니다. 바로 이것을 기드온이 백성들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기드온의 이 요청에 백성들이 흔쾌히 수락을 하고 기드온에 바친 금귀고리의 수가 본문에 등장합니다. 1700세겔 즉 무게로 계산하면 약 20Kg에 해당하는 많은 양입니다.

기드온은 이것으로 금으로 만든 에봇을 제작했습니다. 기드온은 그렇게 완성된 에봇을 자기의 성읍 오브라로 가지고 갑니다. 오브라는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섬겼던 가나안의 신이었던 바알과 아세라 산당의 잔재가 있는 곳, 그래서 하나님이 허물라고 명령하셨던 곳이었습니다. 자기의 손으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훼파했던 이방신전의 터로 금 에봇을 가지고 간 그는 그것을 그곳에 안치를 했는데 바로 그것이 기드온의 집에 올무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삼아 섬기는 영적 음란함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본문 27절은 고발합니다. 기드온은 자신이 왕이 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의 후속 행동들은 왕이 하는 것만 행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 기드온 백성들에게 왕이 되지 않는 조건으로 금귀고리를 요구했다는 것은 도리어 내가 왕의 권위를 갖고 있는데 그 권위에 순종을 하겠는가에 대한 완곡한 명령이었다는 점입니다. Ⓑ 기드온은 미디안의 왕들이 갖고 있었던 초승달 모양의 장식, 그들이 입었던 자색 옷을 취함으로 말로는 왕이 되지 않겠다고 한 것과는 달리 왕의 포스를 취하고 있습니다. Ⓒ 이어지는 사사기 9장에 등장하는 악의 화신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 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 뜻입니다. 눈치 채셨습니까? 본문을 통한 교훈을 받습니다.

● 세속적 가치의 관심은 그것이 나에게 영적 올무가 되게 합니다.

김기석 목사께서 출간한 ‘인생은 살만 한가?’라는 저서에 이런 글이 소개됩니다. 전율하는 감동이었습니다. “삶의 중심이 하나이면 ‘충’(忠)의 삶을 살게 되지만, 중심이 여러 개이면 ‘환’(患)이 된다.”(p,55.) 존 스토트 목사도 그의 걸작인 ‘기독교의 기본진리’ 말미에 대단히 의미심장한 말을 남겨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to be) 것과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to do)은 전혀 다른 별개의문제이다.”(p,208)사랑하는 독자들이여! 2019년, 내 삶의 중심에 세속적 가치를 올려놓지 마십시다. 만에 하나 그렇게 무늬만 성도인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것은 나에게 충(忠)이 아닌 환(患)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된(to be) 저와 여러분은 이제는 세속적 가치를 전멸시키는 그리스도인으로 사십시다.(to do)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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