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안경

  • 입력 2019.01.10 15:05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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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조 목사(주님기쁨의교회)

평소에는 안경을 안 쓰다가 예배를 드릴 때나 영화를 보러 나갈 때 만 안경을 착용하는 아내. 그런 아내가 언제부터인가 뭔가 가까운 것을 볼 때면 안경을 비스듬히 하고 맨눈으로 들여다보았다. 노인도 아니고 보기에 참 좋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그러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다. 노안이 와서 그런다나? 노안? 아직 젊은데 노안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가까이 있는 것이 살짝 흐릿해 보이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핸드폰 문자나 톡을 읽는데 불편했다. 처음엔 거리를 조금씩 띄어서 보다가, 한번은 살짝 안경을 벗어 보았더니 너무 잘 보였다. 조금씩 그런 일이 잦아지면서 이제는 당연히 안경을 벗어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 이것이 노안이라는 것이구나. 그래서 아내가 그렇게 보기 싫게 안경을 들고 무엇을 보았구나.’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어느 날 컴퓨터 앞에 앉아 무심코 옛날에 쓰다 도수가 맞지 않아 넣어둔 오래된 안경을 꺼내 써 보았다. 너무 잘 보였다. 요즘 오래된 안경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설교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안경도 종류가 많고 도수도, 색깔도 다양하다. 세상의 숱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떠오른 것이 나만의, 내가 쓴 ‘위험한 안경’이다. 자기의 잣대로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평가하게 하는 안경. 그래서 말씀 안에서의 사랑과 이해, 긍휼, 그리고 분별이 중요함을 본다. 행여 라도 나만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한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자기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 속의 티를 본다’는 말씀처럼 때로 남을 고치려 드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나도 나인 채로 살아가듯 그도 그인 채로 살도록 인정하고 도와주어야한다. 교회에서 어떤 직분도 맡지 않고 충성스럽게 봉사도 하지 않으면서, 어떤 기여도 하지 않으면서 교회 밖에서 책망하며 돌을 던지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많다. 교회와 목사들에 대해, 신학교와 교수, 남의 신앙에 대해서 숱한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사람들. 자기가 몸담은 교회를 지성으로 섬기고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입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보다 헌신하며 희생하며 한 알의 썩는 밀알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객관적인 평가나 일침, 충고가 없으면 세상은 온통 무법천지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앞서겠으나. 무엇보다 ‘내 안의 잣대로만 보는’ 안경의 위험을 놓쳐서는 안 된다. 노안을 이해하지 못하고 못마땅해 핀잔을 주었던 내 부끄러움으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아내는 ‘생물학적인 나이가 있는데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세요?’ 하는 관대한 눈빛으로“아, 이 정직한 나이여~!”하겠지.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쓰고 있는 위험한 안경을 벗어 놓고 말씀의 안경을 쓰자. 올 한해는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내 마음과 삶의 고요함 속에 세상을, 교회를, 성도를, 힘들고 지친 이들을 그들 그대로 사랑스럽게 봐주고 끌어안아 주고 싶다. 그들 모두 하나님이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는, 사랑하는 소중한 분들이니까.(사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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