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사사기 8:28~32)

  • 입력 2019.01.24 09:36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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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덕 목사(세인교회)

남 침례교회의 순회 설교자이며 21세기의 ‘레오나드 레이븐힐’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는 폴워셔는 자기의 책 ‘복음’에서 이렇게 불같은 선언을 선포합니다. “복음은 필요한 것의 핵심이나 일부분이 아니라 전부다. 복음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선포뿐이다.”(p,83)필자는 지금까지 19번에 걸쳐 기고문을 통해 사사 기드온은 결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없는 수많은 결함이 있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시면서 그를 사용했다는 점을 강하게 역설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문제가 많았던 기드온 사사에 대한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 메시지의 주제는 기드온의 말년의 행적과 죽음입니다. 그의 말년의 흔적을 본문 사사기 기자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28~29절을 봅니다.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주하였는데”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을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로 이끈 뒤 40년 동안의 평화 기간 동안 그가 원하는 것을 얻고 삽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본문 29절에서 사사기 기자가 기드온의 말년의 이름을 기드온이라고 호칭하지 않고 ‘여룹바알’ 즉 ‘바알과 대면하여 싸웠다.’ 라는 뜻의 별명으로 호칭을 한 것은 그가 분명 바알의 단을 헐고 바알 숭배의 근원을 허물었던 ‘여룹바알’이었지만 그의 말년에 오브라에 금 에봇을 설치해 놓고 본인의 치솟은 권세를 경배하게 한 또 다른 우상 숭배의 틀을 마련했던 그가 정녕 ‘바알의 단을 허물었던 여룹바알’로 마땅한 자인가를 고발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해석합니다. ‘여룹바알’이었던 기드온인데 그는 말년에 도리어 바알과의 쟁투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히려 오브라에서 생의 말년을 보내면서 그가 장담했던 왕이 되지 않겠다던 선언과는 정반대로 철저한 왕의 권력을 휘두르며 살았던 것이 오늘 본문 여기저기에서 발견됩니다. 30~31절을 보십시다.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문자적으로 그대로 해석하면 그는 고향에서 살면서 많은 아내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내들 사이에서 70명의 아들을 두었음을 알려줍니다. 만에 하나 아들이 70명이라면 여성의 이름을 배제한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그의 자식들의 수는 엄청난 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로마 근동연구소 교수인 알베르토 소긴이 자신의 주석서 ‘판관기’에서70명이라는 숫자를 수로 해석하지 않고 많다는 것의 대략적인 수치로 이해한 것이 도리어 저에게 제가 주장하는 부정적 모드의 기드온 해석의 의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숫자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녀들을 기드온은 두었습니다. 사사 시대에 이런 가계도를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직분은 왕 뿐입니다. 그는 왕이 되지 않겠다고 했지만 철저히 왕의 행세를 하는 권력자로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기드온은 고향 오브라가 아닌 세겜에 첩을 두었습니다. 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피레게쉬’는 문자적으로 정부(情婦)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남자들의 성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여자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기드온은 본인의 성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당시 가나안 땅에 속하는 이방의 여인을 첩으로 두었다는 말입니다. 이 또한 왕의 권력을 갖지 않고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행위의 소산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기드온이 사사로 남긴 총 흔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유명한 주석학자 햄린은 기드온의 삶을 단 한 마디로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심각한 결함을 가진 사사”우리들이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생을 마감하는가? 에 대한 답변은 포기할 수 없는 우리들의 흔적이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3:36절을 봅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가 후세가 평가한 다윗의 영적 흔적입니다.100주년 기념교회를 시무했던 이재철 목사는 자신이 쓴 ‘사도행전 속으로 8’에서 가슴에 남는 촌철살인을 남겼습니다. “믿음은 점이 아니라 선이다.”(p,44) 곱씹고 또 곱씹어도 가슴을 울리는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필자는 이제는 갈라디아서 6:17절을 기드온 연구 결과의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삼고 글을 맺으려고 합니다.“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17절)이 글을 읽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흔적(스티그마)를 남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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