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내가 산다(2)

  • 입력 2019.04.05 09:13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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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민 목사 (소망전원교회)

자기 하나만 생각하면 열심히 살 이유도 없고, 부지런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식 때문에 산다는 엄마. 어린 것이 눈에 밟혀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아빠. 이런 모습을 연상하며 잘 생각해보세요. 엄마가 자식을 살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식이 엄마를 살리고 있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가 엄마를 살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사람은 뭔가를 해야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사는 이유를 줄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인생이 살아야 할 무슨 이유가 있겠어?” 하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신만을 바라보는 짧은 생각입니다. 누군가는 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고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잘나고 못나고 보다, 잘 하고 못 하고보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지금 살아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살려놓으실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나에게서는 찾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나 아닌 남에게서 이유를 찾아야하기에 나는 내가 왜 살아 있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하나님은 나를 아직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너 때문에 산다!” “내가 너 때문에 죽을 수가 없다!” “절대 너를 두고 죽을 수 없지!” “내! 이대로는 억울해서 죽을 수 없다!” 이런 말들은 우리가 흔히 듣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이유를 자기 자신보다 남에게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누가 나를 살게 하는 것일까요? 미워서든 사랑해서든 억울해서든 사는 이유는 나 아닌 남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남 때문에 죽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남으로 인해 사는 것입니다. 나를 살게 하니 나 아닌 남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입니까?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7~8】

사도 바울은 성도다운 삶의 특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도 중에는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성도는 주를 위해 살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성도가 남을 위해 살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남을 위해 사는 성도에게는 무엇이 남을까요? 물리적으로는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남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의 뜻은 사람은 짐승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짐승처럼 가죽이나 고기를 남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다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름을 남기는 것은 바울이 말하는 아름다움과 상통하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남겨야 하는 것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과 영적인 것, 다른 말로 평판과 칭찬, 존경심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남겨야할 진정한 유산이고 성도가 남겨야 할 삶의 결과입니다. 그로 인해 세상이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얻고 영적 사망의 상태에 처한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은 남을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간의 역사 속에서 구세주의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자기 하나를 위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남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성도가 나 하나를 위해 살면 세상엔 희망이 없습니다. 성도가 나 아닌 사람을 위해 살 때 세상엔 희망이 생기고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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