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신앙의 여백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사사기 9:16~21)

  • 입력 2019.04.18 10:44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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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덕 목사(세인교회)

아비멜렉의 왕위 찬탈 과정에 극적으로 살아남은 요담은 나무 비유를 통해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세겜 사람들에 대한 그릇된 행위가 얼마나 엄청난 실수였는지를 경고하는 메시지가 본문입니다. 본문 16~18절에서 요담은 세겜 사람들의 오판에 대해 지적합니다.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일은 기드온이 행한 일에 대한 배은망덕한 행위였음을 고발합니다.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었느냐?’ ‘너희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미디안과 싸워 자유를 준 아버지 기드온에 대한 보답이냐?’ 결코 아니라는 답을 갖고 요담은 질문을 한 것입니다. 이런 실수를 저지른 세겜 사람들에게 임할 비극을 요담은 본문 19~20절에 걸쳐 열거합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만에 하나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것이 옳은 일이고정당한 일이라면 너희들에게 기쁨이 되고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것이 그릇된 일이고 의롭지 않은 일이라면 너희들이 선택한 그 일로 말미암아 반드시 너희들에게 화가 임할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입니다.

요담의 이 경고는 소름을 끼치게 할 정도로 정확하게 실현됩니다. 9장 후반부에 기록된 이 내용을 다음 호에서 소상히 살피겠지만 미리 약간의 맛을 본다면 아비멜렉이 왕위에 오른 지 3년이 지나자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에게 반감을 갖고 배반하기에 이릅니다. 아비멜렉은 자신에게 반역을 일으킨 세겜과 밀로에 대하여 물리력을 동원하여 무차별적인 학살을 가함으로 표면적으로는 반역의 무리들을 진압함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의 인과관계로 인해 형성된 데베스에서 아주 보잘 것이 없는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두개골이 깨져 객사를 당하게 되었음을 역사가가 증언합니다. 물론 이 일은 더 이상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악행을 그냥 좌시할 수 없어 개입하신 것이기는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아비멜렉은 본인이 악을 행한 것에 대한 마땅한 보응을 받은 셈이 된 것이고, 그 반면 전혀 그릇이 안 되는 아비멜렉을 집단적인 이익을 위해 왕으로 세운 세겜 사람들도 약 1000 여명이 망대에서 몰살을 당하는 자업자득의 비극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이상, 주어진 본문을 통해 독자들과 저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 내 신앙의 여백에 무엇이 있는 지를 점검해 보는 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본문에 대입해도 이 말은 시의적절합니다. 세겜 사람들은 지역적 이기주의로 깜도 안 되는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반면, 아비멜렉은 권력에 눈이 멀어 하지 말아야 하는 혈육 살해를 저질렀습니다. 악을 심은 것입니다. 악을 자행한 자들의 삶의 여백은 언제나 또 다른 악을 행함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악순환의 궤도를 돌게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또 다른 악을 잉태하게 되는 비극적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은 결코 이런 악으로 삶의 여백을 남기지 않습니다. 도리어 선을 행함으로 언제나 삶의 여백을 풍요롭게 합니다. 이 은혜를 일찍 알았던 바울은 그래서 로마서 16:19절에서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필자가 존경하여 멘토십을 갖고 있는 이재철 목사께서 저술한 ‘사명자 반’을 보면 그가 목회여정 중 남긴 대단히 중요한 성찰이 담겨 있어 필자는 심비(深碑)에 새겨 놓았습니다.

이번 호에 함께 나누어도 괜찮을 것 같아 독자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그대의 전 존재를 한 번 멈추고 비워 채움 받는 것으로 그치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다. 믿음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대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마음껏 역사하시게끔 그대의 일평생을 주님께 계속 ‘여백’으로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 그 ‘여백’에 그대가 상상할수도 없던 주님의 섭리를 펼치신다.”(pp,21~22) 전율하게 하는 감동입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고난주간과 부활의 절기라는 기독교 최고의 의미 있는 카이로스의 날을 보내고 있는 지금, 한 번 즈음은 그대의 신앙의 여백에는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입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묻겠습니다. 혹시 나 외에 그 어떤 존재도 침범할 수 없도록 만든 욕심이라는 철옹성을 당신의 여백에 구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필자가 생각하는 기적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신앙의 여백에 그분이 계시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기적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갖고 살면서 아비멜렉, 그리고 세겜 사람들과 같은 여백을 갖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되새김질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신 부활의 주님이 독자들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절기가 되기를 중보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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