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연애편지다

  • 입력 2014.10.17 09:44
  • 기자명 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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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김천기.jpg
 
『 기독서점에서 요한계시록을 찾다보면 쉽사리 해석서를 발견할 수 있다. 비단 22장, 404절, 29쪽의 말씀이 그토록 막히고 난해하고 어렵게만 다가와많은 목회자들은 스스로 선택한 해석들을 의지해 불과 설교 몇 번 할 정도인 요한계시록 큰 줄기를 쉽게 풀어쓴 김천기 목사(한동교회)를 만났다. 』
요한계계시록에 집중하게 된 슬픈 동기
“분명한 것은 제가 요한계시록 교과서를 낸 것은 신령한 영력도 아니고 오랜 세월의 목회경험도 아니며, 단지 요한계시록을 계속 읽었기 때문입니다”
한동교회 김천기 목사의 변은 참으로 겸손한 단답이었다. 40여년 간 목회경력을 가진 목회자로써 자신의 수치스런 집필동기를 밝혔다.
말씀중심, 설교중심, 기도중심 목회를 지향하던 김 목사에게 가장 울렁증을 느끼게 한 것이 다름아닌 요한계시록이었다. 그의 말대로 1981년 한동교회를 개척하고 한 강단에서 설교횟수만 어름 잡아도 2000회 이상이었다. 매 설교마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요한계시록을 본문으로 한 설교는 불과 10여 차례, 내용도 1~3장 사이의 부분적인 내용이 전부였다. 스스로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해도 해석도 명확하지 않은 것이 내심 부담스러웠다.
“어쩌면 요한계시록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없었을까?”하며 통탄스럽기까지 했다. “이 두루마리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계22:10)는 말씀이 뇌리에 머무르자 관련서적 5권을 구입해 읽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방법이 4가지 내지 8가지로 분류되었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관한 주제도 여러 가지로 나뉘었다. 나름 성경을 읽고 안다는 자신도 난감하다는 사실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십자가 군병으로 싸워야 할 대상이 애매모호했다. 과연 ‘적그리스도는 누구인가’란 명제는 시대마다 해석자마다 달라서 더욱 꼬이기만 했다.
“목사인 내가 확신조차 없이 어떻게 성도들을 가르칠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 미치자 잠도 오질 않았고 성도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난감했다.
나아가 이단들에게 미혹되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실정을 볼 때 속수무책인 기성교회 목회자로써 아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재앙 내리는 하나님의 오명 밝혀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기독교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기존 학설과 학파를 벗어나 해석이 다른 요한계시록 주석을 덮는 것으로 김 목사는 새롭게 성경을 접했다. 오직 순수한 성경에만 초점을 두며 읽고 또 읽고 계속 묵상했다. 난해한 용어에다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문맥마다 의문점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왜’라는 의문사가 마스터 키 역할이 되어 실타래 풀리듯 열리는 그 감동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었다. 에스겔서에 나타난 마른 뼈들이 맞춰지듯이 말씀 한 단어 한 문장이 살아나 큰 군대가 한 눈에 펼쳐졌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기 백성들에게 진노와 재앙을 내리는 신(神)이란 오명(汚名)이었다. 이 발견이 요한계시록 해석의 지축을 흔들었고 영화로우신 큰 빛과 한 줄기를 만나는 절정이다. 이 기쁜 복음인 요한계시록이야말로 예수 구원의 복음이자 완성이며 하나님 나라의 승리였다.
대부분 요한계시록의 해석방향이 종말에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심판의 점진성을 보이고 있었다. 3대 재앙(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비하신 것이라면 그 재앙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이런 비슷한 유형의 해석들이 한국교회, 세계교회에 보편화되었고 예배 강단용 성경에도 그렇게 해석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김 목사는 아픈 가슴으로 이해되지 않는 계시록을 다시 붙잡았다. 성령께서 감동을 하셨을까? 그 난해하던 구절과 내용들이 요한계시록 자체 말씀안에서 해석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바른 해석을 위해 전통 해석을 과감하게 내려놓았던 김 목사는 조심스러운 부분임을 인정했다.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푯대를 기준으로 자신의 해석이 신학계에 큰 타격과 파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들면서 “바른 해석을 위해서 지금까지 내려온 학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요한계시록은 요한계시록으로 풀자’라는 슬로건을 제시하며 재앙시리즈에 대한 이해도와 난해한 본문에 대한 해석이 굳이 필요한지에 대해 오히려 너무 집착함으로 잘못된 공상과 자의적인 해석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인식할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신학계 학자들의 고민을 예로 들었다.
다시 말해 모르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아는 것으로 풀어가라는 것인데 바로 이런 우려 때문에 요한계시록에 대한 설교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
김 목사는 요한계시록 해석의 성패는 세 기둥의 해석이라는 설명이다. 요한계시록에는 3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계1:4, 8, 4:8)라는 말씀에 기초를 한 기둥이다. 하나는 전에 계셨을 때 세우신 기둥이고, 두 번째는 이제 계시면서 세우신 기둥, 세 번째 기둥은 장차 오셔서 세울 기둥 즉,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론적 사역의 예시다. 전에 계셨을 때 하신 사역은 일곱 인 떼기요, 이제 계시면서 하신 사역은 일곱 천사 나팔 불기요, 장차 오셔서 하실 사역은 일곱 대접 재앙을 부어 의의 나라로 평정하실 사역이다.
파루시아, 재림의 나팔소리
성경에는 나팔소리 날 때 주님은 강림하시고 죽은 자는 살아나고 살아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변화된다고 예언했고 주님께서도 큰 나팔 불 때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다.
때문에 김 목사는 일곱 나팔을 재앙이라고 외친 신학자들과 달리 예수 제2차 파루시아 나팔이라고 말한다. 그토록 갈망하며 사모하는 주님께서 오신다면 뛸 듯 기뻐해야 당연하다. 하지만 신랑께서 오신다는데 나팔소리를 기쁨의 함성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재앙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불행한 소식, 두려운 마음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하나님의 일곱 천사가 부는 일곱 나팔은 주님 오시기를 갈망하고 기다리는 주의 백성들에게 경고가 아니라 약속한 그리스도의 강림을 성취하시는 복음이며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위로의 나팔이라고 전했다.
요한계시록 10장, 11장에 말씀하신 계시는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살아갈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음이요 사명이라며 중요성을 강조하는 김 목사는 “예수의 재림을 예언하라”는 특명 즉, 파루시아(재림)임을 상기시킨다.
김 목사는 ‘요한계시록 파루시아 교과서’란 책을 펴면서 동시에 ‘파루시아비전선교회’도 창립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낸 계시록을 모든 주의 백성들이 사랑의 편지로 인정하게 하는 운동이 목적이다. 주님께서 명확히 재림하신다는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주의 다시오심을 사모하는 바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파루시아비전선교회는 사명감을 가진 목사, 장로, 권사로 조직한 선교회 목적을 위해 요한계시록 7팔 재림론 강의권을 주관하도록 하고 나아가 변질된 7팔 재림론을 수호하기 위해 지역과 교단에서 감찰권을 행사토록 했다.
김 목사는 평생 순수한 목양의 길을 걸어온 평범한 목회자다. 총신 신학대학원 71회 졸업생이며 합동 수도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40일 금식기도 4회, 엘림장애인선교회 대표회장을 7년 연임하며 평북노회 노회장을 2회 역임했다. 요한계시록에 울렁증을 가졌던 그가 요한계시록을 쉽게 읽고 풀 수 있도록 담대히 책을 발간하고 요한계시록 첫 세미나를 9월29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개최했다.
빈 자리 없는 뜨거운 호응속에서 용광로같은 세미나를 마치자 앵콜 요청이 쏟아져 두 번 째 무료세미나가 11월3일(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실제 책을 들면 손을 쉽게 뗄 수 없이 밤을 새면서 읽혀지는 책이라는게 독자들의 평가다.
<한동교회 문의 031-261-0701 /010-9865-1411, 백완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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