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12)

  • 입력 2019.05.02 09:58
  • 기자명 컵뉴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수 목사.jpg

이승수 목사
▣ 영월주님의교회 

▣ 전 터키 선교사 

기오(Χίος, 현. 히오스)섬

에게해의 동부 중앙지역에 위치한 기오섬은 현재는 ‘히오스’라고 부른다. 한편, 이곳은 우리에게 오딧세이와 일리어드 등 최초의 서사시를 쓴 시인 호머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으로, 이웃 나라인 터어키(오스만 터키어로는 이곳을 ‘사키즈’라 불렀다)의 소아시아 해안과는 직선 거리로는 불과 7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따라서 이 섬을 들러 가까이에 있는 터어키에 속한소아시아의 체시메 항구에 들어오면 버스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를 방문하기가 수월하다. 기오 섬의 기후는 온화한 편으로 고대로부터 이곳은 흰 줄을 가진 아름다운 청색대리석과 우수한 도자기 흙이 지금까지 출토되고 있으며, 또한 이곳에서 누에고치에서 뽑아내 만든 질 좋은 비단은 멀리 프랑스 리옹으로 수출될 만큼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본래 이 섬의 최초의 원주민은 렐레게인Leleges), 크레타인(Cretans), 가리아인(Ccrians)들로 알려졌으나 이후 이오니아인(Ionian)들에게 정복되었다. 그러므로 이오니아인들은 기오를 이오니아에서 가장 번창하는 도시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 섬은 B.C 546년 고래스(Cyrus)왕이 이끄는 페르시아 군에게 함락되고 이후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

한편, 유대인 출신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고스 섬에서 미둘레네(레스보스)로 가려던 헤롯왕이 북풍으로 인해 배가 기오 섬에 밀려와 여러 날 이곳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그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이 도시의 건물 기둥을 재건할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고 전한다. 사도 바울은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던 중 미둘레네 섬을 떠나서 이곳 기오 섬을 지나가게 되었다. 14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행20:15)사도 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사도바울 일행이 바람이 잠잠해 지자 이곳에 배를 멈춘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나, 일부성서학자들은 그것보다는 단순히 달밤이라 어두웠기 때문에 기오 섬의 맞은편에 있는 소아시아 해변에 닻을 내리고 그 날 밤을 지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오 섬에는 실제로 사도 바울을 기념하는 교회나 유적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기오 섬 항구의 서쪽에는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로 11세기에 세워진 ‘신 수도원’(헬라어, 네아모니)이 자리하고 있다. 이 수도원은 1045년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건물의 중심부에는 약 15m 정도의 크기로 기둥이 없는돔 건축양식을 하고, 그 중앙에는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모습을 모자이크하여 성화로 그렸는데 전쟁으로 파괴되어 성화의 일부만 남아있어 아쉬움이 남아있다. 한편, 기오 섬은 1821년 2월 그리스 혁명전쟁 당시 본토에 사는 그리스인들과 연합하여 터어키 군과 싸웠으나 패하여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822년 오스만 제국의 파샤(Pasha)의 명령으로 기오 섬은 완전히 짓밟히게 되었는데 2만3000명이 학살을 당하고 4만7000명이 노예로 팔려가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당시 이곳에서 살아남은 그리스인은 2000명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들은 황폐한 섬을 떠나 유럽 전역에 흩어지면서 이곳의 슬픈 역사를 자세하게 기록하여 유럽전역에 알려 공분을 일으켰다고 전한다. 1834년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는 자신의 대표작인 히오스 섬의 대학살이란 그림을 그려 당시히오스 섬에서 당한 현지인들의 참혹한 모습을 소상히 소개하고 있다.

히오스 섬의 아픈 과거를 생각하면서 필자는 최근에 은퇴한 철학자요 기독교인으로 사회에서 존경받는 한 노교수가 기독교인의 사명에 대한 의미 있는 말씀을 하신 내용이 귓전을 맴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는 사회가 묻는 진리에 답해줄 수 있어야 한다. 민족과 국가를 하늘나라로 바꾸는 사명이 우리 기독교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사회가 교회를 위해 있지 않고, 교회가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그의 가르침은 탄핵정국으로 아직도 나라가 어지러운 상태에 놓여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조국이 안정되고 하루속히 한반도에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를 위해 우리 모두가 합심해서 기도해야 할 때임 을 새삼 깨닫게 한다. <계속>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