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

  • 입력 2019.05.03 12:26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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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욱 목사(예정교회) 

누가복음 15장 1~7절

1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제가 어렸을 때는 땅따먹기 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자기 손바닥으로 그린 만큼의 땅을 넓혀가는 게임입니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땅따먹기를 하다가 저녁때가 되어 밥 먹으라고 친구의 엄마가 부르면 그제야 모두 손바닥을 털고 일어서서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가장 괴로운 친구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따뜻하게 반겨줄 가정이 없거나 집이 지옥 같은 친구들입니다. 아버지가 폭행을 해서 무섭거나 형들이 때리고 괴롭히는 친구들은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괴롭습니다. 누군가가 반겨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큰 행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행복한 이유는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돌아갈 곳은 눈물도 없고 근심도 없는 우리들의 본향, 하늘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누가는 우리처럼 이방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곁에 직접 따라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장에 있었던 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사해서 그 내용을 데오빌로 각하에게 편지로 써서 고했는데, 이것이 누가복음입니다. 유명 연예인이나 유명 선수들에게는 펜클럽이 있듯이 예수님에게도 팬클럽이 있었습니다. 아주 특별한 부류의 팬클럽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다니시는 곳에서는 세상에서 소외당하고 죄인 취급을 받는 특수층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던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을 가장 사모하던 팬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죄인들을 감동시키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죄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죄 사함의 능력과 구원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놀라운 감동과 기쁨을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복음은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은 널리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나그네 세상에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알려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우리의 선택임을 알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방향을 제시하는 내비게이션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의 7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의 기쁨과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의 기쁨을 비유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 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 15:8~10).

하나님 앞에서 잃어버렸던 죄인을 다시 찾게 되는 기쁨이란 사람이 자기의 중요한 소유물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게 되는 기쁨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비유입니다. 언젠가 제가 수첩과 핸드폰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수첩과 핸드폰 안에 모든 스케줄과 연락처가 다 들어있었기 때문에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다시 찾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성경에서는 ‘탕자의 비유’로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 15:32) ‘길 잃은 양’, ‘버려진 드라크마’, ‘돌아온 탕자’는 잃은 것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같지만 그 사례는 다릅니다. 양은 자기 힘으로 목자를 찾아올 수 없고, 동전 역시 스스로 굴러서 찾아올 수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찾는 과정은 오로지 목자와 여인의 정성과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목자가 들판을 두루 다니며 잃은 양을 찾아야 하고, 여인도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비유를 다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7, 10절)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목자와 여인이 노력해서 찾았지만 결국 죄인의 회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 과정의 일을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해야 합니다. 제힘으로 목자를 찾아올 수 없는 길 잃은 사람, 자기 스스로 굴러간 동전····, 이런 사람은 자기 스스로 돌아올 수 없기에 우리가 찾아야 합니다. 돌아갈 본향이 있음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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