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할렐루야!(2)

  • 입력 2019.06.07 10:13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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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민 목사 (소망전원교회)

예레미야는 지금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습니다. 죽을 상황에서 살 소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 빠져 고통 받고 있지만 잘 생각해보니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었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것, 아침에 여전히 눈을 뜨는 것, 숨 쉬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끝내기로 결정하셨다면 지금의 과정이 필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소망을 잃지 않음은 환경이나 상황이 아니라 그 모든 조건 위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함입니다. 창조세계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성도는 세상을 초월하는 소망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세상을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서 세상 속에서 세상을 뛰어넘는 가치와 철학으로 살아갑니다. 세상의 일이 기대하는 대로 되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성도에겐 상관이 없습니다. 둘 다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된다면 하나님과 내 뜻이 일치한 것이고,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뜻이 나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조금 지나면 나와 다른 하나님의 뜻이 내 뜻보다 나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절망 중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잠시 후면 그 절망이 오히려 소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사 한 분이 테러단체에 의해 납치를 당했습니다. 납치범들은 선교사가 소속한 기관에 석방조건을 제시하였습니다. 선교회를 통해 파송된 선교사들을 모두 철수 시키라는 것입니다. 선교회에서는 납치된 선교사를 구출하기 위해타협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선교를 포기한다면 똑같은 일이 전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조대를 파견하는 것도 선교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기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일주일 후 타협기간이 지나자 납치된 선교사는 시골마을의 버스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동료 선교사들과 가족들은 슬픔 속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선교사를 죽게 하시는가?”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데?” “거룩한 일에 자신을 드린 선교사가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하는가?” “좀 더 적극적으로 구조 활동을 했어야 하는 건 아니었나?” “앞으로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많은 정책회의가 열렸지만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를 납치해서 될 일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납치된 선교사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과 선교회에서는 살아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한 사람의 희생을 통해 전 세계 선교사들을 보호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한 분의 대속으로 인류가 구원받은 것처럼 납치된 한 사람의 순교로 전 세계에 흩어진 선교사들을 납치 대상에서 영구히 제외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태복음 10:39】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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