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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바리새인

기사입력 2019.06.1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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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욱 목사(예정교회) 

 

 

 

 

 

 

 

 

누가복음 189~14

9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가끔 TV의 채널을 돌리다 보면 패널들이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 종종 나옵니다. 정치 문제나 사회 문제, 하다못해 연예인의 사생활까지도 난도질하면서 자기 생각으로 과격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 살기가 참 어려워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 전 한 선수가 월드컵 경기에서 본인은 최선을 다해서 싸웠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살인적인 댓글로 상처를 입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결국 그 선수는 견딜 수가 없어서 SNS를 닫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막상 자기는 그보다도 못하면서 남이 하는 것에는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곤 합니다. 자기에게는 관대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마녀사냥을 하듯 자기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야말로 21세기의 바리새인이요, 현대인의 병든 모습입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현대인의 병은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병은 마음의 병입니다. 정신병 환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쉽게 사람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미움과 시기가 가득합니다. 본문 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모습을 통해 혹시 내가 21세기의 바리새인은 아닌지, 스스로 진단해보기 바랍니다. 바리새인은 모든 것을 색안경을 끼고 봅니다. 사람은 자기 시각으로 상대를 바라봅니다. 검은 렌즈를 낀 사람의 눈에는 하얀 것도 검게 보입니다. 율법적인 사고로 상대를 바라보면 모두가 죄인입니다. 남이 잘못하는 것만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그렇습니다. 과거 임진왜란 때도 이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의 진언을 묵살하기 위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임금에게 거짓을 고한 것입니다. 내 편이 아니면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이미 바리새인인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율법이 아닌 은혜로 상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미움과 원한은 우리를 바리새인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뱀이 하와에게 미움과 원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 결과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부부간에도 갈등이 일어났지만, 가인과 아벨의 형제간에도 극단적인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불신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볼 때 미움과 원한은 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르틴 부버는 너와 나라는 책에서 현대인의 인간관계 유형에 대해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 그것과 그것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인격적이지 않으며, 이용 목적에 따라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한마디로 차갑고 냉정한 관계를 말합니다. 두 번째, 나와 그것의 관계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이용하려고 해도 끝까지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일방적인 관계입니다. 이 관계 또한 짝사랑이기 때문에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세 번째, 너와 나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서로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관계로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관계를 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에도 미움과 원한과 갈등이 들어오면 관계가 파괴됩니다.

 

마음이 병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만져주심이 없기 때문에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한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상대를 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보입니다. 악한 말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만져주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귀족 출신으로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자신의 작품으로 많은 갈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삶에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부정적이고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나의 회심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5년 전에 나는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그러자 내 생애가 변했습니다. 이전에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었고 이전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중요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산에 빽빽하게 심긴 나무는 태풍이 불어도 뽑히지 않지만, 혼자 뚝 떨어져서 심긴 나무는 태풍이 불면 뿌리까지 뽑혀버립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뿌리가 예수님과 함께 엉켜 있어야 합니다. 미움과 원한의 뿌리는 뽑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뿌리가 박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정적인 마음, 병든 마음이 건강한 마음으로 바뀝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 은혜의 눈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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