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할렐루야!(3)

  • 입력 2019.06.27 10:57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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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민 목사 (소망전원교회)

프랭크슬래작은 우주비행사의 꿈을 가진 교사입니다. 그러나 그의 꿈은 현실에 밀려 아련한 동경이 되었습니다. 1985년 레이건 대통령이 일반인을 우주로 보내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그는 지원서를 제출하고 1차 시험에 통과하였습니다. 비행 훈련과 실무 테스트에 100명이 참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이 꼭 합격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과정에서 그는 탈락하고 맙니다. 그 후로 그는 사는 낙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세상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그를 위로하였습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너는 절대 버려진 게 아니야!”그런 아버지의 말이 옳다는 것을 그는 자신이 타려고 했던 챌린저호가 발사된 직후에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우주인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챌린저호가 발사 후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타고 있어야 할 우주선을 다른 사람이 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우주선이 자신의 눈앞에서 터져버린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우주인이 될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고만 생각했지 죽음은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을 챌린저호 발사 후 73초 만에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하신 것이었습니다. 세상과 사람들이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살 기회를 준 것이었습니다. 합격한 것보다 떨어진 것이 자신의 삶을 계속 살 수 있게 한 것이었습니다. 한 순간의 절망을 통해 그는 남은 생을 더 가치 있고 진지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성도에게 더 살고 덜 살고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인생의 시간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합격과 탈락은 끝이 아닙니다. 합격해도 탈락해도 새로운 일이 시작 됩니다. 때로는 합격보다 탈락이 더 낫기도 합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인생은 무엇이 나은지 알 수 없습니다. 한 순간의 절망이 오히려 소망이 되기도 하고 영원할 것 같은 소망이 절망이 되기도 합니다. 안 될 땐 안 될 이유가 있고 잘 될 땐 잘 될 이유가 있습니다.

성도는 잘 되고 안 되는 것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건의 내면에 담겨 있는 의미를 찾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때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뜻을 발견하면 성도는 좋을 때도 힘들 때도 여전히 소망으로 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소망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눈이 있지만 볼 수 없고, 생각은 하지만 깨닫지 못하고, 감각은 있지만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보다 소망 없이 사는 사람을 만날 때에야 비로소 보게 되고, 생각하고, 깨닫게 됩니다.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만나야 자신이 가진 것을 감사하게 됩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소망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성도는 절망 중에도 소망을 보고, 세상은 소망 중에도 절망을 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절망을 바라보는 사람이고, 감사하는 사람은 소망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성도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절망 중에도 소망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로마서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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