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목양 칼럼] 이야기 소년과 라디오

  • 입력 2019.06.30 07:47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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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설교학 교수이자 우리 교회 연구목사님이신 신성욱 교수님의 설교학 강의에 대한 기사가 국민일보에 보도 되었습니다. 신교수님은 매주 저의 주일설교 원고를 미리 검토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 분은 지금까지 설교가 주로 명제적이고 선포적이며 가르치는 설교였다면 현대사회는 ‘원포인트의 내러티브 강해설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원고를 준비할 때부터 드라마틱한 구성을 하고 반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설교의 테크닉은 배우고 훈련을 받아서 하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체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의 경험을 봐도 그렇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어머니, 누나로부터 무수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유년시절의 보물창고와 같았습니다. 그 속에는 아무리 꺼내고 꺼내어도 사라지지 않는 수많은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고 제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이야기는 황홀한 상상의 세계였습니다. 귀신, 도깨비, 보릿고개 이야기, 6.25때 지리산 빨치산에 잡혀갔던 사람들을 구출해 준 아버지의 무용담 등 그것들은 저에게 꿈과 환상의 보물섬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저희 집에는 라디오가 있었습니다. 작은 아버지께서 사업에 실패하시고 서울로 도주를 하신 후 아버지가 전답을 팔아 빚을 갚아주고 고작 가져온 것이 개 한 마리와 라디오였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라디오를 가져오신 것이 저에게는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 라디오를 통해서 황금심, 최희준, 남진, 이미자의 노래를 들으며 음악적 감성을 키웠습니다. 또한 연속극 ‘옥단춘전’, ‘도무지 영감’, ‘광복 20년’ ‘법창야화’ ‘전설따라 삼천리...’ 어린이 연속극인 ‘손오공’, ‘무지개마을’ 등을 라디오에 귀를 바짝 대고 들으며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그때의 연속극은 대부분 해설이 있었지요. 그래서 저는 그런 연속극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꾼이 되어 갔습니다. 동네에서든, 학교에서든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이 제 앞으로 다 모여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런 일들이 중요한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스토리텔링 능력과 감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 감성과 이야기꾼 기질이 저의 어린시절부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베어든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칼빈대학교 설교학 교수이신 김덕현 교수님으로부터 광대설교 이론까지 배웠습니다. 물론 그 이론을 배우기 전에도 이미 저는 광대설교를 해 왔지요. 제가 그런 이론을 배우지 않았어도 드라마틱한 내러티브 설교와 광대설교를 할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황홀한 이야기의 세계와 문학 감성, 창조적 상상력을 익혔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저에게는 무드셀라 증후군, 즉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만의 황홀한 이야기와 감성의 스토리로 판을 깔아놓고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펼쳐가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습니다. 그러니 그 아름다운 이야기의 세계가 제 설교의 기본적인 판으로 깔아지게 되었고 그 속에서 제 설교는 꽃으로 피어나고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아버지가 망한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일찍이 저를 오늘의 종으로 키우기 위한 경륜으로 역사하셨던 것이죠. 참으로 신묘막측한 섭리지요. 아무튼 저의 어린 시절에 접했던 그 수많은 이야기의 세계는 지금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좋은 글을 쓰게 하고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설교할 때도 다양한 이야기 형태로 전개하면서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복음을 담습니다. 그래서 저는 명제적, 선포적, 연역적인 설교보다는 설교 한 편이 하나의 이야기요, 드라마가 되도록 준비합니다.

지난주는 사업차 우크라이나에 가셔서 머물고 계시는 신계범 집사님으로부터 이런 문자를 받았습니다. “아, 정말 보고 싶네요. 이따금씩 설교 시간에 하모니카를 불어주시는 울 목사님! 이 세상 어디에 이런 자상하신 목사님이 계실까요? …(중략)… 언제 들어도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울 목사님만의 설교기법이 아닙니까?...(이하생략)” 어린 시절 라디오를 가까이했던 소년은 이야기 소년이 되었고 그 이야기는 회색빛 도시의 성도들에게 거룩한 하나님 사랑의 이야기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러티브와 광대설교는 또 다시 라디오와 TV, 인터넷을 통하여 수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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