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 넘어져도(요한복음 21:9~19)

  • 입력 2019.07.18 10:25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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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목사(서울중앙교회)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신 주님 앞에 제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를 못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그렇습니다. 지금은 ‘요한의 아들 시몬’일 뿐, 더 이상 ‘베드로’(반석, 바위)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판단하고 계십니까?“생전에 주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하라. 갈릴리에서 너희를 만날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에 여전히 가지 못하고 숨어있는 제자들을 위해서 주님은 첫 번째,두 번째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평안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성령을 받으라.” 그래서 일단 갈릴리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의 의도를 알지 못해서, 민망함과 초조함과 죄스러움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늘 주님은 ‘베드로야’ 하고 부르는 대신, ‘요한의 아들, 시몬아’ 그렇게 불렀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실패한순간에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래, 너는 지금베드로가 아니다.

그러나 네가 요한의 아들일지라도, 또 처참하게 실패한 그 순간에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항상 당신이 알고 계신 최상의 모습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십니다. ‘난 너의 최상의 모습이 어떤지 알고 있다.’ 그리고 질문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왜 이런 질문을 하십니까? “첫 사랑(처음 사랑)을 찾으라.” 우리 같으면 ‘성숙한 사랑을 하라’든지, ‘뜨겁게 사랑하라’든지 그럴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성경은 좀 어설프기도 하고, 좀 풋풋하기도 한 ‘처음 사랑을 찾으라.’ 하십니다. 실수가 좀 있어도, 순전하고 진실한 그 마음을 더 좋게 보시는 거겠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주님이 첫 질문자여야만 했고, 반드시 한번은 이렇게 질문해주셔야만 했습니다. 이런 주님의 질문 없이 베드로가 교회의 일원이 됐다면, 조금만 이상해도 사람들은 ‘너, 주님 사랑하는 거 맞아?’하고 무시로 물어봤을 겁니다. 특히 사단은 더 했겠죠. 그러면 얼마나 위축되었겠습니까. “내가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신도 장담할 수 없어도, 당신은 아시니까 인정하신 겁니다. 주님은 부족하면 채워주실수도 있고, 자격이 없다면 만들어 주실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그리고, 주님은 최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어떤 사람이 의인입니까? 베드로는 ‘반석’이 된 그 절정의 순간에 ‘사단아, 내 뒤로 물렀거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순간에 세 번 부인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메시아가 오셨어도 아무것도 안 바뀌었습니다. 다만, 당신을 만나는 사람들의 가슴 속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따르라. 너 하고 싶은 대로 나를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네 생각대로 나를 부리려고 하지 말고, 나를 따르라.”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감사하게도, 일어나기만 하면 의인입니다. “의인이 아주 엎드러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붙드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니 계속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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