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력서를 쓰고 계십니까? ② (사사기 10:3~5)

  • 입력 2019.08.02 15:05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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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덕 목사(세인교회)

우리는 지난 호에서 나름 승리하는 이력을 썼던 돌라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돌라와 관련하여 사사기 10장에서 연이어 기록되어 있기에 의도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자연스럽게 비교되는 또 한 명의 사사인 야일이 오늘 공부의 주인공입니다. 미리 말씀을 드린다면 야일은 씁쓸하게도 돌라에 비해 못내 유감스러운 신앙의 이력을 남긴 사사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본문 3~5절은 이렇게 보고합니다.“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 더라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 되었더라”‘야일’의 번역인 히브리어 ‘야이르’는 ‘하나님께서 빛을 발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름은 너무 귀했습니다. 문제는 삶이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쉽습니다. 왜 그런지를 추적해 보십시다. 야일의 이력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①야일은 비옥했던 길르앗 출신이었습니다. ②야일은 아들이 30명이 있었습니다. ③야일의아들 들은 어린 나귀 30마리를 타며 자랐습니다. ④야일은 30개의 성읍을 소유했습니다. ⑤야일은 돌라의 뒤를 이어 사사의 자리에 올랐는데 그가 통치한 22년 동안 평화가 임했습니다. 야일이 돌라에 비해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이 무엇이었습니까? 야일은 부유했던 사사라는 점입니다. 당대 30명의 아들들에게 빠짐없이 어린 나귀를 태웠다는 보고는 상당한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증언입니다. 한 성읍을 차지하는 것도 상당한 일인데 야일은 길르앗의 비옥한 땅 중에서 30개 성읍의 소유주였으니 그의 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가 통치한 22년은 평화가 임했다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 나름 긍정적인 평가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필자는 야일 사사에 대하여는 인색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본문 기록을 전제할 때 야일은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했다는 기록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는 자신의 갖고 있었던 부로 22년 동안 사사로서의 권력을 누렸고, 또 그가 통치하는 동안에 다행히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임했다는 것이 그의 이력에 대한 보고의 전부인데 그 22년 동안의 평화도 조금 깊이 들어가면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야일은 돌라의 뒤를 이은 사사였습니다. 그가 통치했던 22년 기간 동안 임한 평화는 어떤 의미로 볼 때 돌라가 세운 평화의 열매를 따먹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사로 재임한 22년 동안의 평화에 점수를 많이 줄 수 없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야일이 통치한 22년이 지나고 그가 사망을 한 뒤에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를 하고 곧바로 바알과 아스다롯과 아람, 시돈, 모압, 암몬, 블레셋의 신들을 섬기는 집단적인 우상 숭배가 자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조심스럽게 유추할 수 있는 도전이 있습니다.

이미 야일의 시대부터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는 유추입니다. 종합하자면 야일은 그가 사사로 통치하는 동안 어떤 선한 영향력을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에 주지 못했던 사사였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런 면에서 야일의 이력은 하나님께 내세울 것이 없는 그저 그런 인생이었다고 정의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사 야일의 이력서를 보면서 배워야 하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 타자에게 영적으로 선한 영향을 주는 이력서를 써야 합니다.

바울의 유언이자 신앙의 이력서인 디모데후서 4:7~8절의 선포는 감동의 절정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필자는 이 구절을 나눌 때마다 흔히 공통으로 뽑는 7절에 방점을 찍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받는 감동의 보고는 8절에 있습니다. “모든 자에게 도니라” 여기에 기록된 ‘모든 자’는 그리스도 예수의 공동체 안에서 같은 뜻을 품고 달려가는 동역자들일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동시대에 살고 있었던 동역자들에게 내가 받을 영광이 너희들에게도 임할 것을 확신한다고 선포하는 자신 있는 신앙의 이력을 썼던 바울. 그것은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갈 길을 달렸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이라는 그 스티그마를 이력의 내용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독자들이여! 바울처럼 필자는 물론 독자들 역시 이 분투함에서 배제되지 않는 주인공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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