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한 자(히브리서 5:11~14)

  • 입력 2019.08.22 10:58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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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목사.jpg

최원석 목사(서울중앙교회)

우리는 누구를 본받고, 누구에게 배우고, 누구를 따르고 있습니까?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이냐, 아니면 이제 이 토지를 잘 경작하도록 도와주는 바알이냐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 좋은데 뭔가 구체적으로 와 닿는 게 없는 것 같았고, 바알은 단순하고 쉽게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는데, 바알은 질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강한 손과 편 팔을 잊을 수 없으니 한편으로는 적당히 하나님을 섬기면서, 또 한편으로는 바울과 적당히 어울리고 필요한 것을 누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바알은 죽은 신이지만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말씀하십니다.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우리가 바라보고 경청하고 붙잡아야 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그 분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해졌다.” 왜 이렇게 듣기가 둔해진 겁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들으려고만 하고 정작 따르려고 하지 않으니 점점 둔해지고 소원해지고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자 관원은 좋은 선생이나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찾아가서 칭찬을 얻고 만족했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선다는 것은 랍비나 제사장들을 만나는 것과는 달라서, 자신의 뿌리를 도끼 앞에 내어놓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사랑해왔던 것이 하나님이 아니었구나, 내가 원한다고 입술로는 말했지만 실제로는 영생이 아니었구나. 주님은 단 한 마디로 그 뿌리가 무엇인지를 드러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전부를 거는 겁니다. 내가 뭔가 하나를 더 하고, 추가하여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나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장성한 자는 어떤 모습입니까? “때가 오래돼서 이제는 선생이 될 만한데 오히려 젖을 먹어야 할 자가 되었구나.” 예전에는 잘 듣고 성령의 역사 안에 잘 해왔는데, 지금은 기도하기도 싫고 성령과 함께하기도 힘들고 그냥 쉬운 것, 내 입에 넣어주는 젖을 찾는다는 겁니다. 단단한 식물은 잘라야 하고 끓여야 되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 말씀은 들으면 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질문이 남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그렇게 우리에게 지각을 사용하게 하시고, 생각하는 힘을 주십니다. 주님은 “나에게 배우라”, 바울은 “나를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점점 더 완전한 곳을 향하여 나아가고 성장해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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