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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는 길

기사입력 2019.10.0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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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국 목사.jpg

고병국 목사 (한소망교회)  
[프로필]
▣ 협성대학교 신학과 졸업
▣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졸업
▣ 서울남연회 강동지방 감리사 역임
▣ 온맘 닷컴 “목회칼럼” 연재
▣ 한소망교회 담임목사
 

시제. 가을이 돌아왔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니 가을은 또 다른 의미를 안겨다 준다. 무엇보다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잘 살아가는 것인가? 그래서 인생을 제법 많이 살아 온 자들의 글을 보기도 한다. 최근에 책 한권을 사서 읽는다. 나이가 여든다섯 살 된 어른이며 수십 년 동안 정신과의사로 삶을 살아온 사람의 글이다. 거기에 나오는 문장이다. ‘한번만 살아야 한다. 그것이 제1의 계율이고, 한번만 살 수 있다. 그것이 제2의 계율이다.’ 또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이런 저런 일로 슬프고 힘든 삶이 있지만 인생의 슬픔은 일상의 기쁨으로 인해 회복된다는 사실이다는 대목이 위안이 되었다. 크고 침통한 슬픔이라도 사소한 기쁨에 의해 위로가 된다는 뜻이다. 살아가다보면 이 말은 맞는 것 같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그런대로 우리들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199157일 새벽 1시 정각. 내가 지구촌 제1의 극지인 북극점에 서는 순간, 허무감 그리고 허탈감뿐이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얻기 위해 그 숱한 어려움을 겪으며 목숨까지 내 던질 각오로 지구의 꼭지 점을 향해 3년이란 긴 세월을 허비했던가?’ 이 글은 북극탐험대장 최종열씨의 수기이다. 1827년 영국의 월리엄 페리가 처음으로 북극 도전에 나섰다가 실패한 이래160년 동안 65개 팀이 도전하였지만 성공한 팀은 17개밖에 없었다.

 

한국은 열여덟 번째 성공한 팀으로 대단한 위업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북극 도전에 성공했던 탐험대 대장인 최종열씨가 후에 북극점을 정복한 순간의 감회를 모 일간지에 게재한 수기이다. 자신이 3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하며 목적지에 도달했는데 감회가 허탈이라니 말이 되는가? 그런데 사실은 우리들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무엇인가를 위해 열심히 달리기는 달리는데 막상 다가가면 허탈감만 있는 것이 아닐 런지. 톨스토이 우화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가 있다. 욕심쟁이 빠흠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촌장으로부터 파격적인 제안을 받는다. 즉 하루 동안 걸어서 표시할 수 있는 모든 땅을 그냥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이에 빠흠은 새벽부터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쉰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땅이 줄어듦을 의미했다. 그러나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욕심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커지기만 했다. 결국 해가 지기 시작할 즈음에야 황급하게 뒤를 돌아 목숨을 걸고 뛰었다. 숨을 헐떡이며 뒤돌아온 빠흠에게 촌장이 말했다. ‘정말 장하구려! 참으로 엄청난 땅을 취하였소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빠흠은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었다. 그에게 돌아간 땅이라곤 겨우 그의 관이 묻힐 반 평 밖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이란 누구인가? 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일 년이 되고 일 년이 평생이 된다. 즉 사람은 평생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마치 변함없이 아침에는 날이 밝고 저녁이면 밤이 오는 반복이 있듯 인생도 그렇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때로는 죽을 힘을 다해 무엇인가를 위해 달려간다. 무엇인가를 얻고 획득하기 위해사력을 다한다. 그러나 막상 도달하면 허탈과 땅 반 평밖에 돌아오는 것이 없지 않는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추석 때 부모님 산소를 다녀왔다. 성묘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큰 건물이 세워져있어서 무엇인가 하고 들어가 보았다. 그 안에는 마치아파트처럼 수많은 돌로 만든 상자들이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그리고 그 상자마다 사람들의 이름과 사진, 조그만 꽃 등이 있었다. 모두가 사람이 죽어 반 평 안 되는 땅에 묻히지 않고 화장장으로 장례를 치루고 후에 조그만 상자에 한줌의 재로 남은 것들이었다. 인간은 한줌의 재로 남든 한 평 안 되는 땅에 묻히든 결국은 그렇게 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혹시 욕심 때문에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인생은 아닌지. 허탈감과 허무감만 남는 목적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대체 잘사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길이 잘 사는 길인가? 어떤 길이 후회 없고 보람 있다고 하는 길인가? 여러분은 과연 진실로 그 길을 가고 있는가? 그 길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 하셨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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