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갈등부터 풀고 가자

  • 입력 2020.01.02 16:38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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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래왔듯이 지난 2019년 역시 ‘잘 있게’라는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그렇게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미처 ‘새해’라는 이름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이미 우리 앞에 과제로 남아 있는 것 하나에 눈을 맞추지 않을 수 없어 마음부터 무거워진다. 우리 사회가 다 같이 공감은 하면서도 풀지 못하고 해를 넘기고만 이 어려운 숙제는 이른바 갈등(葛藤)이라는 괴물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조금씩이나마 풀리기를 바랐으나 오히려 그 골은 더욱 깊어져 이제 급기야 지금의 시대를 일러 ‘초 갈등의 사회’라 부르는 모양이다. 정작 중요한 과제는 풀어내지 못하면서 이름 짓는 것 하나 만큼은 가히 추종을 불허한다 싶을 정도인데, 막상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답은 들을 수 없다. 기껏 내놓는 답들은 모두가 자신들의 이해와 맞물린 오직자기주장들일 뿐이다. 더욱 안타깝기는 그것이 이제는 각자 자기들의 이익만을 앞세운 ‘편 가르기’로 발전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대립의구도가 딱히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알지 못하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와 같은 대립의 프레임이 가장 극심하고 적나라한 것이 정치권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헌정사상 옳든 그르든 갈등 없이 물 흐르듯 거침없이 지나왔던 것은 소위 말하는 군사독재 정권시절을 빼고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이제 다시금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게든 지금의 이런 대립적 구도는 해소되어야 함이 마땅할 뿐 아니라 보다 세련된 사회,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른 진보와 보수의 극심한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애꿎은 중간세력만 희생을 강요당하는 극히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가히 서글픈 일이라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물론, 한국 교회가 맞추어야 할 해법의 타겟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한다. 즉 건강한 중간세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다.

말인즉 쉬우나 어쩌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 구조 속으로 함몰되어가는 한국 교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심각한 일이 아닌가 한다. 교회가 먼저 통합과 화평을 이루어야할 분명한 이유가 있음은, 결국 세상을 바르게 인도해야 할 책임은 교회에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오랜 세월 쌓여온 교회 안의 갈등은 여전히 해소 되지 않은 채 해를 넘어오고 말았으니 이것이 참으로 마음 아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새로이 맞이한 2020년, 교회의 성장과 부흥 그보다도 더 먼저 갈등부터 풀고 가는 것이 최우선 순위일 것이다. 정치적 대립의 낡은 프레임에 갇혀 세상을 지도하지도 못하고 되레 세상에 염려만을 끼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교회가 세상 정치인들의 행태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일시적이거나 단발성에 그치는 이벤트 정도로는 되지를 않는다. 지속적이고도 꾸준한 기도운동과 자기 교회의 유익을 먼저 계산하는 셈법의 회개운동이 아닌 헌신과 봉사의 회개와 자복의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결론을 말하자면 교회가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화합과 화평이 없는 교회를 보고 세상이 감동할 리 없다. 교회 밖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위하여서는 교회가 먼저 스스로갈등을 풀고 가는 일이 시급하다. 갈등을 푸는 일은 의외로 답은 간단하고 지극히 상식적이다. 서로가 먼저 낮아지는 것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시고…”(빌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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