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느냐?(잠언 30:1~9)

  • 입력 2020.01.23 11:03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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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목사(서울중앙교회)

 

오늘 본문 말씀 속 지혜자는 “나는 짐승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야게의 아들 아굴이 누구인지 우리는 정확히 모르지만, 지혜를 나눈 자로 솔로몬과 함께 이름을 올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지혜자가 자신을 ‘짐승’이라고 표현합니다. 거룩하신 자를 알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바람을 장중에 모으고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짐승과 같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지식을 더해서 업적을 쌓아가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문 앞에 죄가 엎드러져 있다하신 말씀처럼 문만 나서면 죄 짓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런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모든 것 위에 신뢰할 만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기갈이 있다”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무엇을 얘기하는 겁니까? 밥을 못 먹어서 배고프거나 물을 못 마셔서 목마른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온다는 겁니다. 북쪽에도 아마샤와 수많은 예언자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대로 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남쪽 유다에서 뽕나무를 치던, 그래서 상당히 부유하고 얼마든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듣고 봤기에,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기에 아모스는 그 모든 것을 다 던져두고 사마리아로 간 겁니까? 아모스는 얘기합니다. “나는 수풀에서 사자를 만났다.” 또 요한은 말합니다. “천둥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습니다. ‘네 마음을 움직이고 네 영혼을 깨우는 말씀이 있느냐.’ 찔러 쪼개는 말씀이 있다면 우리는 그 말씀을 붙잡고 행하면 됩니다. 주님은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청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밭을 샀고 소를 샀고 가정을 꾸렸다.” 타당하고 적절한 이유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밭을 사놨으면 그게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소는 사기 전에 테스트하는 것이고, 갈 마음이 있다면 신부와 같이 가면 됩니다. 주님은 그토록 안 열어주는 문을 우리가 열어줄 때까지 계속 두드리십니다. 본문에 있는 그의 이름이 뭡니까? ‘여호와.’ 그의 아들의 이름은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밑에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강이 발원지에서 솟아나서 힘들고 어렵게 먼 길을 가서 바다에 이르면, 바다 넓은 줄을 알아서 다 내어주고 바다와 하나가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밑에 자신의 이름을 적을 수 있는, 그런 은혜자가 됩시다. 다윗은 시를 썼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상을 차려주신다.”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에게 밥상을, 잔칫상을 차려주신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놀랍고 대단한 것은 부자가 나사로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부자를 봤는지 안 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그저 좋기 때문에 볼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부자는 딱 보면 아브라함도 구분할 수 있고, 항상 스쳐지나가던 나사로도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옥의 문제는 그렇습니다. 무저갱이라고 끝없이 추락하는데, 그것만이라면 괜찮은데 천국이 너무나 뚜렷하게 보인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원수의 목전에서 천국의 잔치를 차려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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