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적인 삶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 입력 2014.11.13 22:11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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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범 목사 (홀리신학원 원장)
[프로필]◈  

한 시대를 주의 종으로 살아가면서, 저는 허구한 날 뒤에서 남의 흉이나 보고 비난하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종종 만나보곤 합니다. 그들은 좋지 못한 소문이나 만들어내면서 그것을 퍼뜨리는 것을 마치 취미인 듯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는 자기의 가족을 남편이나 아내, 자식, 부모님의 흉을 보는 정신 나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창세기 9장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당대의 의인인 노아가 술에 취하여 벌거벗고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아들 함이 그것을 보고 자기 형제에게 고하였습니다. 당대의 의인이라고 하는 아버지 노아의 수치와 허물을 통해 ‘의인도 별것 아니 구나’ 하며 깎아 내리고 그것을 통하여 어떤 만족을 느끼고 싶은 못된 마귀적인 마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형제 함으로부터 전해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들고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허물과 수치를 보려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덮어 드렸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수치와 허물을 보지 않기 위하여, 남에게 계속 구경거리가 되게 하지 않게 하려고 옷을 들고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허물과 수치를 덮어주는 그 마음씨에서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진정한 영성 있는 삶은 누가 어떤 사람의 실수와 허물을 전해 주어도 그것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보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옷을 들고 뒷걸음질 쳐 들어가 그의 허물과 실수를 덮어주고 다시는 사람들이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게 하도록 하는 그런 마음이 영성 있는 마음입니다.

 

베드로 전서 4장 8절에 보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죄를 덮어주라는 말씀은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을 퍼뜨리지 말고 덮어주고 감싸줌으로 그 죄를 회개케 하라는 말씀입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혀 온 여인을 사람들이 돌로 치려하였을 때 예수님은 그를 감싸 주셨습니다. 그의 허물을 덮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죄를 간과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것이 우리 예수님의 영성 있는 모습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들춰내는 것에서 어떤 쾌감을 느끼지는 않습니까? 뒤에서

남의 흉을 볼 때 신이 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진정 회개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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