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그마란

  • 입력 2020.06.18 09:52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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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목사(새이레교회)

[프로필]

▣ 새이레기독학교 교장

 

 

 

 

기독교인들에게 말씀 선포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삶이며, 죽음이며,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신약 성서의 저자들은 두 가지 확신이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과 예수님은 성육하신 자로서 근원적인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말씀 안에 계셨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에 대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역사들에 대하여 말한 것을 넘어서 말씀 선포 속에 말씀하고 있던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케리그마의 커리큘럼은 말씀에 의해 교육을 받고 말씀으로 양육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는 말씀을 전하는 주체들로서, 말씀을 계시하는 중재자들로서, 그리고 말씀을 듣는 청취자로서의 우리 자신을 알게 됩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우리가 그것에 대해 반응하려고 할 때마다 경청하시고 그 말씀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청취자들의 모임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케리그마에 대한 이해는 과거보다 더 깊어져야 합니다. 케리그마가 지니고있는 공간적이고 지엽적이고 시간적인 성격을 이해해야 하는데, 특히, 교육에 있어서는 현재와 미래를 위해 지니고있는 의미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케리그마 안에 있는 생명이 목적을 가지고 끝없이 케리그마를 재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에 있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선포의 임재로 힘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말씀은 특별한 권능으로 지상의 작은 자들과 듣지 못한 자들에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6~19절 말씀은 케리그마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님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러한 선포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펼쳐져야 합니다. ‘나’가 ‘너’이고, ‘우리’가 ‘우리’이고, ‘타인’이 ‘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케리그마는 정의의 커리큘럼을 지향하도록 하는 말씀입니다.

성서의 케리그마 전체는 정의의 말씀입니다. 케리그마 의 형태를 보면 첫 번째는 ‘성서’입니다. 성서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계시해주는 원천입니다. 즉, 우리의 족보를 말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성서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것을 도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두 번째 형태는 ‘신학’입니다. 신학은 성서를 성찰하고 개념화하고 해석하고 사고하기 위한 지성적인 작업입니다. 세 번째 형태는 ‘설교’입니다. 보통 설교를 강단에 서서 선포하는 행위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설교는 선포하고 선언하며 메시 지를 전하는 언어적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설교는 구두로 전달되는 말로써 청중들이 듣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의도되는 것이며, 설교는 공동체적인 말로 공동체 때문에, 혹은 공동체 가운데서 행해집니다. 그리하여 설교로 인한 자기 성찰과 되새김의 일상의 삶을 중요시하며 설교의 의미가 헛되지 않도록 삶으로 실천해야 하 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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