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용서를 경험케 하라

  • 입력 2020.06.25 09:57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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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철 (함께하는 가정운동 운동본부 이사장)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크리스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용서를 경험케 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과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오실 것임을, 오셨음을, 다시 오실 것임을 가슴으로 믿는 참믿음에 큰 영향을 준다. 용서를 경험한 자녀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한 삶의 과정에서 위기에 닥쳐도 고난을 감당하고, 성령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이며 우리의 믿음은 고난 가운데 성장하며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용서를 경험한 사람이 용서를할 수 있다. 용서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경험이 된다면 자녀는 가정에서 경험된 용서가 에너지가 되어 성장 과정에서 교회, 학교, 직장 공동체에서 사람들의 잘못을 이해하고 용납하며 용서하는 실천적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2차 세계대전의 중심인물인 히틀러는 부모로부터 용서를 경험하지 못하였고, 처칠은 용서를 경험하였다.

이스라엘 역사 박물관에는 여섯 개의 촛불과 세 개의 비누가 있다. 유대인 600만 명이 가스실에서 죽은 것과 몸에서 뽑아낸 지방으로 만든 비누를 의미한다. 어린 시절 히틀러는 유대인 지주의 사생아로 태어난 아버지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하였고, 어린 시 절 마음의 상처는 유대인을 학살하는 왜곡된 분노로 표출되었다. 만약 히틀러가 성장 과정에서 부모나 누군가에게 용서를 경험하였더라면 참혹한 역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처칠은 사관생도 시절에 선배 생도로부터 용서를 경험하였다. 외출을 할 때는 자신의 방문 앞에 걸려있는 푯말을 ‘외출’이라는 글씨가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생도들의 규칙이었고, 이 규칙을 지키지 못하면 벌을 받게 되었다, 처칠이 하루는 외출하면서 푯말을 돌리고 나오는 것을 잊은 것을 알고 불안한 가운데 외출을 마치고 돌아갔을 때, 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자신의 방에 돌아왔으나, 방문에는 푯발이 ‘외출’로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선배 생도가 돌려놓은 것을 알게 되었고 처칠은 법을 받지 않았다.

용서를 경험하지 못한채 분노를 폭발한 히틀러와 용서를 경험한 처칠의 결과는 결국 용서를 경험한 자의 승리로 마치게 되었다. 용서를 경험한 자는 진정한, 진실한 사랑을 체험하기 때문이며, 치유와 회복과 관용과 배려, 겸손과 순종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본이며 그분의 삶의 형태이다. 부모는 자녀가 최대한 어릴 때부터 중요한 습관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중에 중요한 습관은 ‘용서’이다. 용서는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고전2:11) 성장 과정에서 불순종, 파괴, 부정적인 사고와 습관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영적 분별력을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며 균형 감각을 갖게 되며 집중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용서는 수용하는 것이며 이해하는 것이며, 관대한 것이며 화합하는 것이다. 연약함과 죄를 인정하는 신앙적인 내적 고백이다. 즉, 파괴적인 생각을 멈추게 하는데 큰도움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하루를 살면서 수많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악의 선택, 선의 선택, 둘 중에 하나. 선을 선택하는것을 반복해야 하는 환경에 노출된다. 용서는 좋은 습관을 만든다. 삶이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유의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적용이 된다.

자녀가 실수했을 때, 용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용서의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사건으로 연결하게 된다. 신앙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용서는 “얼굴 용, 용서할 서”이다,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의 대화에서 용서에 대한 횟수에 소통이 있었다. 3번, 7번, 7번을 70번, 용서를 490번 하라는 것인가?(마18:21~35) 이는 용서를 받는 자는 용서가 습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비유적인 가르침인 것이다.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의 권유로 담배를 한 두번 피운 경험이 있다. 하루는 집의 회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나오는데, 어머니와 마주쳤다. ‘아, 무척 혼나겠구나’ 당황하였고, ‘몇 대를 맞을수도 있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반응은 매우 의외였다.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담배를 피우면 몸에 해롭단다’ 말씀하시곤 주방으로 걸어가셨다. ‘이건 뭐지? 혼나야 하는데’ 세월이 흘러 이 사건을 잊고 있었는데. 30대에 회심을하고 믿음의 여정을 갈 때, 어느 순간 이 사건이 떠오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건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마음으로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녀니까 그냥 용서해 주셨구나’라고 말이다. ‘사탄의 어두움은 용서인 빛으로만 해결되는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성령이 주셨다. 배우자와 두 딸에게도 잘못을, 옥석을 따지는 것보다는 먼저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가서는 남편, 부모가 되기를 날마다 기도하는 삶을 하고자 한다. 용서를 경험한 자녀는 용서를 할 수 있다. 용서는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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