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조모(1)

  • 입력 2020.06.25 10:05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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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훈 목사.jpg

임동훈 목사 (예수나라공동체)

노생지몽(盧生之夢) 남가일몽(南柯一夢) 일장춘몽(一場春夢)… 인생은 한때의 꿈과 같고 덧없이 지나감을 비유한 말이다. 오는 세월 누가 막고 가는 시간 누가 잡겠는가! 지난 60년이 어느 후미진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3류 휴먼 드라마를 슬쩍 보고 나온 듯하다. 욕심 없이 살다가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 인생의 지혜가 아닐까? 나는 일찍 젖을 떼고 조모와 함께 신작로 전방에서 따로 살았다. 2살 터울의 동생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조부가 돌아가시고 이웃집 할아버지가 매일 찾아와 조모와 민화투를 쳤다. 그는 아들 다섯을 두었으나 부인이 일찍 세상을 떠나 홀아비가 되었다. 그의 수염은 산신령같이 길고 덥수룩하였다. 서로가 깍듯이 대하고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도 돌아가시고 조모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조모의 가문에 대한이야기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오빠가 다섯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한다고 만주로 가서 다 소식이 끊겼다고 들었다. 한때 한국인 일본군 간도특설대의 흉탄에 돌아가신지 모른다는 생각에 치를 떨었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가 5개나 부서졌다. 조모의 가족은 언니가 유일하였다. 큰할머니의 외모는 조모와 비슷하였다.

조모에 비해 얼굴이 약간 둥글고 키가 조금 작고 몸집이 좀 뚱뚱하였다. 영양과 영덕을 가로지르는 99구비 재 너머에 살았다. 조모와 나는 버스를 타고 가끔씩 놀러갔다. 큰할머니의 차남은 한국전쟁 중에 다쳐서 턱이 없었다. 그래서 턱없는 아들이라 불렀다. 큰할머니가 사는 장남의 집은 당수나무 옆 기와집이었다. 먹고 살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차남도 그리 멀지 않은 산기슭에 살았다. 조모가 방문할 때마다 적어도 한 끼 정도는 준비하여 초대하였다. 서리가 하얗게 내린 어느 날 그의 집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난생처음 맛본 진수성찬이었다. 그 맛은 수십 년 동안 내 입가에 맴돌았다. 당시 떡이나 이밥, 고기반찬 은 제삿날이나 추석, 설날이 아니면 구경하기 힘들었다. 자정에 제사를 지내고도 이웃집에 음식을 나눠주는 풍습이있었다. 그래서 어느 집에 제사가 있는 날이면 사람들이 옆집에 모여 놀다가 음식을 얻어먹고 돌아갔다. 그런데 그 턱 없는 아들이 소주 4병을 마시고 배에서 불이 나 죽었다. 아버지가 들은 바로는 코에서 연기가 솔솔 나왔다고 한다.

조모는 1895년생 황(黃)씨였다. 혼인 신고할 때 면서기가 이름을 지어 등재하였다. “이름이 없다고요? 그러면 그냥 평해(平海)라고 하세요!” 그래서 조모는 본도 평해요 이름도 평해가 되었다. 조모의 시어머니는 권(權)씨요 친어머니는 손(孫)씨였다. 모두 이름이 없었다. 조모는 여러 자녀를 낳은 후 단산하기를 원했으나 노년에 또 임신을 하였다. 북두칠성 가운데 하나가 치마폭에 떨어지는 태몽을꾸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태어나 북두칠성에 팔렸던바 평생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나도 한동안 개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겨릅대 위에 닭 다니듯 조심조심 살아야 한다!” 조모는 이 말을 가장 많이 하였다. 남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성 한번 내지 않았으며 큰소리 한번 치지 않았다. 친절과 겸손이 몸에 배어 있었다. 다이모니온(Daimonion)! 소크라테스는 일평생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정의를 세우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였다. 우리도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인생은 한바탕 꿈일 뿐이요, 아침에 돋아난 풀과 같이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인생길을 무사히 다 가려거든 걸음걸음마다 조심하라고 하였다.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결코 아등바등하며 모질게 살지 않는다. ‘인생은 전쟁을 하는 것과 같고, 그 사는 날은 품꾼의 생활과 같다.’(욥기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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