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돼지 두 마리(2)

  • 입력 2020.06.25 14:56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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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환 목사.jpg

조예환 목사(갈보리교회)

[프로필]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 역임

▣ 부천 세이레기도원 원장

 

두 마리의 돼지를 처음부터 같은 사랑 같은 정성으로 길렀는데 한 마리는 나날이 자라고 한 마리는 주접이 들어서 자라지 않았다. 그때는 그 비밀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목회도 같다. 똑같이 사랑하고 기도해 주며 양떼를 돌봐도 어느 양은 신앙이 자라고 어느 양은 자라지 않고 튕겨 나가버린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것이 신뢰의 문제인 것을 알았지만 목회 초기에는 무척이나 나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었다. 선물을 포장해 온 종이조차 보낸 사람의 정성이 남아 있지 싶어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 마음을 준 사람이 쑥 빠져나가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목회를 하면서 “등록금을 못내 휴학하게 되었어요. 목사님 어쩌면 좋아요” 학생들의 눈물 젖은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실패해서 망하게 돼서 무엇인가 물질적으로 현실의 도움을 요청하는 성도들과 만날 때가 있다. 그때 나는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서 그 두 마리 새끼 돼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때 외할아버지께서 다른 사람들도 많이 도와주시면서 왜 손자인 내게는 등록금을 주시지 않고 돼지를 주셨던 것일까를 생각한다. 아무 훈계의 말씀도 않으셨지만 아마도 할아버지는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알게 해 주고 싶으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쉽게 돈을 받았더라면 나는 얻어서 사는 것이 쉽고 편한 길임을 배웠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구걸하는 삶의 방식을 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삶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만큼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배웠다. 새끼 돼지는 당장의 등록금이 되지 못했다. 그 돼지가 자라서 돈이 될 만큼 크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은 부모님들에게 자신의 역할을 할 기회를 다시 부여하는 시간이었고 내게는 이렇게 해서라도 꼭 해야 할 공부인지, 다녀야 할 학교인지, 가치를 재점검 하게 하는 소중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무조건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요 주지 않는 것이 더어려운 사랑인 것을 지금의 아이들이 알까? 외할아버지가 주신 교훈은 그때는 아픔이었지만 지금 목회를 하면서 얼마나 커다란 교훈이었는지 새삼 감사하게 된다. 교회에서도 보면 아이들에게 수고를 가르치지 않고 모든 것을 당연하게 쥐어주는 부모들이 있다. 남의 것을 빌려서라도 아이들을 기죽지 않게 키운다며 가정 형 편의 어려움을 가르치지 않고 자립심을 배워주지 않는 안타까운 부모들을 본다. 비록 가난 속에 있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현실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대학 을 다니는 것보다 더 큰 유익이요 힘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돼지가 자라기를 기다리듯, 때로 휴학의 시간도 내가 꼭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래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자신을 재점검하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가난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나는 자라서 알았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난을 통해 우리를 훈련하실 때 그것을 사람이 도울 수 없다는 것도 삶을 통해 배웠다. 안타 깝지만 가난은 가난이 주는 의미를 배우고, 하나님이 가난을 거두어 주셔야 끝이 나는 길이다. 알면서도 가끔은, 마음 한구석에서 볼멘 목소리가 나즈막히 중얼거린다. “…그때 나는 겨우 중학생이었는데…”

가난은 결코 불명예로 여길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가난의 원인이다. 나태, 멋대로의 고집, 어리석음. 이 세 가지 중 하나가 가난의 결과라면 그 가난은 진실로 수치로 여겨야 할것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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