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조모(3)

  • 입력 2020.07.30 10:31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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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훈 목사 (예수나라공동체)

“하나님께서는 조국을 사랑하셨으나 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가슴을 치며 통탄한 말이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매국노다. 성경속의 위인들은 모두 애국자였다. 우리의 전통사상에도 경천애인(敬天愛人)이 있다. 경천 없는 애인은 위선이요, 애인없는 경천은 사이비다. 우리 전방의 벽은 국가 홍보물을 붙이는 게시판이었다. 4·19혁명과 5·16쿠데타에 이어서 1963년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후보들의 사진이 판자벽에 나란히 붙었다. 군사반란을 주도한 사람이 그들 가운데 끼어 있어 매우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는 조부의 삼년상이 끝나자 가산을 정리하여 신작로로 이사하였다. 조부가 지은 집도 팔고 증조부와 그 사촌, 조부 3형제가 피땀 흘려 일군 땅을 사기꾼에게 속아 다 넘겨줌으로써 우리 집은 금세 가난하게 되었다. 나는 학교에서 옥수수죽 배급을 받았다. 조모는 가끔씩 친구들에게 말하였다. “그 좋은 땅이 있어 우리 집은 해방 후 큰 흉년이 들었을 때도 콩가마를 쌓아두고 나눠주며 살았지.”나는 할머니들의 닦달로 이야기책을 읽어주었다.

조모의 어깨 너머로 옛글을 배워서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책을 읽었다. 학교에서는 옛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국한문 혼용 교과서로 조금 배우다가 한글로 바뀌었다.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서당에서 공부하였다. 조모의 책은 낡고 찢겨 일부분만 남아있었다. 한지를 양면으로 접어 붓으로 쓴 8절지, 삐뚤빼뚤하게 필사한 16절지, 인쇄된 글과 그림이 있는 32절지도 있었다. 모두 위에서 아래로, 우에서 좌로 쓴 옛글이었다. 종이에 콩기름을 발라 불그스레하고 매끈매끈하였으며 누렇게 바래 있었다. 동지섣달 긴긴 밤에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었으나 할머니들은 맨날 감탄하며 혀를 끌끌 찼다. 그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유복자로 태어난 아이가 움막에 살면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자수성가하여 원수를 갚는다는 『신윤복 전』도 있었다. 조모는 얼마나 일을 많이 하였는지 허리가 기역자로 굽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기까지 나를 위해 노년을 바쳤다. 나는 참으로 안타까운 청소년 시절을 보내며 크고 작은 사고도 많이 쳤지만, 조모는 한마디 말도없이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였다.

조모와 함께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화를 내거나 다투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서정주 시인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귀영화를 누리며 86세까지 살았다. 반면 이육사 시인은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매진하다가 40세가 못되어 옥살이로 생을 마쳤다. 일제의 이이제이 전략으로 창설된 간도 특설부대는 800여 명의 조선인일본군이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약탈과 방화, 고문, 간음, 양민 살해등으로 악명을 떨쳤던바, 독립군 전사자의 장기를 꺼내 통조림을 만들고, 항일군의 목을 베어들고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김백일, 박정희, 백선엽 등이 그 악랄한 부대의 장교였다. 아무리 천인공노할 범죄자요 매국노라 하더라도, 조국과 동족 앞에서 솔직히 사죄하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다윗은 파렴치한 죄를 범하고도 회개함으로써 성군이 되었지 않은가? 악인은 악에 걸려 넘어지고 죄의 줄에 매이기 마련인바, 결국은 그 빛도 꺼지고 불꽃은 사라질 것이다. 주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다. ‘정의를 위해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위협을 겁내거나 무서워하지 마십시오.’(베드로전서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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