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를 보내며

  • 입력 2020.09.10 09:52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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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환 목사.jpg

조예환 목사(갈보리교회)

[프로필]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 역임

▣ 부천 세이레기도원 원장

 

30주년을 맞아 장의자를 좀 편한 의자로 교체하기로 했다. 오래 된 것들이라 앉을 때 마다 삐그덕 소리가 나기도 하고 너무 낡아 보이기도 한다고 어느 분이 헌물 헌금을 하셨다. 헌 의자는 필요한 다른 교회에서 마침 가져가신다고 해서 의자가 들어오기 전 먼저 헌 의자를 떠나보냈다. 이것도 쉽지 않은 결단이다. 종이 한 장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내가 그토록 긴 세월을 함께 한, 이 많은 의자들을 몽땅 바꾼다는 게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마음은 그랬다. 실려 나가는 의자를 보면서, 저 의자가 알고 있는 우리교회의 역사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손때 묻은 헌신과 눈물의 기도는 이미 하나님이 받으셨을 것이고, 아직 처리하지 못한 30년 속의 아픈 기억이 있다면 의자와 함께 보내고 싶다. 이 의자를 스쳐간 많은 사람들, 이 의자가 들었을 많은 기도들, 이 의자에 묻어난 그 눈물들까지, 지나간 것은 흐르는 물처럼 또 지나보내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낮 시간 대 예배실에 들렀더니 기도하고 나가는 집사님을 만났다. 울어서 두 눈이 퉁퉁 부어 한눈에도 표가 났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무슨 일일까… 목회가 힘든 게 무엇인가, 한사람 한사람 성도들의 문제가 다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하던 속담처럼 내 가정에 아무 일 없더라도 성도들 가정의 문제 성도들 자녀들의 문제가 다나의 가족이기에 나의 문제이기 때문에 하루도 한시도 맘 편할 날 없어서일 것이다. 가슴 철렁하며 “무슨 일 있으세요?” 묻는 나에게 집사님이 대답했다. “감사해서요…”아, 그 말의 의미를 안다. 그것은 기도로 체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제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힘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이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감사해서 나는 눈물, 그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을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극한 고난 속에서 그 아픔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오직 하나님만 나를 아시는 그 느낌, 그 찡한 감동, 그래서 흐르던 눈물이 기억나서였다. 이 의자는 그런 일들을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서운하다. 의자를 보내기가 섭섭하다.의자를 바꾼다고 하니 헌 의자는 기도원에 가져다 두면 좋겠다고들 하였다. 기도원에서 바닥에 앉는 것이 너무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다고들 투덜거린다.

나는 ‘당신들이 늙어서 그래요.’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참았다. 당신들의 신앙이 늙어서 그래요. 첫사랑을 잃어서 그래요. 이제 기도하는 것도 열정이 없어져서 간절함이 늙어서 그래요. 말하고 싶었다. 기도를 하는데 늙고 젊은 나이가 어디 있는가. 더 편하게 더 편하게 하다보면 끝없이 물러서는게 신앙생활이다. 물러서고 물러서다 보면 나중에는 내가 선 곳이 교회 밖이 될 수가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 잠깐은 하나님 앞에 제대로 무릎 꿇고 기도해 보자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물론 의자 위에 무릎 꿇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아주 다른 것이다. 그건 또 다른 맛? 이다. 힘든 자세에 그만큼 간절한 마음을 싣는 것, 나는 그것도 기도의 요소라고 말하고싶다. 영화에서도 진짜 절실한 부탁을 할 때보면 무릎을 탁 꿇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러면 상대방이 놀라면서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가! 기도로 그런 절실함으로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일은 새 의자가 들어 올 것이다. 새 의자에 실려 새로운 꿈이 함께 들어오길 바라본다.새 의자에 앉는 마음들이 새로워지기를 소망해본다. 미움도 다툼도 질투도 원망도 다 헌 의자와 함께 보내버리고 새 의자에는 새로운 마음들이 앉게 되기를, 새로운 결단이 시작되기를, 그리고 이제는 눈물의 기도가 아니라 감사의 기도가 거기 쌓여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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