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곡선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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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의 아름다움

기사입력 2020.09.1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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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목사.jpg

안도현 목사 (아름다운교회)
[프로필]
▣ 순복음 신학교 교수
▣ 前 일기연, 42대 고양시기독교연합회장
▣ 사랑이 있는 마을 담임
▣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
 

자연을 보면 직선이 별로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 곡선의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합니다. 꽃은 동글동글합니다. 어느 것 하나도 직선이 없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곡선 그 자체에있습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모두 곡선입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선은 곡선입니다. 서양사람들은 우리나라 전통 가옥인 한옥을 보면 아름답다고 감탄을 합니다. 대개의 서양식의 건물들, 서양문화에 젖은 현대식 건물들은 거의 직선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한옥의 특징은 지붕과 처마의 선이 곡선을 이룬다는 점입니다. 한옥은 곡선의 아름다움을 최대로 이용한 예입니다.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는 한복역시 곡선이 아름답습니다. 한복에는 곡선의 미학이 담겨 있습니다. 한복은 여성을 더욱 사랑스럽게 보이도록해줍니다. 선에는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탁 테이블과 같이 융통성도 있습니다. 사각 테이블에는 앉을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지만, 원탁 테이블은 자유롭게조절할 수 있습니다. 사각 가방도 담을 수 있는 물건이 제한되지만 보자기는 어떤 물건이라도 담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를 보따리 문화라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문화는 하나님의 문화입니다.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를 보면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에게 야단을 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끌어안았습니다.

 

그 행위는 이미 용서했고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온 마을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습니다. 탕자의 비유는 사실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을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직선적입니다. 아이들이 가장많이 듣는 말은 안 돼, 하지 마!”입니다. 이런 말은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은혜로운 말은 직설적이지 않고 완곡합니다. 완곡어법(婉曲語法)은 말의 표현을 부드럽게 바꾸어 이야기하는 수사법입니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이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말하지않고 돌려 말하는 표현 방법입니다. 죽었다고 말하기가 너무 거칠고 마음이 아파서 우리는 돌아가셨다고 말하고, 자살했다고 말하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표현합니다. 영어도 대부분 완곡하게 표현을 합니다. 화장실을 예로 들어보면, ‘쉬는 곳, 손을 씻는 곳, 위생적인 곳등세계 각 언어에서도 둘러대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 중에서 가장 멋진 표현은 해우소(解憂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근심 걱정을 덜어내는 곳, 얼마나 멋들어진 표현입니까? 때론 직언이 필요하지만, 바른말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돌려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완곡어는 상처 내는 것을 피하려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교인들이 전도할 때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라는 말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진리이고 사실이지만 너무 직설적인 말입니다. 이런 말은 상대방의 마음에 분노를 일으키고 오히려 전도를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교만하고 독선적이다.”라는 말을 듣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기도하지 않아서 그런다. 기도 많이 해라.”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배려가 부족한 말입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위로와 격려입니다. 바른말이 반드시좋은 것은 아닙니다. 원만한 사람에게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지만, 직선적인 사람에게는 가까이하려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몽돌처럼원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몽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긴 세월 동안 파도에 시달리며 닳고 닳아서 만들어진 세월의 작품입니다. 인간의 성숙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갑자기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를 만났지만, 그의 거친 성품이 부드러워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나는 왜 이렇지?, 저 사람은 왜 그래이런 말 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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