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12. 아버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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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버지(1)

기사입력 2020.10.1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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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훈 목사.jpg

임동훈 목사 (예수나라공동체)

 

 

 

 

桃李不言 下自成路 (도이불언 하자성로)”

복숭아와 자두나무는 말이 없어도 그 아래로 자연히 길이 생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온다. 한나라의 비장군 이광(李廣)은 흉노와 70여차례의 전쟁을 치르며 전공을 쌓았으나 그 전과를 부하에게 돌리고 전리품을 공평히 나눠주었다. 과묵한 성품에 청렴결백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바 인재들이 스스로 모여 들었으며, 녹봉이 4000석이 넘었으나 죽을때는 빈손이었다. 조부는 증조부가 평생 개간한 땅으로 많은 농사를 지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으나 아버지는 농사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지게는 가지고 있었으나 나무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어느 겨울날 딱 한 번, 가랑잎이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산간 계곡에서 참나무 몇 그루를 베어 나와 함께 지고 왔을 뿐이다. 이후 처마 밑에 세워둔 아버지의 지게는 곰팡이가 피고 어깨끈이 썩어쓸 수 없었다. 나무하는 것과 농사짓는 일은 조부와 어머니의 몫이었다. 조모는 신작로 전방에서 따로 지냈다.

 

1959년 태풍 사라가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다. 아버지를 따라 큰 들에 나가보았다.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처참하게 다가왔다. 불도저 한대가 굉음을 내며 강바닥을 밀어내었고 팔다리를 걷어붙인 농부들은 옹벽을 쌓고 있었다. 이후 강은 2배나 넓어졌고 우리 논은 손바닥만 하게 좁아졌다. 이는 내가 가장 어릴 때 보았던 아픈 기억이다. 1960년대 초 어느 겨울밤, 동네 아이들이 우리 집에 모여 있었다. 아버지가 <어사 박문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의 이미지에 대한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당시 아이들은 호롱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어른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곤 하였다. 별다른 놀이가 없었던바 그것을 대단한 즐거움으로 여겼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는 물론, 전기와 전화도 없었다. 아이들이 즐길 만한 실내 놀이라곤 윷이 전부였으나 그나마 설날에만 하였다. 밖에서는 딱지치기와 땅따먹기, 술래잡기를 하였다.

 

여자애들은 공기와 고무줄놀이, 강강술래를 하였다. 그나마 달이 뜨지 않는 그믐밤이나 겨울철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밤에는 으레 초롱불을 들고 다녔으며, 둥근달이 떠올라야 학교운동장에 모일 수 있었다. 그즈음 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동네 아낙들을 모아놓고 한글을 가르쳤다. 야학이라 불렀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부인들 대부분이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바 까막눈이었다. 6·25전쟁 후 보릿고개를 넘기며 극심한 생활고와 노동에 시달렸으나 밤만 되면 머리를 단정히 빗고 야학에 참석하였다. 얼마 후 그들이 띄엄띄엄 이야기책 읽는 모습을 보았다. 1967년 우리 집은 신작로로 이사하였다. 거기 살던 아버지의 친구는 자녀교육을 위해 대구로 떠났다. 우리 가족은 함께 모여 살게 되었으나 나와 할머니는 아래채에서 지냈다. 읍내에서 자치할 때도 할머니가 따라와 나와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였다.

 

그때부터 우리 집은 주류 판매업 허가를 받아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할머니의 점방은 땅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어머니가 술도 팔고 밥도 팔았다. 가끔씩 토종닭과 토끼를 잡아 팔기도 하고 학교운동회 때는 돼지를 잡아 국밥도 팔았다. 한동안 그럭저럭 장사가 되는가 싶더니 얼마가지 않았다. 1968년 김신조 사건으로 소개를 당해 이사 온 사람들이 많았던바, 가게가 5개나 늘어났고 마을부녀회까지 막걸리를 팔았다. ‘호부무견자(虎父無犬子)’라는 말이 있다. 호랑이 부모에서 개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춘추시대의 유비가 관우의 아들 관흥과 장비의 아들 장포가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우자 격려한 말이다. 거울 속의 얼굴은 스스로 웃지 않는다. 내가 먼저 본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골로새서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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