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것 없이 사과하는 사람(1)

  • 입력 2020.10.15 11:12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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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민 목사 (소망전원교회)

러시아 주교였던 보로네슈는 농민들의 친구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늘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동정하고 서민들의 편에서 바른말을 하는 존경받는 스승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그를 찾아와 조언을 요청하였습니다. 지방 제후의 땅에서 소작농을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하소연하였습니다. 소작농의 문제는 사적인 거래로 제3자가 간섭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로부터 똑같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보로네슈는 제후를 찾아갔습니다. 제후를 만난 주교는 소작농들을 부당하게 대우하지 말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하지만 제후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주교가 남의 일에 너무 깊이 간섭하면 안 된다고 충고까지 하였습니다. 급기야 두 사람은 소리를 높여 언쟁을 하게 되었고 화를 참지 못한 제후는 이야기 도중 벌떡 일어나 주교의 뺨을 후려치고 말았습니다.

생전 처음 뺨을 맞은 주교는 분개하며 일어나 제후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주교를 때렸다는 것은 교회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 되므로 교계에 큰 파장을 불러올 사건이 될 것입니다. 주교의 뺨을 때린 제후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한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건 보로네슈 같이 존경받는 주교를 때린 것은 어떤 사람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소작농들과 제후의 문제가 주교와 제후의 문제로 뒤바뀌었고, 신앙과 교회의 문제로 커질 위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제후에게 뺨을 맞고 돌아가던 보로네슈 주교는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왜 뺨을 맞았지?”

“제후가 왜 나를 때렸을까?”

“얼마나 화가 나면 나를 때렸을까?”

“내가 다른 사람을 그렇게 화나게 한 것은 잘한 일인가?”

“제후도 잘못했지만 나도 잘못했구나!”

“그의 잘못은 그의 책임이지만 내 잘못은 내 책임이지!”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하는 게 옳은 일이야!”

“그의 잘못은 내가 용서하면 되지만 내 잘못은 그가 용서해야 하는 거지?”

“그가 용서하게 하려면 내가 사과하는 게 순서군!”

생각을 정리하고 난 후 주교는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기 위해 제후에게 돌아갔습니다. 자신이 뺨을 맞기는 했지만, 자신을 때릴 만큼 화나게 한 것은 잘못한 것이니 용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주교의 사과를 받은 제후는 마찬가지로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사과한 후 다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그 후로 제후는 보로네슈 주교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주교의 지도를 받아 농노를 가족처럼 대하는 존경받는 제후가 되었습니다. 제후의 마음은 뺨을 맞고 가다가 돌아와서 사과하는 보로네슈 주교를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먼저 사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있을 수 없는 일을 통해 굳게 닫혔던 사람의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용서가 시작됩니다. 용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누군가 시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용서가 완성되면 누가 더 많이 잘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덮어지기 때문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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