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것(1)

  • 입력 2020.10.15 11:23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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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환 목사.jpg

조예환 목사(갈보리교회)

[프로필]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 역임

 

 

우리 동네에는 펄벅 기념관이 있다. 오래도록 이지역에서 목회를 하였으므로 나는 펄벅여사에 관한 글을 읽어보았다. 중국에서 선교하던 선교사의 자녀로 태어난 펄벅 여사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가 있지만 그중에 한국에서 보았던 잊을 수 없는 감동의 두 가지 사건이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1960년 한국의 농촌을 방문했을 때 소달구지에 볏단을 싣고 자신도 지게에 볏단을 진채 걸어가는 농부의 모습을 보았다. 펄벅은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자신도 올라타 편하게 집으로 갈 수 있을 텐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루종일 일하고 피곤할 텐데 왜 짐을 싣고 소를타고 가지 않고 끌고 가는지를 농부에게 물었다. “하루종일 일하고 내가 피곤하듯 소도 피곤할 텐데 같이 걸어가야지요.” 펄벅은 소한마리라도 가족처럼 대하는 따뜻한 한국인의 정서에 큰 감동을 받았고 이 풍경이 자신이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한번은 늦가을 감나무에 감들을 다 수확하지 않고 남겨 놓은 것들을 보았다. 왜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이 저 감나무에 감을 다 따지 않고 남겼나요? 물었을 때“저건 까치밥이예요.” 까치들도 먹으라고 일부러 남겨두는 거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한국을 가리켜 ‘고결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했다. 우리 민족들은 그렇게 따뜻한 배려와 인정이 있었다. 모두가 가난하기 그지없는 그런 시절을 지나면서도 이웃을 생각하고 사람끼리 만이 아니라 하물며 짐승이나 자연까지라도 모두가 한 가족으로 생각하는 깊은 지혜가 있었다. 잔치를 할 때도 동네 사람을 다 부르고 거지들조차 그날은 배불리 먹여주는 그런 인심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은 가난하였지만 무슨 날이 되어 어머니가 어쩌다 사라다를 버무릴 때가 있었다. 어머니는 큰 김장이나 하는 양은 다라에 가득하게 사라다를 한다. 도대체 저걸 누가 다 먹나 싶어도 어머니는 여기저기 나눠주고 싶어서 형편을 생각 않고 양을 잡는다.

그렇게 모두가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넉넉하던 훈훈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차츰 모든 것들이 변하여 갔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이기주의가 되었다. 더 더 잘살기 위해 자연을 훼손했다. 그러자 무너진 자연의 질서들이 인간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게 되었다. 유전자를 변형했다. 그러자 변형된 유전자의 음식이 다시 인간에게 질병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동물과 인간을 학대하는 것이 극에 달했다. 나혼자 혹은 내자식 내가족만 잘살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가 만연해지자 소외된 한쪽에서는 묻지마 폭행이 나타나고 불특정 다수를 향한 독살극도 일어났다. 요쿠르트나 음료수에 주사기로 독을 넣어서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 일이 일어나니 사람들은 점점 타인을 경계하게 되어갔다. 우리교회에서도 주변에 떡을 해서 돌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차를 나누거나 전도를 하려고 지역에 식혜를 만들어 돌리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누가 준다고 해서 믿고먹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차츰 음식을 나누는인심은 사라져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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