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어머니(1)

  • 입력 2020.11.12 14:04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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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훈 목사 (예수나라공동체)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습니다.”요한3서 1장 4절 말씀이다. 성경은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살아가는 인생 텍스트북이다. 윤리나 교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책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휴먼스토리요, 아브라함과 다윗, 나발과 가룟 유다 등이 다 우리의 인생 길잡이다. 어머니는 첩첩산중 오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다섯 번째 딸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횡포, 해방 후 극심한 가뭄과 기근, 3년 동안 이어진 동족상잔의 유혈참극을 고스란히 겪으며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다행히 1960년대 초 아버지가 가르친 야학에서 한글을 조금 깨우친바, 가게를 하면서 치부책과 일기장 등을 기록할 수 있었다. 외조모의 강인한 기질을 이어받은 어머니는 정말 억척 댁이었다. 한겨울에 눈이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산에 혼자 올라가 마른 나뭇가지를 꺾어 태산같이 머리에 이고 왔다. 봄철에 산나물을 뜯어올 때도 다른 사람들보다 항상 더 많이 이고 지고 들고 돌아왔다. 옷 장사와 생선장수를 할 때도 동료들보다 좀 더 많이 팔고 다양한 물건을 바꿔왔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남들보다 뒤떨어진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지금 구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남의 땅을 빌려 채소밭도 가꾸고 짬짬이 품꾼으로 다닌다. 월 2만 원짜리 사글셋집에 홀로 살면서 손바닥만 한 땅도 없지만, 주님의 교회와 이웃을 섬기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가끔씩 젊은이 못지않은 사회의식에 깜짝 놀라곤 한다. 그러나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은, 이제 내가 어머니를 모실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내가 어머니의 양육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날 이때까지 그 사랑의 빚이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몸이 움츠러진다. 실로 나는 불효를 원치 않았으나 어머니는 늘 자상한 자모로 다가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 억척같은 어머니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내가 보아도 걱정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 무슨 과업이 주어져도 그 일을 꺼리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농사일, 나무꾼, 옷 장사, 생선장수, 함바집, 막노동, 봉제공장, 청소원 등등. 하지만 요즘은 부쩍 힘들어하며 자주 자리에 눕는 모습을 본다. 1960년대는 농산물을 주고 옷도 사 입고 생선도 바꿔 먹었다. 쌀이나 보리, 계란이나 꿩알, 닭이나 토끼 같은 짐승도 물물교환의 대상이었다. 어머니가 가게를 할 때, 누나뻘되는 동네 아가씨들이 계란이나 보리쌀 등을 치마폭에 숨기고 와서 필요한 물건을 바꿔가는 모습을 보았다.

낮에 살그머니 와서 미리 말을 맞춰 놓고 이슥한 밤에 몰래 와서 은밀히 거래하였다. 어머니가 첫아이를 가질 때, 백수염발의 노인이 꿈에 나타나 인삼뿌리 세개를 주었다. “이걸 가지고 어서 집으로 가거라!”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누가 볼 새라 얼른 치마폭에 숨겨 급히 집으로 가려고 하였다. 그때 줄줄이 딸만 낳던 동네 아낙이 갑자기 나타나 양팔로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그 인삼뿌리 하나만 주고 가거라!” 안된다고 뿌리쳤으나 힘에 부쳐 결국 한 뿌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첫딸을 낳았다. 애타게 손자를 기다리던 할아버지가 크게 실망하여 말하였다. “이제 손자 못 보고 죽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그 인삼만 빼앗기지 않았다면 분명히 아들을 낳았을 텐데.” 어머니는 못내 아쉬워하였으며 그 여인은 늘그막에 아들을 낳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첫 태가 아닌 첫아들로 태어나 어설픈 주님의 봉헌물이 되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다.’(이사야 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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