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얼굴

  • 입력 2020.12.17 16:13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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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목사 (아름다운교회)
[프로필]
▣ 순복음 신학교 교수
▣ 前 일기연, 42대 고양시기독교연합회장
▣ 사랑이 있는 마을 담임
▣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
 

코로나19로 인해 요즘 사람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차있습니다. 얼굴은 정직합니다.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대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굴만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기쁘면 얼굴이 빛나고 마음에 근심 걱정이 가득하면 얼굴이 어둡습니다. 얼굴의 ‘얼’은 영혼(靈魂)을 뜻하며 ‘굴’은 구멍(窟)을뜻합니다. 얼굴은 영혼이 드나드는 통로라는 뜻입니다. 우리말의 ‘얼’은 모두 ‘혼’이라는 뜻입니다. ‘얼빠지다’라는 말을 ‘혼이 빠지다’로 쓰이기도 합니다. ‘얼씨구’란 말은 혼이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얼싸안다’는 반가워두 팔을 벌리며 혼을 싸 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영적존재입니다. 그래서 저쪽에 누가 숨어서 나를 몰래 보면 누가 있는 것 같아 쳐다봐집니다. ‘얼핏’이란 말은 그런 의미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얼굴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영혼의 상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데반은 순교 직전 공회 앞에 섰을 때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환하게 빛났습니다(행 6:15). 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놀라워했습니다. 성경은 스테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보였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행 7:55). 우선 성령 충만했습니다.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술 취하는 것과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것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술 취함과 성령 충만과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말수가 늘고, 노래를 하고, 권하고, 감정적이 되고, 용감해지고, 지배당하고, 중독되고, 냄새를 풍깁니다. 아마 바울도 둘 사이의 공통점을 생각하며 대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상적인 공통점은 있어도 그 내용과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술은 사람을 방탕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주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술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으로 기쁨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스데반은 환상 중에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스데반의 순교를 앞두고 그를 격려하기 위해서 영광스러운 환상을 보여 주셨을 것입니다. 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보면 일반적으로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마26:64, 눅 22:69, 엡 1:20, 골 3:1, 히 1:3).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도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본 환상에서는 예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서 계셨을까요? 많은 주석가들이 이에 대해 ‘순교자를 격려하고 환영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을 환영하는 주님을 바라본 스데반에게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도 감내할 수 있는 은혜를 주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때마다 필요한 은혜를 주십니다. 암 환자들을 돌보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지켜보았습니다. 오랫동안 병고에 시달렸지만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니 세상을 떠날 때 얼굴이 맑고 밝고 깨끗하고 평안했습니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모두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라고 하십니다. 세상 것으로는 일시적으로 기뻐할 수 있지만, 항상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변함없는 하늘의 것이 있어야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전도하고 돌아와 성과를 보고하며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늘은 기쁨의 근원이고 본질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우리가 갈 곳을 예비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보장을 해주셨는데도 걱정하며 얼굴이 어둡고 침침하다면 과연 나에게 믿음이 있는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도록 하늘을 소망해야하고, 성령 충만으로 마음의 근심을 몰아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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