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고모

  • 입력 2020.12.24 10:30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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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훈 목사 (예수나라공동체)

이제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불러주시오!” 룻기 1장 20절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돌아와 한 말이다. 나오미는 즐거움을, 마라는 괴로움을 뜻한다. 자기 이름대로 기쁨을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슬픔을 맛보았다는 푸념이다. 그녀는 잠시 기근을 피하여 남편과 함께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갔다. 거기서 10년쯤 살다가 남편과 두 아들이 죽었다. 며느리 룻만 데리고 고부가 쓸쓸히 귀향하였다. 2002년 초 아버지는 사촌누이가 살고 있는 청송으로 귀촌하였다. 어머니가 말하였다. “시골에 가서 어떻게 살아? 가려면 당신이나 가이소!” 그때 어머니는 서울에서 직물 공장에 다녔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한 걱정이 있었다. “애들이 집에 둘이나 있는데 누가 밥해주고 빨래해주나?” 그리고 얼마 후 막내가 결혼하여 신혼살림을 차렸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있는 시골로 내려가고, 나는 1년 만에 다시 홀로서기를 시작하였다. 파란 많은 봉급쟁이 땜빵 인생을 정리하고, 주님의 정의와 자유를 찾아 조선 팔도를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런 호사스런 사치는 없었다.

내 영혼의 노스탤지어 손수건이랄까? 고달픈 인생길은 나의 배우자였다. 청송의 종고모는 중조부의 외동딸로 아버지와 나이는 같았으나 생일이 조금 늦었다. 아버지는 나이 많은 매제와 서로 하대하며 다정하게 지냈으나 그가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몇 년 후 그의 두 아들마저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고모는 크게 낙심하여 교회도 나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위로하며 설득하였으나 위로마저 받기를 거절하였다. “내가 무슨 낯으로 교회에 나갈 수 있겠는가?” 결국은 그 딸이 와서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갔다. 아버지도 실의에 빠져 교회를 외면하고 주막을 찾았다. 그러다가 길에서 넘어져 1년간 병원 신세를 지고 <작은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제 어머니만 그곳에 홀로 남았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그렇게 후딱 지나가 버렸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할머니 성도가 들려준 이야기다. 조카며느리가 해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갔더니 아이가 없었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지 않고 슬피 울기만하였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보자기에 돌돌 말라 골방에 처박아두었다. 애를 키울 자신이 없어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

남편은 노름에 미쳐 집을 나간 지 20일이 넘었고, 땔감은 없어 방은 냉골이었다. 미역국은 고사하고 쌀도 없었다. 우선 집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주섬주섬주어다가 군불을 떼고, 쌀을 조금 가져다가 죽을 끓여주었다. 그리고 잘 타일러 아이를 살리게 되었다. 그즈음 할머니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남편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통 소식이 없고, 한겨울 냉방에서 혼자 막둥이를 낳았다. 땔 나무는 없고 날은 추워서 도저히 키울 자신이 없었다. 아이 목을 졸라 죽이려고 손을 뻗쳤다. “그때? 세상에! 아이가 고추를 바짝 세우고 하늘을 향해 오줌을 쭉쭉 싸지 뭐야? 하나님이 벌을 주실 것 같아 차마 죽일 수 없었어!” 그리고 50년이 지났다. 그 할머니의 막내아들 내외가 우리 교회를 방문하여 인사하였다. “저희 어머니를 잘 섬겨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하나님께서 방 선생님의 가정을 잘 지켜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과 다르지 않고, 자연의 한 조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실로 주님은 무덤에서 잠자던 나사로를 4일 만에 가서 깨워주셨다. 우리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곳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습니다.’(로마서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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