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다이모니아

  • 입력 2021.03.26 09:23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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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훈 목사 (예수나라공동체)

“정신적 가치를 모르거나 이기적인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백년을 살아보니>의 저자로서 102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2021년을 맞아 인터뷰하였다. 그리스어 다이모니아(Daimonia)는 정신이나 정신적 행복을 의미한다. 사실 창조주의 심비우스(Syimbious, 공생) 정신에서 벗어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행복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바울이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하였다. 나는 1963년 초등학생이 되었다. 마을에 학교가 있었다. 12㎞ 넘는 산길을 통학한 아이들도 있었다. 숱한 재를 넘고 개울을 건넜다. 나이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궂으면 마을 단위로 몽땅 결석하였다. 우리 반은 1950년생부터 1957년생까지 있었다. 큰 아이들은 첩첩산중이거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살았다. 범띠와 토끼띠가 하나씩, 용띠와 뱀띠가 너덧, 말띠가 십여 명쯤 되었다. 입학 적령기는 원숭이띠였으나 양띠가 더 많았고, 닭띠 꼬맹이도 칠팔 명 가량 있었다. 그들은 누나나 고모 등의 보호를 받으며 같이 다녔다. 가장 나이 많은 범띠 형은 3학년 때 부잣집 머슴 겸 데릴사위로 출가하였고, 토끼띠 누나는 4학년 때, 용띠 여자 친구는 졸업을 앞두고 시집을 갔다. 우리는 초등학생 때 신부 우인으로 잔치에 참석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먹고살기 위해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도 많았다.

남자아이는 부잣집 머슴으로, 여자애는 도회지 식모로 갔다. 그 기회도 흔치 않았던바, 알음알음으로 자리만 나오면 만사 제쳐두고 가족과 고향과 학교를 떠났다. 1960년대는 뭐니 뭐니 해도 호구지책이 가장 큰 문제였다. 8·15 해방 후 3년간 이어진 가뭄, 6·25 전쟁 후유증, 사라 태풍 등의 영향으로 기근이 심각하였다. 3·15 부정선거, 4·19 혁명, 5·16 쿠데타로 정국까지 불안하였다. 그래서 부잣집 머슴으로 가면 밥은 굶지 않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고, 도회지 식모로 가면 고기반찬에 이밥 먹고 산다는 말에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아이들은 일찌감치 공장에 들어가 돈을 벌어 집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어느 집에 효자 나왔고, 누구 집에 효녀 났다는 말을 듣고 다들 부러워하였다. 그렇게 우리 반은 100명 넘게 입학하여 60명 남짓 졸업하였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비애이자 자유였다. 우리 학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각 한 반씩으로 교실마다 콩나물시루였다. 건물은 판잣집으로 시커먼 폐유가 칠해져 있었다. 전쟁 때 폭격을 맞아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불에 타 그슬린 자국도 많았다.

바람이 불면 건물이 통째로 삐거덕거리며 흔들렸던바, 사방에 버팀목을 괴어놓았다. 책걸상 없이 차디찬 마룻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공부하였다. 창문에서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매일 당번 2명이 집에서 솔가리와 장작을 가져와 난로를 피우고 도시락을 올려놓았다. 매주 하루는 단체로 산에 올라가 나무도 하였다. 학교 뒤뜰 토끼장 앞에서 둥치를 패던 기억이 아련하다. 우리는 6학년 때 새로 지은 슬래브 건물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매미 같은 미물도 때가 되면 허물을 벗기 마련이다.” 검사들이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개혁에 반발하며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자 종교인들이 나서 한 말이다. 무소불위 검찰권은 일제가 한민족을 압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제 비민주적 특권을 내려놓고 구시대의 허물을 벗을 때도 되었지만, 불신에 빠진 이기적 집단이 독과점의 향수를 포기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판사나 의사 같은 엘리트층도 그렇고, 최고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목사와 사제, 승려 같은 종교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가시 돋친 채찍에다 뒷발질해 봐야 자기만 아플 뿐이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갈라디아서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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