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교과서(2)

  • 입력 2014.12.18 10:14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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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기 목사
[프로필]◈ 한동교회

요한계시록에 집중하게 된 수치스럽고 슬픈 동기

 

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신학교를 졸업 후 수도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본격적인 사역의 길을 시작했고, 말씀 중심, 설교 중심, 기도 중심으로 40여 년 간 목회를 쉼 없이 달려온 평범한 목사입니다. 제가 요한계시록에 대하여 어렵다고만 인식하던 장벽을 뛰어넘어 집중하여 공부(연구)하게 된 혁명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 수치스런 계기가 있었습니다.

 

1981년 5월2일 한동교회를 개척하고 지금껏 섬기면서 한 강단에서 설교한 횟수가 적어도 2000회 이상이었고, 매 설교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여 강단을 지켜왔다고 자부하지만, 그런 저에게도 울렁증을 느끼게 하는 아주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본문으로 한 설교는 40년 목회 중 10여 차례에 불과했고, 내용 또한 1~3장에 관한 부분적인 내용이 전부였습니다.

 

저 스스로 요한계시록에 관한 충분한 이해가 없었으므로 설교나 성경공부 후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해온다면 어떻게 답변해야 하나? 하는 염려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다루는 시간은 저에게 심리적인 많은 부담을 갖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어느 성도가 제게 이런 질문을 던져 왔습니다.“목사님, ‘신천지는 14만4000명만 구원을 받고 또한 신천지 교인이 되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14만4000명은 무슨 말이고 신천지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해왔습니다.

 

그때 저는 해머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유인즉슨 저 스스로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시는 14만4000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이론이 정립되어 있지 못한 것과 내가 목양하는 성도들에게 골고루 먹이지 못하고 명확하게 가르치지 못해 이단의 유혹 앞에 속수무책이겠구나 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무식하고 무책임한 악한 목자임이 부끄럽고 한탄스러웠습니다.“아~슬픈 날이여! 괴로운 날이여! 주여~ 이 못난 종을 어찌하리이까? 주께서 맡기신 양들을 잘 먹이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여 이리와 승냥이에게 내어 줄 뻔하였으니…주여~! 회개하오니 이 못난 종을 용서하시고 고쳐 주옵소서!”

 

요한계시록에 대한 제 마음을 고쳐먹고 집중 연구를 시작하려 서재에서 주석을 찾아보니 관련주석은 서너 권뿐이었습니다. 목회 30년이 넘도록 요한계시록에 관심이 없었음이 여실히 드러났으니 통탄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이 두루마리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말라”(22:10)고 하셨는데….그 후 부랴부랴 서점으로 달려가 요한계시록에 관하여 저술한(보수주의 신학자나 목회자) 서적을 5권 구입해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 5~ 6권의 책의 내용 다 각각 다르니 말입니다.

어느 것을 따르면 좋을까? 요한계시록 해석 방법이 다 아시는 사실이지만 4가지로 주장하는 책도 있지만 8가지를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

(1) 이레니우스(Irenaeus), 저스틴 마터

(Justine Martyr)등이 지지한 문자적 해석 방법

(2)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오리겐(Origen),

클레멘트(Clement)등의 영적인 해석 방법

(3) 상징주의적 해석 방법

(4) 역사적(Historicist) 해석 방법

(5) 과거주의적(Preterist) 해석 방법

(6) 미래주의적(Futurist) 해석 방법

(7) 세대주의자들 또는

극단적 미래 주의자들 해석 방법

(8) 무천년적 미래주의적 견해

여기에 ‘요한계시록을 어떤 책으로 보아야 하는가?’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1) 예언서로서의 요한계시록

(2) 묵시문학으로서의 요한계시록

(3) 서신으로서의 요한계시록

또,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라는 주제에서는

(1) 교회 중심적

(2) 구원역사 중심적

(3) 상징 중심적

 

여기에 또 계시의 중복적이다. 아니다. 점진적이다. 또는 진보적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예전에 신학교에서 배우고 외워서 알았지만 잊어버리고 다시 새롭게 느꼈습니다. 신학을 하고 목회를 30여 년을 한 나에게도 이렇게 복잡하고 난해한 성경을 이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너무 난감한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설교를 해야 하는지 생각이 너무 복잡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복잡하고 난해하게 하지 않으셨을 텐데 하는 생각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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